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교조 때문에 돌아가신 것이나 마찬가지다”

    학교법인 신성학원의 강종락 이사장이 6일 새벽 5시 향년 8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사인은 심장마비. 1970년 신성학원을 세운 이래 명신여자고등학교와 영일외국어고등학교, 인천외국어고등학교등을 설립해 30여년간 사학 발전에 힘을 쏟아온 그의 죽음을 두고 사학계는 할 말이 많았다.

    한국사립중고교법인협의회 이현진 부장은 7일 뉴데일리와의 전화통화에서 “전교조가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울분을 터트렸다. 이는 바로 2004년 있었던 인천외고의 전교조 사태를 염두에 두고 나온 말이었다. 이 부장은 “당시 전교조가 80세가 넘은 강 이사장의 집 앞에까지 찾아가 농성을 했다. 고인이 그 일 때문에 많은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러한 분노는 고인의 빈소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7일 서울 강남삼성병원에 차려진 빈소를 찾은 기자는 유족과 교사들로부터 냉대 아닌 냉대를 받아야만 했다. 이들에게 고인이 평생 사학계에 몸담으며 헌신한 이야기와 인천외고 사태 당시 느꼈을 괴로움을 알아보고자 몇가지 질문을 던졌지만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할 시기가 아니다’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한 유족은 기자를 따로 불러내 “취재를 열심히 하는 것은 좋지만 이만 돌아가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결국 기자는 빈소를 조용히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법인협의회의 이 부장은 유족과 교사들의 이런 냉담한 반응을 십분 이해했다. 지난 2004년 인천외고 사태 당시 수많은 기자들이 취재를 해갔지만 결국 전교조의 입장을 옹호하는 기사만 나갔다는 것. 기자라면 색안경을 끼고 볼 수밖에 없는 그들의 입장을 이해해달라는 것이었다.

    이 부장은 “부정 비리가 하나도 없던 인천외고를 전교조가 다 흔들어 놨다”며 “인천외고를 통째로 빼앗기 위해 전교조가 불법·범법 행위를 해도 정부는 그냥 놔두고 있었다. 결국 전교조가 강 이사장을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실제로 고 강 이사장은 명신여고와 영일외고 등을 설립해 30여년간 육영사업을 해온 공로를 인정받아 2002년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상했다.

    2004년 인천외고에는 어떤 일이 있었나

    인천외고 사태는 사실 아주 작은 데서 출발했다. 이 학교는 2004년 1월 영일외국어고등학교에서 인천외국어고등학교로 이름을 바꾸고 자립형 사립고로의 전환 준비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인천외고를 명문으로 부상시키기 위한 의욕에 가득찼던 이남정 전 교장이 2003년 3월 부임했다.

    2003년 5월 이 전 교장은 수행평가 문제지의 결재를 받으러 온 한 기간제 교사에게 “문제같지 않은 문제를 출제하지 말고 다시 만들어오라”고 지시한다. 문제는 이 교사가 심한 모멸감에 중도사직 하게 된 것. 

    또 이 전 교장은  영어 교사들에게 “영어 교재 선택과 학생들의 수업 성과물을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교사 7명이 '수업권 침해'라며 반발했다. 갈등이 촉발되면서 2003년 6월에는 매주 한차례씩 열리는 직원회의에 불참하는 교사들이 늘기 시작했다. 이에 이 전 교장은 회의에 불참한 교사들에게 시말서를 제출하라고 지시했지만 전교조 교사들은 이를 거부하고 같은 달에 열린 교사연수회에 마스크를 쓰고 참석한다.

    이러는 사이 이 전 교장은 회의에 불참한 18명의 교사들에게 90장의 경고장을 보내고 2003년 7월 5일 당시 국제부장을 맡고 있던 박춘배 영어교사를 보직해임했다. 박 교사의 보직 해임 직후 사태가 일단락 되는 듯 했으나 2004년 2월 이 전 교장이 박 교사와 이주용 일어교사에게 징계 사유서를 통보하면서 상황은 다시 악화됐다. 같은 달 24일 인천외고 교원징계위원회는 두 교사에 대해 최종적으로 파면 처분을 내렸다. 불법쟁의행위, 직무유기, 성실의무 위반, 복종의무 위반, 품의유지 위반, 집단행위 금지 위반 등의 사유에 의해서였다.

    사태가 이렇게 접어들자 같은 달 25일에는 파면교사 두명을 포함한 교사 23명이 학교 2층 교무실 앞에서 철야 농성에 들어갔다. 2004년 6월에는 학생 500여명이 전면 수업 거부에 들어간다. 학교 명칭이 바뀌기 전 영일외고 학생으로 입학했던 2~3학년 학생들은 전교조 교사의 입장을 지지했고 인천외고 학생으로 처음 입학한 1학년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학교 측의 입장을 지지했다. 학생들의 수업거부로 인해 학교에는 같은 달 8일부터 12일까지 임시휴교령이 내려졌다.

    양측의 대립이 극단으로 치닫자 강 이사장은  2004년 9월 이 전 교장을 같은 재단 산하 명신여고 교장으로 전보발령 조치를 내리게 된다. 인천지방노동위원회는 2004년 11월 파면됐던 두 교사에 대해 복직판정을 내렸다.

    전교조에 대한 고뇌가 드러나는 재단측의 '대국민 호소문'

    당시 사태와 관련해 재단측의 고뇌는 극에 달했던 것으로 보인다. 2004년 6월  강 이사장과 이남정 교장, 인천외고 학교운영위원장 배명화씨의 이름으로 발표된 대국민 호소문에는 이들의 고심이 역력히 묻어난다. 이들은 호소문에서 “이번 전교조 교사의 징계는 지난 1년간 불법행위에 대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단언했다.

    호소문에서 드러난 인천외고 전교조 교사의 횡포는 상상을 초월한다. 호소문에 따르면 박춘배 당시 부장교사는 회의 진행방식을 트집잡아 2개월간 회의에 불참했다. 이 교장이 이를 지적해 경고장을 보내자 한 교사는 이를 확대 복사해 ‘교장한테 받은 선물’이라는 제목을 달아 교무실 중앙 게시판에 붙이고 교사들을 선동하기 시작했다. 이에 전교조 교사들은 연대서명을 받아 경고장 철회를 요구하기 시작했고 전교조 교사 20여명은 직원 조회에 6번에 걸쳐 집단 불참 했다. 법으로 금지된 집단행동을 강행한 것이다.

    또 전교조 교사들은 교장실에 집단으로 난입해 난동을 부리고 몇개월에 걸쳐 ‘민주적 학사운영’이라는 문구를 적은 패찰을 근무시간과 수업시간에 패용하고 다녔다. 심지어 이들은 졸업사진 촬영시에도 이를 자랑스럽게 달고 촬영에 임했다. 이런 불법행위로 인해 박춘배 교사는 9회, 이주용 교사는 6회에 걸쳐 경고장을 받았다.  

    이 교사는 2003년부터 인터넷 까페를 개설해 본격적인 학생 선동에 나서기도 했다. 그는 근무시간에도 까페에 학교와 정부 정책에 편향적인 비판글을 올렸다. 이때 쓴 글만해도 총 788건, A4 용지로 1,090매 분량에 이른다. 

    재단측은 “교육자로서는 할 수 없는 자극적인 표현을 수도없이 써가며 글을 올렸다”고 말했다. 강 이사장 등은 “이들 교사들은 자신들의 파면이 부당하다고 생각되면 교원징계재심위원회에 재심 청구를 하면 된다”며 “그러나 전교조 교사들은 학생들을 선동하고 불법 가정통신문을 발송해 투쟁속보를 배포하고 왜곡된 보도자료를 만들어 주요 일간지에 실리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인천외고 사태와 관련해 전교조는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이 호소문에 따르면 전교조 교사들은 전교조 관련 외부 인사 수백명을 동원해 학교 앞에서 북과 꽹과리를 치면서 집단 시위를 했고 학교를 온통 현수막과 대자보로 도배했다. 호소문은 “2004년 6월에는 일부 학생들을 동원해 수업거부 집회를 개최하고 이 집회에 가담하지 않은 학생들을 집단으로 구타하거나 위협을 가했다”고 폭로했다.

    강 이사장은 휴교령이라는 극단적인 조치까지 취할 수 밖에 없었던 것에 대해 “더이상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알 수가 없어 학생 보호 차원에서 부득이 휴교령을 내리게 됐다”고 토로했다. 80이 넘은 노인을 상대로 전교조가 얼마나 집요하게 횡포를 부렸는지, 또 그 상황이 얼마나 고 강 이사장에게 압박이 되었을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개정된 사학법 문제로 사학계와 한나라당이 연일 정부에 항의를 하고 있는 요즘, 인천외고 사태를 뒤돌아보며 전교조를 향한 이들의 외침이 단지 기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비단 기자 개인의 생각 뿐일까. 고 강종락 이사장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