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식 국가보훈부장관 등 각계 인사와 기념사업회원 등 500여 명 참석 예정박민식 "이승만, 임시정부와 대한민국 정부의 초대 대통령… 명실상부한 국부"
  • ▲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이 지난 3월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이화장에서 열린 건국대통령 우남 이승만 탄신 148주년 기념행사에서 AI 기술로 컬러로 복원한 우남 사진을 소개하고 있다. ⓒ정상윤 기자
    ▲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이 지난 3월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이화장에서 열린 건국대통령 우남 이승만 탄신 148주년 기념행사에서 AI 기술로 컬러로 복원한 우남 사진을 소개하고 있다. ⓒ정상윤 기자
    대한민국의 국부(國父) 이승만 초대 대통령 서거 58주기 추모식이 19일 오전 11시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거행된다.

    (사)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회장 황교안) 주관으로 진행되는 추모식에는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을 비롯한 각계 인사와 기념사업회 회원, 시민 등 50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1875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이 전 대통령은 1896년 서울에서 협성회(協成會)를 조직하고 협성회보(協成會報)와 매일신문(每日新聞) 주필로 활동했다.

    이 전 대통령은 1898년 독립협회 해산 과정에서 고종황제 폐위 음모사건에 연루돼 1904년 8월까지 5년7개월간 한성감옥에 투옥됐으며, 감옥에서 '청일전기(淸日戰紀)'를 편역하고 '독립정신'을 저술했다.

    1904년 11월 미국으로 건너간 이 전 대통령은 조지워싱턴대·하버드대·프린스턴대에서 각각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고 1910년 귀국했다.

    1912년 세계감리교총회 한국대표로 임명돼 다시 미국으로 건너간 이 전 대통령은 하와이에 근거를 두고 '태평양잡지' '태평양주보'를 발간했으며, 박용만·안창호와 협력해 독립운동에 전념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고, 그해 4월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이 전 대통령은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됐다. 이후 이 전 대통령은 1921년 5월에는 워싱턴군축회의, 1933년에는 제네바국제연맹회의에 참석해 일본의 침략을 폭로했다.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이 전 대통령은 임시정부 구미위원장으로 미국 대통령과 국무성을 상대로 임시정부 승인을 요구하는 외교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국내외에 선포하고 초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이 전 대통령은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한 1950년 6·25전쟁에서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하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는 등 정치·경제·교육·군사 등 여러 분야에서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토대를 마련했다.

    박 장관은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대한민국 정부의 초대 대통령으로서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모두 이끈 명실상부한 국부이자 공산세력의 침입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수호한 독립과 호국을 아우르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큰 별"이라며 "정부는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해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신 모든 분들이 제대로 예우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