• 북한의 핵실험으로 한반도 안보 불안이 고조된 가운데 한미 양국은 20일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전시작전통제권(이하 작통권)을 2009년 10월에서 2012년 3월 사이에 한국군에 이양하기로 합의하였다. 이로써 우리의 안보가 결정적 위기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우선 북한의 핵실험으로 그동안 유지되어온 남북한 군사력 균형은 일시에 북한 우위로 변화되었다. 과거 남한은 북한에 비해 재래식 전력과 전쟁지속 능력에서 우위를 보여온 것으로 평가되었으나 이러한 우위 자체가 무의미하게 된 것이다. 이제 한반도 안보 상황은 북한 핵실험 이전과 이후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일 정도로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북한의 핵실험은 재래식 무기나 미사일, 생화학 무기 같은 대량살상무기와는 차원이 전혀 다른 군사적 위협과 안보 딜레마를 우리에게 던져 주었다. 또한 남북관계를 심각하게 왜곡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핵무기는 실제 사용 여부를 떠나 보유 자체만으로도 상대방에게 엄청난 심리적 부담감을 주는 강력한 정치, 외교적 무기이기 때문이다.

    북한과 노무현 정권 사람들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가 미국을 겨냥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북한 핵무기의 실질적 위협 대상이 되고 있는 곳은 남한이다. 폭격기나 트럭에 실을 수준인 현단계의 북한 핵무기가 실제로 사용될 수 있는 곳은 오직 남한뿐이며 또한 북한은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극대화하거나 미국의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 핵무기 카드를 이용하여 우리를 실질적으로 위협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우 북한의 위협에 대응해야 하는 우리의 운신 폭은 현저하게 좁아질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북한의 핵실험은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를 약화시키고 동북아의 군비경쟁을 부추기는 시한폭탄이 되고 있다. 물론 북한 핵실험이 당장 동북아 전체의 핵무기 보유 경쟁으로 확대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일본이 추구해 나갈 전략적 대응은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의 견제심리를 촉발하게 될 것이며 이와 같은 상황 변화는 우리의 외교, 안보 지렛대를 크게 약화시키게 될 것이다.

    게다가 한미 양국이 SCM에서 작통권 이양 시기에 합의함에 따라 우리는 한반도 안정 유지와 평화 통일을 위한 가장 중요한 틀이자 팽창주의를 향해 치닫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는 효율적인 수단이었던 한미동맹체제를 상실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세계 역사상 가장 이상적인 동맹체제라고 평가되는 한미연합사도 자동적으로 해체되게 되었다.

    이는 한반도 유사시 미군의 증원을 수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사라지고 북한의 핵실험 이후 우리에게 사활적 문제가 되고 있는 미국의 핵우산 보장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으로 보여 우려된다. 이처럼 우리 안보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던 한미연합사의 해체는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에게 그릇된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끊임없는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작통권 이양은 한국의 안보 상황에 대한 진지한 고려의 결과라기보다는 노무현 정부의 '무모한 자주(自主)' 추구와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 확보라는 명분이 맞아떨어진 결과이다. 결국 이제까지 노무현 대통령은 작통권 문제를 주권 문제로 변질시켜 안보 문제를 정치 쟁점화 하였고 이를 통해 국민의 생사(生死)까지도 자신의 입지 강화에 동원한 셈이 되었다. 그 대가가 북한의 핵실험이라는 가장 위험한 시기에 스스로 무장을 해제하는 작통권 이양이라는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결과적으로 며칠을 사이에 두고 일어난 북한의 핵실험과 한미간 작통권 이양 합의는 우리의 안보 역량을 결정적으로 약화시켰고 국민의 안보 불안 심리를 증폭시켰다. 이제 우리는 북한 핵무기 앞에서 스스로 벌거벗은 무력한 처지가 되고 만 것이다. 이와 같이 심각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당장 시급한 일은 한미동맹이 제공하는 핵우산과 국제사회의 대북 억제력을 적극 활용하는 일이다.

    그러나 한미동맹은 더 이상 과거의 동맹이 아니다. 동맹이란 '공통의 위협을 전제로 하는 상호지원관계'이지만 현재 한미간에는 공감하는 공통의 위협조차 없는 상황이다. 바로 1년 전 SCM에서 핵우산이라는 표현조차 삭제하려고 했던 노무현 정부가 이번에 애걸복걸한 핵우산 보장 요청에 대해 미국이 짜증 섞인 반응을 보인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처럼 우리 안보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노무현 정부에게 가장 시급한 일은 자주를 앞세워 동맹의 요구는 무시하면서도 동맹에게 일방적으로 자신의 요구만을 주문하는 무리한 자세는 동맹간에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국제정치는 '외교관'과 '장군'으로 상징된다고 프랑스의 석학 레몽 아롱은 설파했다. 그동안 한미동맹은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는 외교관 역할과 북한의 위협을 저지하는 장군 역할을 동시에 담당해 왔다. 이번 북한 핵실험과 작통권 이양으로 우리 안보를 지켜온 외교관과 장군을 모두 잃게 된 상황에서 노무현 정부는 더 이상의 무분별하고 맹목적인 민족공조를 버리고 이제라도 동맹과 국제관계의 원리에 입각하여 형해화(形骸化)된 한미동맹을 회복하고 국제사회와의 공조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