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부 "최재형 순국 추정지 흙과 최 엘레나 여사 유해 현충원에 안장"유해 없는 최 선생도 국립묘지 안장할 수 있도록 국립묘지법 개정독립운동 내조한 엘레나 여사 유해 국내 봉환해 부부합장묘 조성
  • ▲ AI로 복원된 최재형 선생과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 여사. ⓒ국가보훈부
    ▲ AI로 복원된 최재형 선생과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 여사. ⓒ국가보훈부
    러시아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최재형 선생과 부인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 여사가 100여 년 만에 국립서울현충원에서 다시 만난다.

    국가보훈부는 "최재형 선생의 순국장소로 추정되는 러시아 우수리스크의 흙과 70여 년간 키르기스스탄 공동묘지에 묻혀 있던 부인 최 엘레나 여사의 유해를 모셔와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108번 자리에 합장한다"고 1일 밝혔다.

    보훈부에 따르면 최재형 선생의 묘는 1970년 11월17일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108번에 조성됐다. 당시 최 선생의 후손임을 주장한 최규흠씨가 원호처(현재의 국가보훈부)에 애국지사 묘역에 최재형 선생의 묘를 이장해달라고 신청했고,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1990년 한국과 소련의 수교 이후 최 선생의 진짜 유족인 최 엘리자베타가 한국 땅을 밟자 진실이 밝혀졌다. 최 엘리자베타는 최규흠씨를 가짜 유족이라고 지목했고, 국가보훈처가 2009년 1월 유전자 검사 결과를 통해 뒤늦게 진짜와 가짜 유족을 공식적으로 구분했다.

    유족 연금을 받기 위해 최규흠씨가 유족 행세를 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하지만 이 사이(2006~2009년) 최 선생의 묘는 멸실됐고, 진짜 유족들은 이와 관련해 아무런 통보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최 선생의 진짜 유족들은 멸실된 묘의 복원을 지속적으로 희망해왔다. 하지만 유골이나 시신을 안장하도록 규정한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국립묘지법)'에 따라 최 선생의 묘는 복원할 수 없었다. 1920년 4월 일본군에 의해 순국한 최 선생의 유해를 현재까지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보훈부는 유골이나 시신이 없는 순국선열의 위패와 배우자의 유골을 함께 묘에 합장할 수 있도록 올해 1월 국립묘지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지난 6월30일 국회 통과, 7월11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시행됐다. 최 선생처럼 유해가 없는 독립유공자도 국립묘지에 모실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최 선생의 국립묘지 안장 문제 해결과 함께 보훈부는 유족들과 상의해 남편과 수십년을 떨어져 지낸 최 선생의 부인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 여사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해 해후의 연을 이어주기로 결정했다.

    그녀의 자녀들에 따르면 최 엘레나 여사는 1897년경 최재형 선생과 결혼한 이후 8명의 자녀를 낳고, 선생의 독립운동을 내조했다. 또 안중근 의사 순국 이후 남은 가족들을 보살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편인 최재형 선생의 순국 이후에는 자녀들과 힘겨운 생활을 이어가다 1952년 사망했다.

    보훈부는 정우택 국회부의장과 주키르기즈공화국 대한민국 대사관, 최재형기념기념사업회, LG유플러스 등의 도움을 받아 최 엘레나 여사의 유해 봉환작업에 착수했다. 키르기스스탄 현지에서 유해 수습 등 준비 절차에 돌입한 보훈부는 오는 7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최 엘레나 여사의 유해를 국내로 모실 예정이다.

    또한, 최재형 선생이 순국하신 장소로 추정되는 러시아 우수리스크의 최재형 선생 기념관(구 최재형 선생 고택) 뒤편 언덕에서 채취한 흙을 오는 11일 국내로 반입해 국립묘지에 안장할 계획이다. 오는 12일과 13일 서울현충원 현충관에 국민추모공간을 마련하고, 오는 14일에는 '백년만의 해후, 꿈에 그리던 조국 대한민국'이라는 슬로건으로 부부 합장식을 거행한다.

    박민식 보훈부장관은 "국가보훈부가 최재형 선생 순국 100여 년만에 순국 추정지의 흙과 배우자이신 최 엘레나 여사의 유해를 대한민국으로 모셔와 서울현충원에 부부합장묘를 만들게 돼 너무나 뜻깊다"며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으나 유해마저 찾을 수 없었던 순국선열을 단 한 분도 소홀함 없이 예우하는 일류보훈을 실현하는 첫걸음으로 생각하고 앞으로도 순국선열을 예우하는데 모든 정성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독립지사 최재형은 1960년 8월15일 함경북도 경원에서 태어나 1920년 4월7일 순국했다. 그는 1908년 4월 러시아 연해주 연추에서 이범윤 등과 함께 동의회(同義會)를 조직해 총재로서 한인동포들의 단결과 애국심을 고취하고, 의병세력을 규합하여 국내진공작전을 전개했다.

    1908년 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발행되는 '대동공보'의 사장으로서, 한인동포들의 권익과 조국의 국권회복을 위한 언론활동을 펼쳤다. 1911년 12월에는 러시아 연해주 한인동포들의 권익과 조국 독립을 위해 조직된 한인단체 권업회의 회장으로 선출됐으며, 1918년 6월 전로한족중앙총회에서 명예회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1919년 3월 대한국민의회 외교부장에 선임됐고, 그해 4월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제1회 임시의정원 회의에서 재무총장으로 선출됐다. 1920년 4월 일본군에 체포된 이후 순직했다. 정부는 최 선생의 공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