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1948년 4월 北 방문해 '군사력 증강' 확인이승만의 '건국 참여' 요청에 "적화될 나라" 거절
  • ▲ 정안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이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글로벌센터에서 '영화 건국전쟁 속 이승만과 김구'를 주제로 열린 학술세미나에 발제자로 참석했다. ⓒ정상윤 기자
    ▲ 정안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이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글로벌센터에서 '영화 건국전쟁 속 이승만과 김구'를 주제로 열린 학술세미나에 발제자로 참석했다. ⓒ정상윤 기자
    그동안 '민족통일의 화신' '대한민국의 국부' 등으로 칭송받아온 백범 김구가 건국에 참여해 달라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요청에 "어차피 적화(赤化)될 나라의 부통령은 되지 않겠다"며 북한의 남침을 기정사실화하고, '남한을 공산화시켜 인민민주주의 통일정부를 수립하자'는 내용의 남북협상 문건(조선 정치 정세에 관한 결정서)에 서명까지 했다는 충격적인 주장이 나왔다.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서울글로벌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영화 건국전쟁 속 이승만과 김구 학술세미나'에 참석한 정안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다큐멘터리 '건국전쟁'이 김구의 아킬레스 건으로 불리는 1948년 7월 11일 자 '김구·유어만(劉馭萬) 대화 비망록'을 거론해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며 "영화를 관람한 분들은 '백범일지' 등을 통해 '평화·통일의 메시아'로 알아왔던 김구가 '남한 공산화를 획책한 친공주의자'였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UN한국위원단엔 '남침' 가능성 언급 안 해

    이날 정 위원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김구와 김규식은 1948년 4월 '남북 분단'을 막고 '통일정부'를 수립한다는 명목으로 북한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과 '남북협상'을 벌였다.

    같은 해 5월 13일 유엔한국위원단은 '남북협상'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확인하기 위해 김구를 불러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이때 '미소 양군이 철퇴할 경우 진공기간 치안 유지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김구는 "'4.30 공동성명서'에 표시한 바와 같이 남북 양편이 서로 침범하지 않고 각기 현상을 유지하며 전국정치회의를 소집해 일체 문제를 토의·해결할 것"이라고 답했다.

    같은 날 오후 출석한 김규식도 '미군 철퇴 후 북조선군이 남조선에 쳐들어오지 않을 것을 당신은 믿는가'라는 중국 대표 유어만의 질문에 "꼭 어떻다고 담보할 수는 없으나 내전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언약이 김일성으로부터 제안됐으며 우리가 정중히 서명했던 만큼 나는 불신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구는 같은 해 9월 1일 잡지 '삼천리' 기자와의 인터뷰에서도 '조국의 완전통일은, 앞으로 몇년을 계산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아니, 그렇게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남은 남대로, 북은 북대로 가다가, 그때 합쳐질 것이다. 통일의 길로 바로 접어들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에 "그것은 미소전쟁을 이용한다는 뜻이냐?"는 추가 질문에 김구는 "아니다. 전쟁은 나지 않는다. 전쟁을 하고 싶어도 저들이 준비가 돼 있지 않아서 전쟁을 못할 것이다. 외세의 관여만 없다면 우리는 동족끼리 합쳐질 것"이라고 전쟁 가능성을 일축했다.

    ◆유어만에게 "'붉은 군대'가 남한 점령" 확신

    그런데 김구는 같은 해 7월 11일 자신을 찾아온 주한 중국 공사 유어만과의 대화에선 전혀 다른 이야기를 했다.

    김구는 "내가 '남북한 지도자 회의(남북협상)'에 참석한 동기 가운데 하나는 북한에서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알아보기 위함이었다"며 "공산주의자들이 앞으로 '붉은 군대(조선인민군)'의 확장을 3년간 중지한다고 하더라도, 그 사이 남한에서 무슨 노력을 다하더라도 '붉은 군대'의 수준에 대응할 만한 강력한 군대를 육성하기란 불가능하다. 소련은 비난받을 새도 없이 손쉽게 '붉은 군대'를 동원해 남침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이처럼 "지금 잠시 남한에 정부가 섰다고 해도 곧바로 소련에 의해 '인민공화국'이 선포될 것"이라는 김구의 충격적인 발언을 소개한 정 위원은 "당시 유어만과의 대화에서 김구는 이승만과 손을 잡고 부통령에 취임해 건국에 참여해 달라는 유어만의 간곡한 요청을, '어차피 적화될 나라의 부통령' 운운하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며 "이러한 발언은 이승만 정부가 수립되더라도 얼마 안 있어 소련의 지원을 받는 북한군의 남침으로 사라질 '과도(過渡) 정부'에 불과하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망언"이라고 비판했다.

    정 위원은 "유어만이 경교장을 방문해 밀담을 나눈 1948년 7월 11일 당시, 김구는 대한민국 건국 열차에 서둘러 승차하지 않으면 영원한 '정치적 미아'가 될 운명이었다"며 "그래서 유어만은 김구의 정부 참여를 설득하는 한편, 그의 진위를 파악하고자 한 것인데, 김구는 북한의 '남침'을 확신하며 손사래친 것"이라고 풀이했다.

    정 위원은 "1948년 4월 '남북협상'에 참여한 김구는 북한 공산주의자들이 조선인민군을 비약적으로 증강시킨 것을 확인했고, 남한에서 무슨 노력을 다하더라도 '붉은 군대'에 대응할 만한 강력한 군대를 육성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라며 "이에 경교장 밀담 후에도 △5.10 총선 무효 △주한미군 철수 △남북협상 △통일정부수립을 줄기차게 주장했던 것이다. 유어만의 비망록은 김구가 반(反)대한민국 불순세력이었다는 걸 입증하는 역사적인 문건"이라고 평가했다.
  • ▲ 정안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이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글로벌센터에서 '영화 건국전쟁 속 이승만과 김구'를 주제로 열린 학술세미나에 발제자로 참석했다. ⓒ정상윤 기자
    ▲ 정안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이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글로벌센터에서 '영화 건국전쟁 속 이승만과 김구'를 주제로 열린 학술세미나에 발제자로 참석했다. ⓒ정상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