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 "권태선 해임처분 효력 정지" 판결"본안서 이기더라도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 입어"강규형 해임집행정지신청 땐 개인피해 인정 안돼권태선 이사장 복귀로, 방문진이사 9人 정원 초과與 "같은 사안을 두고, 판사 따라 다른 판결 내려"
  • ▲ 정연주 전 방송통신심의위원장(왼쪽부터), 권태선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한상혁 전 방송통신위원장, 남영진 전 KBS 이사장이 11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해직 방송기관장' 긴급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정상윤 기자
    ▲ 정연주 전 방송통신심의위원장(왼쪽부터), 권태선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한상혁 전 방송통신위원장, 남영진 전 KBS 이사장이 11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해직 방송기관장' 긴급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정상윤 기자
    지난 11일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부장판사 김순열)가 MBC 최대 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권태선 이사장이 방송통신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해임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 사실상 '면죄부'를 부여한 것을 두고 정치권과 언론계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국민의힘은 "재판장의 성향에 따라 같은 사안에 대한 판단 결과가 다르게 나왔다"며 해당 재판부가 종전 법원 판결과 완전히 배치되는 판결을 내렸다는 주장이다.

    이날 재판부는 "권태선 이사장이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면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한다"며 "해임처분 효력을 정지할 긴급한 필요가 있다"고 밝혔으나, 앞서 강규형 명지대 교수가 'KBS 이사 해임처분'에 대한 집행정지를 신청했을 당시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부장판사 이진만)는 "해임처분으로 신청인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있다고 보기 어려워, 해임처분 집행을 정지할 긴급한 필요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정반대 판결을 내린 바 있어 법원의 중립성과 신뢰성이 훼손될 수 있는 결과가 나왔다는 지적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같은 날 남영진 전 KBS 이사장이 윤석열 대통령을 상대로 낸 해임처분 효력 집행정지 신청의 경우 서울행정법원에서 기각 판결을 내렸다는 사실이다.

    남 전 이사장의 신청을 심리한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부장판사 신명희)는 "KBS 이사회의 보궐이사와 새 이사장이 선출된 가운데, 남영진 전 이사장은 국민권익위원회 조사를 받고 있다"며 "해임처분 효력이 정지돼 남 전 이사장이 잔여임기 동안 직무를 수행할 경우 이사회의 심의·의결에 장애가 발생하거나 결과의 공정성이 의심받을 수 있어 공익에 중대한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해임으로 불이익을 입는 것은 사실이나, 남 전 이사장이 입게 될 '손해'와 '공익'을 비교할 때 전자보다 후자를 옹호해야할 필요가 크다"고 판시했다.

    방문진 이사회, 10명으로 늘어나는 기형적 상황 초래

    행정2부 재판부는 서기석 이사장과 황근 이사 등이 보궐이사로 임명된 상황에서 남 전 이사장이 다시 업무에 복귀하면 KBS 이사회의 정상적인 업무 수행이 힘들어질 것으로 판단했다.

    본안 판결이 나올 때까지 남 전 이사장의 지위가 인정된다면 이미 이사장으로 선출된 서 이사장과 양립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뿐만 아니라 남 전 이사장의 의결권 성립 여부를 둘러싸고 이사회 내 갈등이 촉발될 우려가 있다는 취지다.

    그러나 같은 날 권 이사장의 해임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한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부장판사 김순열)는 "이사 임기를 원칙적으로 보장하되 직무 수행에 장애가 될 객관적 상황이 발생한 경우에만 해임을 허용하는 게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보장하는 공익에 더 부합한다"며 권 이사장의 복귀로 방문진 이사회가 10명으로 늘어나는 기형적인 상황을 초래했다.

    또 행정5부는 "권 이사장이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보수를 받지 못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금전 보상으로는 참고 견디기가 곤란해 본안에서 이기더라도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라며 권 이사장이 입게 될 개인적 피해가 커, 해임처분의 효력을 정지할 긴급한 필요가 있다고 해석했다.

    이는 해임처분으로 남 전 이사장이 개인적 불이익을 받을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KBS 이사회의 심의·의결 업무를 공정하게 수행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행정2부의 판결과도 배치되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민의힘 간사인 박성중 의원은 12일 원내대책회의에서 "판사에 따라 어떻게 이렇게 제각기 다른 결정을 할 수 있냐"며 "제각기 다른 판사의 결정을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박 의원은 "또 해임사유의 부당성에 대한 부분은 본안 청구에서 판단할 사항인데 재판부가 이를 집행정지에서 무리하게 해석한 측면이 있다"며 "이번처럼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해준다면 앞으로 부정부패를 저지른 관료가 어떤 비위나 잘못을 저질러도 행정소송이 종결될 때까지 방통위가 해임할 수 없게 되고,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께 돌아 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부동노동행위·편파보도 지속됐는데, 어떻게 '과거 일'로 치부하나?"

    언론계에서는 △막강한 권한을 지닌 권 이사장을 방문진 이사회 구성원 중 '1인의 이사'로 치부하고 △MBC의 부당노동행위와 불공정보도를 방치한 권 이사장에 대해 '관리자 주의 의무'를 위반하지 않았다고 해석한 판결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MBC노동조합(3노조, 위원장 오정환)은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가 권 이사장의 해임처분 효력을 정지시키는 판결을 내린 직후 "김순열 판사 등 재판부의 판단에 도무지 동의할 수 없다"는 취지의 성명으로 강한 반발을 보였다.

    이 성명에서 MBC노조는 "이제 겨우 언론노조에 저항할 용기를 내던 MBC 직원들에게 법원이 찬물을 끼얹었다"며 "끔찍한 편파보도와 선거공작에 대해 기자들이 하나둘 일어나 그것은 잘못이었다고 말하던 중이었는데, 재판부는 '권태선 이사장의 해임사유 상당 부분이 방문진 이사회의 심의·의결을 거쳤기 때문에 개인적인 의무 위반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그러면 함께 잘못한 다른 이사들도 문책해야지, 이사회를 거쳤으니 권 이사장의 책임이 없다고 하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느냐"고 다그친 MBC노조는 "더구나 방문진 이사장은 이사들 중 유일한 상근직으로 다른 이사들과 영향력과 책임에서 큰 차이가 난다"며 "오죽하면 방문진 사무처장이 권태선 전 이사장의 지시라며 신임 방문진 이사에게 과거 이사회 회의록도 안 보여줬겠는가"라고 반문했다.

    MBC노조는 "그처럼 방문진과 MBC 경영에 막강한 권한을 휘둘러온 사람에게 재판부가 '중요사항의 결정에 관해서는 이사회 구성원 중 1인의 이사로서 지분적인 의사결정 권한만을 행사한다'고 판시한 것에 현실을 외면했다는 한탄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개탄했다.

    MBC노조는 "재판부는 또 '과거에 있었던 MBC의 경영상 잘못에 대해 권 이사장에게 책임이 있는지 다툼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고 판시했으나, MBC 내 차별과 박해는 과거의 일이 아니"라고 못박았다.

    "민노총 언론노조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전임 국장들이 수년째 주차권을 팔고 음반 가사를 받아적고 있다"며 "6년째 기자 일을 못하는 기자가 수십 명"이라고 토로한 MBC노조는 "만약 서울행정법원 제5행정부 판사들이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6년간 판사 업무 대신 다른 법원 직원 업무를 강요받고 있다면 그때도 '과거에 있었던 잘못'이라는 결정문에 동의할지 궁금하다"고 밝혔다.

    또한 MBC노조는 "권 이사장이 2021년 8월 방문진 이사장에 취임한 이후 MBC 안에서 부당노동행위가 계속됐다"며 "MBC가 20대 대선을 앞두고 끔찍한 편파보도를 자행했고, 선거 이틀 전 부정선거에 버금가는 가짜뉴스를 대서특필했는데, 그게 어떻게 '과거 일'이 될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이 같은 MBC의 노골적인 부당노동행위와 불공정보도를 권 이사장이 몰랐다면 자격미달이고, 알고 방치했다면 직무유기"라고 질타한 MBC노조는 "어느 경우든 MBC 경영을 관리·감독할 기관의 수장으로서 책임을 져야 함에도 법원이 권 이사장의 손을 들어준 것은 MBC의 정상화와 공정보도 회복에 정면으로 거스르는 결정"이라고 규탄했다.

    "'바이든-날리면' 보도 비판에 날조·왜곡 아니라고 감싸"

    MBC 새 기자회(공동회장 현원섭·정병화)는 "권 이사장은 MBC 사내에서 왜곡보도 시비가 불거질 때마다 그 경위를 파악하거나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려고도 하지 않았다"며 "불공정보도를 방조한 권 이사장이 어떻게 '관리자 주의 의무'를 위반하지 않았다고 해석할 수 있느냐"고 따져 물었다.

    12일 <권태선 방문진 이사장이 불공정보도 책임자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한 새 기자회는 "법원은 '직무수행에 장해가 될 객관적 상황이 발생한 경우에 한해 해임을 허용하는 것이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 보장이라는 공익에 부합한다'고 판시했는데, 권 이사장의 직무 복귀가 과연 MBC의 '공정성'이라는 공익에 부합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새 기자회는 "이른바 '바이든-날리면' 보도와 관련, MBC는 다른 언론도 다 보도한 사안이라고 강변했지만, 자막에 '(  )'까지 쳐가며 '(미국)'이라고 윤석열 대통령이 하지도 않은 말을 보도한 곳은 MBC밖에 없다"며 "MBC는 여전히 당시 무슨 의도로 '(미국)'이라는 자막을 달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지난해 9월 22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에 앞서 같은 사안을 보도한 채널A는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 비속어 대상도 미 의회가 아닌 '야당'"이라는 대통령실의 반론을 반영해, 보다 객관적인 보도를 했다고 소개한 새 기자회는 "따라서 '다른 언론사들도 똑같이 보도했다'는 MBC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며 "이 사안을 제일 먼저 보도했던 MBC가 반론취재 없이 왜곡보도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꼬집었다.

    새 기자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권 이사장은 ('바이든-날리면' 보도는) 날조·왜곡이 아니라고 적극 옹호했다"며 "오히려 이런 주장이 언론탄압이라고 반박했다"고 상기했다.

    새 기자회는 "△MBC 취재기자가 '김건희 논문 표절 의혹' 취재 과정에서 경찰을 사칭했을 때도 △또 다른 기자가 '한동훈 법무장관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야당 의원에게서 받은 개인정보 관련 자료를 유튜버에게 넘겼다는 의혹이 제기됐을 때도 권 이사장은 입을 다물었다"며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방문진 내에서 보도 책임자를 불러 경위를 따져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권 이사장은 번번이 '보도의 독립성을 침해할 수 있다'며 거부했다고 한다"고 밝혔다.

    "이런 점 때문에 권 이사장이 MBC 보도의 독립성을 보장하려 한 것이 아니라 불공정보도를 방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해석한 새 기자회는 "이러니 20대 대선을 불과 이틀 앞두고 '김만배 인터뷰' 같은 보도가 나온 것"이라며 "MBC는 아무런 검증이나 사실 확인 없이 뉴스타파의 보도를 그대로 인용해 10분 48초 동안이나 중계보도를 해놓고, '다른 언론사도 다 보도했는데 왜 우리만 공격하느냐'고 언론탄압 코스프레를 하는 중"이라고 꼬집었다.

    새 기자회는 "여당이 해당 기자들을 고발하고 '가짜뉴스 청문회'를 추진하는 상황에서도 회사는 자체 진상조사를 시작조차 하지 않고 있다"며 "MBC를 관리·감독해야 할 방문진 이사장이 제 역할을 하지 않는 한 MBC의 편파보도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충고했다.

    "특히 내년 총선이 다가올수록 지난 대선을 앞두고 그랬던 것처럼 불공정보도·왜곡보도가 기승을 부릴 우려가 크다"며 "민주당에 유리하고 국민의힘에 불리한 기사라고 판단되면 검증이나 반론취재 없이 일단 확대보도하고 보는 사태가 반복될 수 있다"고 우려한 새 기자회는 "권 이사장은 변함없이 MBC의 불공정보도를 방조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하루속히 끊어내지 않는다면 정말이지 MBC에 미래는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