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의 위조 달러 제조·유통 의혹과 관련, 정부 당국이 지난 1990년 중반부터 북한의 위폐 제조·유통 실태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 정부 당국은 그간 북한 위조 제조·유통 의혹에 대해 ‘객관적 증거가 없다’며 미국의 의혹 제기에 대해 사실상 ‘일축’해 왔던 만큼 향후 파문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당장 한국과 미국의 외교가에서는 ‘한국 정부가 북한 감싸기에 급급한 것 아니냐’ ‘한국이 무슨 북한의 변호사냐’는 등의 불만의 목소리도 터져 나오고 있다. 

    22일 국가정보원 홈페이지에 게재된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정원 국정감사 내용 등에 따르면 국민의 정부 시절인 98년 11월 6일 국정감사에서 이종찬 당시 국정원장은 “북한은 최신 위폐감별기로도 식별하기 어려운 초정밀 위조달러(일명 수퍼노트)를 해외에서 유통시키다가 94년 이후 13회에 걸쳐 460만 달러 이상 적발됐다”고 밝혔다. 

    당시 이 원장은 적발된 북한 인사인 ‘북한노동당 국제부 부부장’ ‘루마니아 북한대사관 무역 참사’ ‘몽골주재 북한대사관 3등 서기관’ ‘몽·북합작회사 ’모란상사‘ 관계자’ 등 구체적인 실명까지 언급하면서 이같은 내용을 상세히 언급했었다. 

    이 원장은 그러면서 “국정원은 지난 4월 조직개편 때 국제범죄 전담조직을 확대 개편하고 미국 등 외국 정보수사기관과의 긴밀한 협력 하에 국제범죄 정보수집 및 분석활동을 강화하는 등 예방정보활동에 중점을 두면서 국제범죄 관련정보를 유관기관에 지원, 국제범죄를 색출 차단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또 1999년 10월 15일 국정원의 자료에서는 “‘2월은빛무역회사’ 등 3개 위폐 제조기관이 운영 중”이라고 보고하면서 “최신 위폐감별기로도 식별이 어려운 초정밀 위폐를 제조해 외교관·고위간부 등을 통해서 해외에 유통시키고 있다”고 보고했었다. 이는 미국이 북한 위조 달러 제조·유통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기에 앞서 한국 정부도 실태를 훤히 꿰뚫고 있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 위폐 제조 등 북한의 불법 외화벌이를 추적해 온 대북실무그룹의 팀장이었던 데이비드 애셔 전 미국 국무부 자문관은 22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정보당국이 나서서 (북한을 위해) 해명한다면 그들은 거짓말쟁이(bunch of liars)"이라며 ”몇 년 전부터 북한에서 오거나 북한을 경유하는 컨테이너에 대해 철저한 검색을 요청했으나 한국은 납득할 만한 이유 없이 이를 거부했다“면서 정부의 태도에 노골적인 불만을 표출했다. 

    그는 또 ‘(위폐 제조 등의) 증거가 없다’는 한국 정부 일각의 태도에 대해서는 “3년 전부터 매년 내가 직접 한국의 정보 및 외교 채널에 북한의 불법 행위를 설명했고, 설명을 들은 당국자들은 예외없이 북한의 불법 행위를 인정했다”고 강력 반박했다. 

    알렉산터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도 SBS 방송 ‘한수진의 선데이 클릭’(25일 방송예정) 22일 녹화에서 “위폐 발행에 (북한) 국가기관이 관여하고 있다는 신빙성 높은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정부 당국은 북한의 위폐 제조 유통 의혹에 대해 “미국이 구체적이고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아직 ‘북한이 위폐를 만들었다’고 단정할 만큼 정부 입장이 정리 되지 않았다”는 등의 어정쩡한 입장을 보이면서 미국의 의혹을 단순한 정황 증거로 치부해 버렸다. 

    이에 앞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외교부 청사에서 가진 내외신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이 위폐를 만든 게 확실하다면 분명한 불법행위이고 즉시 중단돼야 한다”는 단서 조항을 포함한 입장을 나타낸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