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자치구,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 의료기관 점검 위반 113곳 중 80곳이 의원들… 향정 사범 65.4% 기록 전문가들 "오·남용 의사 법적 처분 근거부터 마련해야"
  • ▲ 최근 3년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 의심의료기관 점검' 내역. ⓒ윤영희 의원실
    ▲ 최근 3년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 의심의료기관 점검' 내역. ⓒ윤영희 의원실
    서울시와 자치구(보건소)가 올해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을 예방하기 위한 의심의료기관 점검에 나선 결과, 621곳의 대상 기관(병원·의원·동물병원) 중 113곳의 의료기관에서 위반 내역이 발견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마약류 의약품을 무분별하게 처방해준 다수의 의원급 병원들(소규모 의료기관)이 마약류취급업무정지 처분을 받았지만, 과징금 1000만여 원을 내고 진료를 이어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경미한 행정처분이 오히려 일부 의료인을 사실상 '마약상'으로 내몬 것 아니냐는 지적과 함께, 업무정지에 해당하는 과징금 부과 기준을 조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다. 

    16일 윤영희 서울시의원이 제공한 '2022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마약류사범 단속 현황 결과, 향정사범은 1만2035명으로 전체의 65.4%로 마약·대마사범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향정신성의약품(향정)은 의료용 목적으로 사용하는 마취제·수면제에 해당하며, 대표적으로 케타민·졸피뎀·엑스터시 등이 있다. 투약 비율 역시 6208건으로, 마약 투약(293건)의 21배다. 

    향정을 오남용하는 일부 의료인 탓에 의료기관이 의료용 마약류 불법 유통처로 굳어지고 있으며, 이에 따른 책임론도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 ▲ 2022 마약류 범죄백서 중 일부 내용 발췌. ⓒ대검찰청
    ▲ 2022 마약류 범죄백서 중 일부 내용 발췌. ⓒ대검찰청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 의심의료기관 점검' 내역을 살펴보면 점검 대상 621곳 중 411곳이 의원이었으며, 이 중 80곳이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다. 점검 대상 기관 위반율로 환산하면 의원 비중은 19.5%로 병원·동물병원 대비 가장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위반 내역 항목을 보면 △업무목적 외 투약 여부 의심 △처방전 없이 마약류 사용 △재고량 차이 △보고 위반 △저장시설 점검 위반 △사용기한 경과 마약류 사용 △허가사항 변경 미신고 △기타 위반 행위 등이 있다. 위반 사례 113건 중 '보고 위반'이 65건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업무목적 외 투약 여부 의심'이 14건으로 뒤를 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의원은 행정지도를 비롯해 경고·계도 등 가벼운 행정처분을 받았으며, 업무정지 7일, 15일, 1개월이 주를 이뤘다. 과징금의 경우도 최소 9만원에서 최대 1080만원까지 책정됐다. 

    특히 마약류취급업무정지 1일을 갈음할 수 있는 과징금 액수는 겨우 3만원으로, 적발되더라도 하루 3만원의 과징금만 내면 자유롭게 향정 처방을 이어갈 수 있다. 

    이렇다 보니 약 1년치에 해당하는 과징금 1080만원의 수치가 눈에 많이 띄었고, 업무정지 3개월(90일)을 과징금 270만원으로 바꾸는 등의 사례도 다수 확인됐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행정처분의 기준'을 살펴보면 우선 마약류취급자 또는 마약류취급승인자가 법 제11조를 위반해 마약류 취급에 관한 내용을 거짓으로 보고하거나 보고하지 않으면 1차 위반시 각각 3개월과 15일의 업무정지에 처한다. 2차 위반시에는 각각 6개월과 1개월, 3~4차 위반시에는 허가·지정·승인취소에 처한다.

    이어 마약류취급자가 법 제32조를 위반해 처방전에 따르지 않고 투약 등을 하거나 처방전을 거짓으로 기재한 경우 1차 위반시 업무정지 6개월, 2~4차 위반시 업무정지 12개월에 처한다. 또 제21조 제7항에 따라 소지한 마약의 재고량과 보고 또는 확인한 재고량 사이에 차이가 있는 경우 1차 위반시 업무정지 3개월, 2차 위반시 업무정지 6개월에 해당된다.
  • ▲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행정처분의 기준. ⓒ윤영희 의원실
    ▲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행정처분의 기준. ⓒ윤영희 의원실
    "향정 의료용 마약, 중장기적으로 불법 마약보다 위험… 의료인 처벌 강화해야"

    마약류 의약품의 공급처로 의심받는 의원급 병원들이 무거운 처벌을 피해가는 사례가 다수 발생하자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이범진 한국마약퇴치연구소장은 우선 의료현장의 한계점을 설명했다. 이 소장은 "의사의 경우, 환자가 아프다고 약을 처방해 달라고 하면 안 줄 수도 없다"며 "특정 환자에게 10알을 주든 20알을 주든 법적 처분을 받게 하는 것이 힘들다"고 설명했다. 

    이 소장은 그러면서 "의사의 경우 일반약 또는 의료용 마약을 처방할 법적 권리가 있어 오·남용을 한다고 해도 기준을 따지는 것이 사실상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 소장은 "현실적으로 실시간 의료기관에 대한 관리·감독이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어느 순간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의사들의 셀프 처방 역시 큰 문제 중 하나"라고 언급했다.

    이에 이 소장은 "처방이 남발되지 않도록 향정 의약품의 경우는 외부 기관 등에서 수시로 관찰하고 감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시중 의료용 마약이 불법 마약보다 약한 중독성을 갖기는 하나 중장기적으로 1회용 마약에 비해 더 위험할 수 있다"고 우려한 이 소장은 "처방받으러 온 환자들이 중독되면 투여량을 계속 늘리는 경향이 많아 주의가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이 소장은 "양심을 어긴 의사들이 처벌받을 수 있는 강력한 법적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며 "의사들은 양심을 지키고 오·남용 처방이 반복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법무법인 진실의 마약범죄 전문 박진실 변호사는 의료용 마약 오·남용 건과 관련해 "일단 과징금 시스템을 문제 삼기보다 의료인들의 의식을 제고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무작정 영업정지로 의원급 병원들이 문을 닫으면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올 수 있다"며 "과연 무조건 막는 것이 최선일지 생각해볼 문제"라는 것이다.

    다만 박 변호사는 "하루에 과징금 3만원을 내는 것은 오래 전에 마련된 법이라 현재 금액과 맞지 않다"며 "현 시대에 맞춰 손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박 변호사는 "영업정지를 단순히 금액으로 환산하는 근거도 바꿔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