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0일자 오피니언면 '조선데스크'란에 이 신문 최준석 국제부 부장대우가 쓴 <"이제 민족의 심장은 든든하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인도 서부 라자스탄주에 인구 2만의 사막 도시가 있다. 이름은 포크란. 마을 한복판에 지금은 호텔로 개조된, 옛 성주가 살던 붉은색의 성채가 있을 뿐, 도무지 주목받을 일이 없는 곳이다.

    하지만 이 도시가 1974년과 1998년 두 차례 세계적인 뉴스의 현장으로 떠올랐다. 인도의 ‘과학연구부문’이 포크란에서 북서쪽으로 20㎞ 떨어진 군 포병 사격장에서 핵 실험을 해 세계를 뒤집어놓은 것이다. 1974년은 인디라 간디 총리 시절이고, 1998년은 힌두국가주의정당인 인도인민당(BJP)의 A B 바지파이 총리 때다.

    인디라 간디 총리는 중국의 1964년 핵 실험 이후 자신들도 핵 능력을 갖고 있음을 과시하기 위해 실험을 했다. 작전명은 ‘부처의 미소’. 간디 정부는 그래도 핵 실험만 했을 뿐 무기로는 만들지 않았다는 게 정설이다. 반면 1998년 5월 바지파이 총리는 수소폭탄 능력까지를 갖추기 위해 마무리성 핵실험을 했다.

    인디라 간디 총리는 핵실험 뒤 현장을 방문했고, 검은색 선글라스를 쓴 채 돌아보는 사진을 언론을 통해 공개했다. 하지만 1998년 핵 실험 뒤에는 포크란에 ‘총리’ 대신 ‘보통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바지파이 정권이 핵 실험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포크란 띄우기’에 대대적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BJP를 지지하는 힌두 국가주의 단체인 ‘전국자원자연맹’(RSS), ‘세계힌두협의회’(VHP) 등은 조직을 총동원해 지지자들을 포크란으로 보냈다. 5월이면 50도가 넘는 숨막히는 사막에 무려 10만명이 넘게 찾아왔다. 그들은 포크란의 땅에 입을 맞추고 흙을 기념품으로 담아가고, 기념 사진을 찍고 갔다. 열기는 6개월이나 계속됐다. 주민들은 정권의 핵 선전에 놀아나 금방 선진국이 된 듯 헛배가 불렀던 것이다.

    북한이 9일 함북 화대군 무수단리 근처에서 핵실험을 했다. 무수단리는 세계의 시선을 집중시키며 순식간에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이제 한반도 북부에서는 머지않아 무수단리를 찾는 성지순례의 광풍이 불지도 모른다.

    문제는 한반도 남쪽이다. 벌써 이곳이 ‘민족의 새 성지’나 되는 것처럼 ‘감동’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다. 북 핵실험을 전하는 국내 인터넷 사이트에는 주사파와 친북주의자들의 북 핵 실험 옹호 글이 난무하고 있다. ‘이제 민족의 심장은 든든하다’ ‘우리도 핵 보유국이 되었고, 비로소 강대국이 됐다’ ‘핵을 갖게 돼 앞으로 일본이 함부로 독도 땅의 소유권을 주장하지 못하게 됐다’는 식이다.

    이같은 주장은 북의 ‘민족공조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민족공조론’은 남한과 북한이 손잡고 미국의 위협에 대처해야 한다는 것으로, 한국과 미국을 떼어놓으려는 북의 기만술책이다.

    인터넷의 댓글들 중에는 이런 ‘발톱’을 감추고 점잖게 충고하는 경우도 있다. “국익은 남북한을 아우르는 통찰력을 말한다. 지금 내편 니편 갈라서는 죽도 밥도 안된다” “남은 친일에서 친미로 변신해온 사대굴종세력을 극복하고, 좌우를 넘어 민족적 이익을 지켜낼 인재들이 집권해야 한다” ….

    지금까지는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이 묻혀있는 평양의 만수산 궁전을 참배해 물의를 빚는 남측인사들이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무수단리를 순례하는 인사들이 나와 파문을 일으킬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