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행성 게임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제도적 허점과 악용의 소지를 미리 대비하지 못한 정부의 책임은 내각이 총사퇴해야 할 정도로 크고 엄중하다. 2004년부터 사행성 게임의 문제점을 지적한 경고음은 청와대와 감사원, 검찰·경찰, 문화관광부 등 거의 모든 정부기관의 홈페이지에서 울려 퍼졌다. 그러나 이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할 만큼 국가 시스템 전반이 고장나 있었다. 귀 막은 정부의 참담한 국정실패이다.

    이미 2년 전부터 서민들의 원성과 절규가 하늘을 찔렀다. 2006년 4월 7일 경찰청 홈페이지에 “사스보다 무섭고 에이즈보다 위험한 성인오락실 단속좀 해달라”고 호소했다. 또한 2005년 3월 30일 감사원 홈페이지에 “문광부가 인증위원회를 구성하여22개 상품권을 선정했다. 그러나 선정과정에 많은 의혹을 품을 수밖에 없는 결과가 나왔다”는 폭로가 쇄도했다.

    그 사이 정부기관은 뭐했느냐는 의문이 남는다. 감사원은 지난달 한명숙 총리의 요청을 받고서야 ‘10월중 감사착수’ 검토→ 9월말→9월초로 감사일정이 조정됐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식인 ‘뒷북 감사’로 차 떠난 뒤에 손 흔드는 격이다.

    그런 감사원은 지난해 5월 시민단체 흥사단으로부터 경품용 상품권 인증비리 의혹에 대한 감사청구를 일축했다. 8월에 들어온 게임산업개발원에 대한 감사청구도 “‘개인’은 감사청구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묵살했다. 권력기관의 오만한 모습과 무책임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사회현안 및 정책 관련 정보를 수집해 대통령에게 직보하는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국정상황실 역시 ‘직무유기’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국정원은 “작년 말에 ‘바다 이야기’ 문제를 계통에 따라 보고했다”고 밝혔지만, 청와대 대변인은 “국정원 보고서는 있었지만 바다이야기의 불법성을 지적하는 보고서는 없었다”고 했다. 누구 이야기가 맞는 지는 국민이 판단해야 할 몫이다. 

    검찰과 경찰도 최근까지 오락실 단속 같은 변죽만 울리다 정치·사회적 파문이 일고 난 뒤에야 “게임기를 몰수한다” “정·관계 로비를 수사한다”면서 게임기 제조업자, 상품권 발행업자들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뒷북 수사가 성난 민심을 잠재울 수 있을까.

    그간 사행성 게임이 위험수위를 넘어섰다는 언론보도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나왔지만 정작 문화부는 책임회피와 ‘오리발’만 되풀이 해왔다.

    8월 29일 참여정부 최대의 ‘권력형 게이트’인 ‘바다 이야기’파문과 관련, 노무현 대통령만 제외하고 한명숙 국무총리, 정동채 당시 문광부장관, 김근태 의장 등 여권이 총 출동해 대국민 사과를 표명했다.

    노대통령은 최근 ‘바다이야기’ 사태와 관련해 “도둑맞으려니까 개도 안짖는다”며 마치 남 탓 하는 식으로 말한 적이 있지만, 국민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권력형 게이트를 ‘정책실패’로 호도하고 ‘선(先) 진상규명 후(後) 사과검토’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청와대의 방침은 방향이 틀려도 한참 틀렸다. 대통령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마땅하다. ‘도박공화국’사건에 대해 누구도 면죄부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할 일은 안 하고, 안 해도 될 일을 한 감사원

    노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와 관련자들의 공직 사퇴와 사법처리까지 뒤따라야 할 권력형 게이트의 장막 뒤엔 감사원의 무사안일(無事安逸)이 도사리고 있었다.

    감사원은 온 나라가 ‘바다 이야기’ 파문으로 술렁일 때인 지난 8월 16일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감사강화 방침’을 밝혔다. △ 지자체단체장 임기 내 광역 2회, 기초 1회 이상 감사 실시 △ 임기 3년차에는 모든 지자체를 대상으로 일제 비교감사 실시 △ 지방공기업과 자치단체 직영사업에 대한 전면적인 감사 실시 등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는 지방자치의 본질인 자율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으로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지방자치제도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기초지방자치단체는 이미 감사원으로부터 수시감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2년마다 시·도 종합감사를 받고 있다. 또한 지방의회 행정감사, 주민통제, 언론의 감시, 주민감사청구제도, 주민소환제와 민·형사상의 책임 등 수많은 지자체장에 대한 통제수단이 강구되어 있다.

    그리고 지방공기업은 행정자치부 주관 하에 1991년부터 매년 경영평가를 실시해오고 있으며, 성과가 부진한 공기업에 대해서는 경영진단 실시 등 경영개선 명령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원이 통제·조정시스템 미흡을 이유로 지방자치단체장을 손바닥위의 공기돌처럼 가볍게 통제하겠다는 발상은 어디엔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야당이 대부분을 차지한 기초 지자체를 범죄집단인 것처럼 국민에게 호도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참여정부 출범 후 감사원은 사후 책임을 묻는 문책감사에서 탈피, 정책 오류를 바로잡는 예방감사에 치중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허울 좋은 구두선(口頭禪)으로 끝나고 말았다. 감사원은 안 해도 될 일을 하면서까지 권력의 눈치를 볼 것이 아니라 감사원법 제 24조에 규정돼 있는 ‘직무감찰’ 업무나 제대로 하는 것이 어떨까.

    차제에 국회도 법률안을 제정할 때 결과에 대해 미리 연구하고 검토하는 선진입법 능력을 제고해야 한다. 한 순간의 방심이 얼마나 큰 국가적 재앙을 초래할 수 있는 가를 이번 ‘바다이야기’ 사태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객원칼럼니스트의 칼럼내용은 뉴데일리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