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尹정부 핵정책‧원자력외교 과제와 실행전략' 학술회의 참석"韓 핵무장 시 국제사회 제재 불가피… 무역손실 연간 5000억 달러 이를 것""美, 핵무장 추진하던 박정희에 '핵개발 시 한미동맹 종료' 최후통첩하기도""한미원자력협정 개정해 '농축과 재처리권한' 획득하는 것이 한국에 실익" 日 로카쇼무라·호주 핵추진잠수함 사례에 주목… "미국와 신뢰 강화해야"
  • ▲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소장 이문희), 한국핵정책학회(학회장 이상현),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이 19일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에서 '윤석열 정부의 핵정책‧원자력외교 과제와 실행전략'을 주제로 비확산‧원자력 학술회의를 공동 주최했다.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참석자들. ⓒ서성진 기자
    ▲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소장 이문희), 한국핵정책학회(학회장 이상현),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이 19일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에서 '윤석열 정부의 핵정책‧원자력외교 과제와 실행전략'을 주제로 비확산‧원자력 학술회의를 공동 주최했다.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참석자들. ⓒ서성진 기자
    세계 6대 원자력발전소 강대국이면서도 에너지 빈곤국인 한국이 에너지안보를 확보하려면 현행 '한미 원자력협정'을 개정해 우라늄 농축권한을 확보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제언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과거 두 차례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위반한 전력이 있는 한국의 핵무장은 국제사회의 제재를 초래할 뿐 아니라 한미협정 개정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것이라며 '핵무기 불보유'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시급히 복원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외교안보·원자력 전문가들은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외교부 국립외교원에서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소장 이문희), 한국핵정책학회(학회장 이상현),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이 '윤석열 정부의 핵정책‧원자력외교 과제와 실행전략'을 주제로 공동 주최한 학술회의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 ▲ 김원수 전 유엔 사무차장 겸 군축 고위대표가 19일 오후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소장 이문희), 한국핵정책학회(학회장 이상현),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이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에서 공동주최한 비확산‧원자력 학술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서성진 기자
    ▲ 김원수 전 유엔 사무차장 겸 군축 고위대표가 19일 오후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소장 이문희), 한국핵정책학회(학회장 이상현),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이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에서 공동주최한 비확산‧원자력 학술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서성진 기자
    김원수 "北보다 파장 심각한 韓 핵무장, 국제사회 제재 불가피"

    기조연설에 나선 김원수 전 유엔 사무차장 겸 군축 고위대표는 북핵 위협에 따라 높아지고 있는 국내 핵무장 여론을 언급하며 "국민의 상당수는 핵무기 보유가 부정적인 낙인이 아니라 '강대국 지위를 인정받는 상징'이라고 인식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전 사무차장은 "우리가 NPT를 위반해 핵무장하면 주변국에 '핵 도미노 현상'을 불러와 NPT 체제 자체가 붕괴되는 신호탄이 될 것이므로 북한사례보다 파장이 훨씬 심각하다"며 "우방을 비롯한 국제사회로부터 제재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뒤틀린 핵 담론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도록 정부와 학계, 시민사회가 모두 힘을 합쳐 평화적 핵 이용과 핵무기 불보유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시급히 복원해야 한다"며 "안전한 원자력과 핵안보는 NPT 차원뿐 아니라 '2050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잡아야 할 두 마리 토끼"라고 강조했다.

    한용섭 "핵무장 시 무역손실 연간 5000억불… 핵 자강론 안 돼" 

    초대 한국핵정책학회장 겸 학회 창립자인 한용섭 전 국방대 부총장은 "우리가 핵무장한다면 원자력 연구개발과 원전건설과 수출 모두 못 하게 된다. 서울대 김병연 국가미래전략원장에 따르면, 우리가 NPT를 탈퇴하고 핵무기를 만들 경우 국제사회의 제재로 연간 5000억 달러의 무역손실을 입는다"며 "그런데 일부 전문가들은 '핵 자강론'을 내세우면서 우리의 NPT 탈퇴를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우방이 지지해 줄 것처럼 국민들을 선동한다"고 비판했다.

    한 전 부총장은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이 핵개발 시도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압박과 제재를 받아왔던 역사를 왜 망각하는가"라고 반문하면서 "박정희 대통령이 끝까지 핵무장을 주장하자 미국이 제임스 슐레진저 당시 국방장관을 보내서 '만약에 한국이 핵개발을 하겠다면 한미동맹을 종료(terminate)하겠다'고 최후통첩을 했다"고 언급했다.

    한용섭 "北, 대북제재 파기와 韓제재 주장하고 좌파들은 '보수정권 퇴진운동' 벌일 것"

    한 전 부총장은 이어 "민족주의를 내세운 독자 핵무장의 유일한 장점은 북한과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을 달성할 수 있고, 국민들의 안보불안을 (제한적으로) 해소할 수 있다는 것뿐"이라며 "한국의 독자 핵무장으로 한미관계는 악화할 것이고 미국의 확장억제력 제공 명분도 사라진다. 북한, 러시아, 중국의 한미동맹 흔들기 공세는 격화할 것이다. 북한은 '대북제재를 파기하고 한국에 대한 제재를 실시하라'고 주장함으로써 북한은 공세, 한국은 수세로 바뀔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한국의 좌파 민족주의자들이 지금은 군사주권을 내세우면서 독자 핵개발을 지지하지만, 우리가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기 시작하는 순간 입장을 바꿔 '보수정권 퇴진운동'을 하며 돌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한국이 핵무기를 개발하면 남북한 핵군축 협상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인도-파키스탄의 경우 핵군축은거녕 재래식 군사충돌만 발생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 ▲ 신동익 전 오스트리아 대사 겸 주비엔나 국제기구 대사(왼쪽)와 조청원 후행핵주기고등기술원 이사장(오른쪽)은 19일 오후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소장 이문희), 한국핵정책학회(학회장 이상현),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이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에서 공동주최한 비확산‧원자력 학술회의 제1세션에서 각각 발제자와 사회자로 참여했다. ⓒ서성진 기자
    ▲ 신동익 전 오스트리아 대사 겸 주비엔나 국제기구 대사(왼쪽)와 조청원 후행핵주기고등기술원 이사장(오른쪽)은 19일 오후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소장 이문희), 한국핵정책학회(학회장 이상현),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이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에서 공동주최한 비확산‧원자력 학술회의 제1세션에서 각각 발제자와 사회자로 참여했다. ⓒ서성진 기자
    신동익 "한미협정 개정해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한 획득해야"

    신동익 전 오스트리아 대사 겸 주비엔나 국제기구 대사는 "핵무장 추진 시 감당할 정치, 경제 외교적 손실은 국익을 심각히 손상한다"며 "국제사회에서 평판이 한 번 떨어지면 회복할 수 없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세계무역기구(WTO), 원자력공급국 그룹(NSG) 등 국제체제와 양자 차원의 원자력협정에 따른 제재와 규제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신 전 대사는 "'북한과 대등한 핵무장 국가'라는 것 외에는 우리가 핵무장으로 얻는 이익이 무엇인가. 우리의 실익은 핵무기는 개발하지 않되 평화적인 연구뿐 아니라 여러 가지 목적으로 핵능력을 강화하는 데 있다"며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할 수 있으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한미협정을 2035년 종료 전에 개정해서 우라늄 저농축과 파이로프로세싱(건식 재처리)을 '상용화'할 수 있도록 '포괄적 사전승인'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로카쇼무라, 호주 원자력추진잠수함 사례 주목… "미국과 신뢰 강화해야"

    신 전 대사는 "결국 미국과 신뢰를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며 일본의 로카쇼무라(재처리) 프로젝트와 최근 호주가 제공받은 원자력추진잠수함 사례를 언급했다. 그는 "1985년 당시 일본 나카소네 내각은 미국으로부터 로카쇼무라 프로젝트를 포괄적인 사전승인 방식으로 허가받기 위해 성장 없는 경제 암흑기라는 비용을 감당하면서까지 미국과 플라자합의(Plaza Accord)를 체결하며 엔화를 평가절상했다"며 "이는 일본의 대미(對美) 로비뿐 아니라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 총리와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 간 개인적인 신뢰 덕분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어 "호주는 중국의 위협뿐 아니라 이라크 전쟁, 아프간 전쟁 등 모든 위협에서 항상 미국과 뜻을 같이하며 신뢰를 쌓았다. 그 결과 최근 오커스(AUKUS·미국·영국·호주 안보 동맹)를 통해 원자력추진잠수함을 제공받았다"며 "미국은 자국의 국익에 따라 한국에 전술핵을 배치한다고 해도 그 전술핵이 5년, 10년, 20년, 30년 후에 어디로 가 있을지는 확신하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신 전 대사는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 추진했던 독자 핵개발, 2004년 '남핵파동' 등 과거 두 번의 NPT 위반 사례를 언급하며 "미국과의 신뢰 강화도 중요하지만 한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불신도 극복해야 한다. 우리로서는 일회성으로 끝난 사례라고 해도 국제사회에서는 규모가 작든 크든 한국이 위반한 것은 틀림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활용(재처리)에 이르는 핵주기의 확립 가능 여부는 현행 협정 유효기간인 2035년까지 10년간 한국의 행보에 달려 있다고 봤다. 그는 "한국이 정권이 바뀌어도 똑같은 원칙을 지킬 것인지, NPT를 준수하고 한미협정을 이행할지에 대한 신뢰가 쌓여야 한다. 우리가 선행해서 연료를 생산하고 파이로프로세싱을 통해 사용후핵연료를 재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앞으로 우리 원자력 외교와 비확산 외교가 나아갈 길"이라고 강조했다.
  • ▲ 변준연 UAE정부 원자력 위원(비전파워 회장)이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에서 개최된 비확산‧원자력 학술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서성진 기자
    ▲ 변준연 UAE정부 원자력 위원(비전파워 회장)이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에서 개최된 비확산‧원자력 학술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서성진 기자
    변준연 "아궁이만 잘 짓고 연료는 없는 韓, 우라늄 농축공장 확보해야"

    사상 최초로 한국형 원전을 해외에 수출한 36년 경력의 원자력 전문가인 변준연 UAE정부 원자력 위원(비전파워 회장)은 기조연설에서 한국을 "에너지의 97%를 해외에 의존하는 '에너지 최빈곤국'이자 '에너지 종속국', '에너지 식민지국'"이라고 규정하며 "국민들이 피땀 흘려 만든 상품을 수출해서 번 돈의 약 4분의 1을 1차 에너지를 수입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변 위원은 "세계 초강대국은 모두 원자력 강국이다. 전 세계에서 원전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는 31개국이고, 이 중에서 원전 독자모델을 수출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 프랑스, 일본, 한국, 러시아, 중국 등 6개국뿐인데, 한국에는 원전 연료인 우라늄의 정광과 변환, 농축 등의 기술과 공장이 일절 없다. 원전 아궁이는 잘 지으나 연료가 없는 셈인데 한국에는 농축공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이병철 "농축 가로막는 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 대체하고 대미 외교력 발휘해야"

    한국핵정책학회 이사와 편집위원을 맡고 있는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한국이 원자로를 약 25기 가동하지만, 그 연료는 전량 수입한다. 만약 러시아로부터 농축 우라늄 공급선이 단절될 경우 이 원자로들은 과연 어떻게 되겠는가"라며 "우리로서는 저농축의 필요성이 매우 강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한국은 우라늄 농축은 다자체제인 NPT하에서는 가능하지만 양자체제인 한미협정, 북한과 체결한 '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에서는 불가능하다며 외교력 발휘와 공동선언을 대체할 대책입법 마련을 촉구했다.

    그는 "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에 따라 한국은 우라늄 농축 재처리 시설을 확보할 수 없다"며 "국회와 정부는 '대한민국은 절대로 핵무장하지 않을 것이고, 국제규범에 따라 원자력을 평화적으로 이용할 것이고 비확산 모범국으로서 끝까지 규범을 철저히 준수하겠다'는 문구가 들어가는 대책법안을 마련하고 공동성명이 유효하지 않다고 선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러지 않고 '북한이 수차례 핵실험을 했기 때문에 우리도 더 이상 비핵화 공동성명을 준수하지 않는다'고 하면 국제사회, 미국이나 중국 등 주변국으로부터 의심을 살 수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이러한 원칙을 선언하고 주변 국가들을 설득해야 한다"며 "미국은 우리가 과거에 NPT를 위반했던 기억을 여전히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저농축을 한다고 해도 곧이곧대로 듣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 남요식 한국원전수출산업협회 사업본부장(왼쪽)과 조성연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 SMR 핵안보통제연구 PM(오른쪽)이 19일 오후 국립외교원에서 열린 비확산‧원자력 학술회의에 발제자로 참여했다. ⓒ서성진 기자
    ▲ 남요식 한국원전수출산업협회 사업본부장(왼쪽)과 조성연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 SMR 핵안보통제연구 PM(오른쪽)이 19일 오후 국립외교원에서 열린 비확산‧원자력 학술회의에 발제자로 참여했다. ⓒ서성진 기자
    조성연 "현 규제체제, SMR 사이버보안 검토 권한 없다… 핵안전보다는 핵안보"

    조성연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 SMR 핵안보통제연구 PM은 "원자력발전소는 사이버 공격이라는 문제 때문에 제어망과 운영망을 완전히 단절된 상태로 운영해 왔다. SMR(소형모듈원자로)의 경우에 외부 신호를 받아서 자동운전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설계 개념을 도입하고 있어서 인터넷과 연결"돼야 하는데 "표준 설계인증과 관련해 사이버 보안 문제를 검토할 수 있는 권한이 없고 실제로 검토가 안 된다. 현재 규제체제는 안전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기 때문에 핵통제 부분에 대해서는 지금 저희가 개입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표준설계는 아무 발전소에 적용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수입하는 국가의 부지 조건과 안보 조건에 따라서 로컬라이제이션(현지화)을 다시 해야 한다. 핵안보에 대한 기본적인 요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실질적으로 수출이 굉장히 어려울 수 있다"면서 "원자력 발전소를 악의적으로 공격하려는 테러리스트와 불량국가가 개발되는 기술을 똑같이 활용할 수 있다. 앞으로의 전 세계 SMR 규제의 중심은 안전이 아니라 안보로 옮겨가야 전체적으로 더 안전하게 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 ▲ 퇴임을 앞두고 이날 학술회의를 기획한 전봉근 국립외교원 교수. ⓒ서성진 기자
    ▲ 퇴임을 앞두고 이날 학술회의를 기획한 전봉근 국립외교원 교수. ⓒ서성진 기자
    한편, 6월 말 퇴임을 앞두고 이날 학술회의를 기획한 전봉근 국립외교원 교수는 "우리가 핵무장을 주장하는 순간에 핵 잠재력을 가질 수가 없다. '우리가 핵 잠재력을 가지려면 비확산 모범국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없는 것 같다"면서 원자력 학계와 업계의 지속적인 논의를 당부했다.

    이날 제3대 한국핵정책학회장으로 선출된 전 교수는 오는 7월 1일 자로 국립외교원 명예교수로 활동할 예정이다. 전 교수는 대통령비서실 국제안보비서관, KEDO 뉴욕본부 전문위원, 통일부 장관 정책보좌관 등을 역임한 경험을 담아 지난 14일 '북핵위기 30년: 북핵외교의 기록과 교훈'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