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 일선 현장에 '마약 키트' 지급일선 경찰들은 마약 키트 휴대 안 해"마약운전자 발견해도 규정 없어 검사 강제 못해"전문가들, "관련 법제화 등 통해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해야" 지적
  • ▲ 경찰청이 개발한 휴대용 마약탐지 키트. ⓒ정상윤 기자
    ▲ 경찰청이 개발한 휴대용 마약탐지 키트. ⓒ정상윤 기자
    마약 투약 후 운전하다 사고를 내는 이른바 '마약운전'이 기승을 부리면서 경찰이 현장에서 즉각 검사가 가능한 '마약 분석 키트'를 도입해 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운전자가 거부하면 검사를 강제할 수 없는 데다 정작 현장에서 키트를 가장 필요로 하는 교통 관련 부서에는 키트 관리 권한이 없는 상황이어서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현장에서는 마약운전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법규와 키트 보급을 위한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경찰에 따르면, 경찰청은 지난해 12월 사고 현장에서 마약 검사를 더 쉽고 빠르게 진행할 수 있도록 전국 일선 경찰서에 '마약 키트'를 지급했다.

    배포된 시약기는 마약 투약 여부를 3분 안에 확인 가능하며 코카인·케타민·필로폰·대마 등 주로 투약하는 마약 6종을 검출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코로나 간이 키트처럼 간단해 휴대가 편하고 검사도 빠른 편이라 효과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른바 '제2 롤스로이스 사건'을 막겠다며 마약 분석 키트를 도입했다. 지난해 8월 신모(28)씨는 서울 압구정동에서 환각 상태에서 롤스로이스 차량을 몰다 20대 여성을 치어 숨지게 했다. 

    하지만 당초 계획과 달리 마약 분석 키트가 현장에서 제구실을 못한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우선 현행법상 법원의 영장 없이는 마약 투약 의심자를 대상으로 경찰이 마약 검사를 강제할 권한이 없다.

    현행법에는 '약물을 투약한 뒤 운전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으나 이를 단속할 구체적 절차나 방법을 정해 놓지 않은 탓이다. 또 약물 검사를 거부한다고 해서 처벌할 수 있는 조항도 전무하다. 

    현재 약물운전이 의심되는 운전자를 상대로 동의 없이 감사를 강제하는 '도로교통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됐지만 국회에 계류 중인 상태다.

    김희준 마약 전문 변호사는 "당사자 동의 없이는 키트 검사가 불가능하다"며 "음주측정불응죄처럼 처벌 조항이 있는 것도 아니라 키트 사용 실효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현재로서는 마약 키트를 이용한 마약 검사 이전에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을 운전자에게 충분히 공지하고 명확히 승낙을 받아야 한다"면서 "(경찰관이) 고지 없이 검사부터 하면 이후 증거능력상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설면했다.

    마약 키트 관리 권한이 강력계에 있다 보니 마약 키트 사용률이 낮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일반적으로 교통과나 관할 지구대에서는 마약수사와 관련한 전문성이 부족하다 보니 강력계에서 마약 키트를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검사 방식이 바뀌어도 여전히 소변과 체모를 통한 마약 투약 여부 확인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의 한 일선 경찰서 교통과 관계자는 "단속 현장에서는 (키트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며 "마약 투약 의심자가 발견되면 키트 관리 부서에 요청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마약 키트 관리 측면에서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며 "법적 절차의 보강도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천지역 한 교통과 관계자도 "통상 마약 분석 키트는 마약반이나 강력반에서 가지고 있다"며 "음주단속 현장에서 마약 투약 의심자가 보이면 교통과에서 모든 것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타 부서 협조를 받아 총력대응을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마약 의심자에 한해) 요청을 통해 소변과 모발 채취(30수 이상) 검사를 진행한다"며 "마약 사건이 전체 범죄 중 보편적인 사안은 아니라 실제 키트 사용이 많지 않은 편"이라고 말했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마약 검사는 음주 단속처럼 강제화할 수 없는 부분"이라며 "약물 사용이 의심되면 단속과 마약 검사를 가능하도록 법제화가 우선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 교수는 "음주운전처럼 약물운전 사고도 많은 만큼, 마약반만 키트를 관리하고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교통경찰관들도 이를 소지하고 검사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법적 보완이 절실하며 관리·단속에 대한 법적 부분이 해결돼야 교통경찰이 음주 단속을 하듯 (키트를 이용해) 마약 단속도 편하게 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편, 지난해 7월 정운천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발의한 '도로교통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운전자 동의 없이도 현장에서 약물 투약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운전자가 약물을 복용했는지 하위 법령으로 정하는 검사 방법으로 측정할 수 있도록 만들어 운전자가 경찰 측정 요구에 응하도록 한 것이 골자다.

    정 의원은 "현행 법령에 약물 측정 방법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도록 하고 운전자 동의가 없어도 측정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마약운전의 단속과 예방을 강화하고 교통안전을 도모하려는 것"이라고 법안 발의 취지를 설명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