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3.1절 시위 때 어린이 사망→ 남로당 개입해 갈등 증폭→ 대립→ 유혈사태평양 "5.10선거 반대투쟁" 지령… 남로당, 3.1절 사태 악용해 4월3일 '거사' 4.3 주동 김달삼 강규찬 고진희, 북한서 영웅 대접… 김일성이 이불까지 챙겨줘종북 좌파들 국내서 활개… '대한민국= 불법국가' 北에 유리한 역사 만들고 있어文 "국군 뿌리는 김원봉" 공언했는데… 김원봉은 김일성과 함께 6.25 일으킨 원흉좌파에 의해 대한민국 역사 왜곡되면→ 현실정치에 반영되고→ 안보 위태로워져
  • "제주 4·3 김일성 개입설은 분명한 팩트다."

    국민의힘 3·8전당대회에 최고위원후보로 나선 태영호 의원이 22일 오후 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그간 논란이 됐던 '제주 4·3사건 북한 김일성 지령설'과 관련한 솔직한 심경을 털어놨다.

    태 후보가 국민의힘 제주 전당대회 후보자 합동연설회에서 "4·3사건은 명백히 김(일성)씨 일가에 의해 자행된 만행"이라고 주장하자 야권을 비롯한 시민사회는 해당 발언을 문제 삼아 거세게 반발했다. 이에 국민의힘 전당대회 선거관리위원회에서도 태 후보에게 '주의' 처분을 내리기도 했다. 

    이날 태 후보는 많은 논란이 일었던 만큼 조심스러운 견해를 내비치면서도 '김일성 지령설'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점을 재차 강조하며 소신을 이어갔다.

    태 후보는 먼저 북한 김씨정권의 이중성에 환멸을 느껴 귀순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덴마크에서 근무 당시 북한에서 계속 내려온 지령은 북한사람들이 굶어 죽으니 식량을 달라고 하라는 것이었다"며 "그런데 고관들은 김일성 사망 행사 후 연회에서 마시려고 덴마크에서 생맥주를 비행기로 실어 갔다. 여기서 대단히 자괴감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다음은 태 후보와 일문일답.

    -국민의힘 최고위원에 출마하게 된 계기는?

    "오는 3·8전당대회를 계기로 새로 구성되는 당 지도부가 미래지향적이고,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현실적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정당이 됐으면 한다. 우리 당은 윤석열정부를 탄생시키고 여당이 됐는데, 여러 가지 위기들이 복합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북한의 핵 위협,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감소, 민생경제 위기 등 지금까지 우리가 겪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상황이다. 더 심각하게는 최근 종북좌파들이 국내에서 활개치고 있다. 그래서 저와 같은 사람이 전당대회를 통해 당 지도부에 들어가 우리 당이 확고한 비주얼을 갖고 당이 앞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는 것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 당선되면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가?

    "저는 대북 전문가이자 외교관 출신이다. 외교안보 전문가가 당 지도부에 한 명 정도는 들어가야 된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은 문재인정부 시절 '균형외교'라면서 외교 방향을 완전히 흩트려 놨다. 다행히 윤석열정부가 들어서서 지금 '가치외교'를 주장하고 한미동맹을 강화하면서 비정상이었던 외교가 정상으로 돌아서고 있다.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에 잘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 외교관 출신으로서 북한의 대남 적화전략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지난 수십 년간 남북 체제·이념대결에서 우리가 이겼다. 북한도 인정하는 대목이다. 결국 체제대결이라는 것은 국민들을 잘살게 해 주는 것 아니겠나. 북한은 아사현상이 일어나고 경제가 파탄되는 등 한심한 나라가 됐다. 그러나 북한은 핵무기 개발과 역사전쟁을 통해 이를 극복하려 한다. 

    역사전쟁은 쉽게 말해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수립된 대한민국이 결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불법국가' '정체성은 북한에 있다' 이런 흐름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북한의 주장을 우리가 내버려두는 것은 괜찮지만, 국내정치에 반영되는 것은 문제다. 종북좌파들이 북한에 유리하게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 제일 큰 문제다."

    -예를 하나 들어볼 수 있나?

    "국회에 '백선엽 파묘법'이 발의돼 있다. 쉽게 말하면 친일 프레임을 만들어 백선엽 장군의 묘를 대전현충원에서 파내자는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전 대통령이 군 통수권자 시절 현충원 기념사에서 '우리 국군의 뿌리가 김원봉한테 있다'고 했다. 김원봉이 누구인가. 북한으로 도망쳐 김일성과 함께 6·25전쟁을 일으킨 원흉인데 어떻게 북한정권과 싸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지킨 국군의 뿌리가 김원봉에 있다고 할 수 있나. 

    이것이 국민들 앞에서 한 말이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역사를 우리가 직시하지 않고 좌파에 의해 왜곡되면 역사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정치에 반영되고, 현실정치에 반영되면 바로 안보가 흔들리는 것이다. 이 역사전쟁이 어떤 국가를 낳았는가 보라. 내년 1월1일부터 우리나라에서 간첩들을 잡아내는 국정원 대공수사권이 폐지된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국정원에서 이관 받으면 된다'고 하는데, 우리 일반 경제부처들 사이에서도 정보를 안 넘기는데 국정원은 같은 국 안에서도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다. 어느 정보기관이 자기 망을 다른 기관에 넘겨 주나. 

    지금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래서 저와 같이 북한의 대남 적화통일전략을 꿰뚫고 있는 사람이 들어가서 바로 이 역사전쟁, 그 일을 내가 해서 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 가치가 흔들리지 않게 하고, 그래야 우리 대한민국이 앞으로도 미래세대를 위해 존재하고 부흥과 번영의 길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 ▲ 국민의힘 3·8전당대회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한 태영호 의원이 22일 오후 서울 중구에 위치한 뉴데일리 스튜디오에서 인터뷰를 하고있다. ⓒ뉴데일리TV 갈무리
    ▲ 국민의힘 3·8전당대회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한 태영호 의원이 22일 오후 서울 중구에 위치한 뉴데일리 스튜디오에서 인터뷰를 하고있다. ⓒ뉴데일리TV 갈무리
    - 제주 4·3사건 발언으로 논란이 됐는데.

    "저에게는 아주 조심스러운 질문이다. 제가 저희 당의 당원이면서 국회의원이다. 그리고 지금 전당대회 기간인데 국민의힘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지역 민심과 국민 정서에 반하는 행동은 자제하라는 조치들이 있었고, 저는 국회의원으로서 또 최고위원후보 중 한 사람으로서 선관위의 이러한 결정을 존중한다. 또 국회의원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 안 된다. 오히려 국민의 마음을 보듬고 국민의 민원을 듣고 해결하기 위해 일하는 것이 국회의원 본연의 사명이다. 

    그런데 이제 방금 제주 사건에 대해 말씀하셨으니까 제가 의견을 밝히지 않을 수 없겠다. 이번에 논란이 된 이 발언은 우선 첫째로 당원들이 이런 점을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다. 제가 뜬금없이 제주 4·3사건을 꺼낸 것이 아니다. 지난 13일 제주도에서 첫 전당대회 합동연설회가 있었다. 저는 하루 먼저 가서 제주 4·3평화공원을 찾아 쭉 보는데 억장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다. 

    4·3사건으로 인해 무고하게 희생되신 분들의 이름이 벽에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분들의 그런 아픔을 치유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에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그 과정에서 제가 한 말이 '김일성에 의해 일어난 제주 4·3사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데 대해 한때 김씨 일가 정권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정말 죄송하다'고 용서를 빌었다. 

    그런데 그 이후 민주당이 제주도민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면서 '사과하라' '국회의원직을 사퇴하라'고 했다. 또 국회 윤리위에 제소까지 했다. 제 생각은 이렇다. 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어느 점을 사과해야 하는지 알고 싶다. 그런데 '무엇을 잘못했다'는 말은 없이 무조건 제주도민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으니 사과해야 한다고 하는데, 제가 일단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아야 사과도 하고 용서도 빌지 않겠나." 

    - 북한에서 대학시절부터 4·3과 관련해 '김일성의 지시'로 배웠다고 했는데 자세히 말해 달라.

    "4·3사건을 다시 재조명한다면, 3·8선에 의해 한반도가 둘로 갈라졌다. 북한에는 소련군이 와서 '김일성 1인독재 시스템'을 세웠다. 반면 우리는 미 군정이 왔다. 미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그 시스템에 맞게 국내정치도 그렇게 했다. 그래서 그때 당시 우리나라는 합법적으로 좌우 세력이 다 존재했다. 

    이승만 대통령의 정치세력도 있었고 김구 선생의 상해 임시정부 세력도 있었다. 남로당 같은 그런 거대한 좌익, 말하자면 공산주의자들 조직도 있었고 각각 특이한 단체들이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승만 대통령이 '이러다 완전히 우리나라가 공산화되겠다' 그래서 3·8선 이남에서만이라도 자유민주주의 선거를 통해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수립해야겠다고 했다. 

    그런데 국가를 세우려면 무엇이 있어야 하는가. 헌법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헌법을 만들자니까 헌법을 만들 제헌국회가 필요해서 (1948년) 5월10일 단독선거를 했다. 이것은 자유민주의 시스템을 구하기 위한 조치였는데, 이 5·10단독선거를 막으라는 스탈린, 공산당의 지시가 있었다. 그 지시는 김일성에 의해 남로당 박헌영에게 전달된다. 

    그런데 4·3사건의 발단은 1947년 3월1일부터다. 그때 3·1절 시위에 동원됐던 군중과 그것을 통제하는 경찰 말발굽에 의해 어린이 한 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경찰과 군중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있었지만 그때까지는 남로당의 조직적인 무장폭동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러한 갈등을 파고든 것이 바로 남로당이다. 

    남로당이 이것을 이용해 결국 평양 중앙의 5·10단독선거 반대투쟁을 벌이자고 했고, 무장폭동을 일으켜 먼저 공격을 가한 것이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엄밀한 팩트다. 그런데 과잉진압이 들어갔고 또 일부 극우단체들도 들어가고 해서 총체적으로 보면 무고한 양민들이 많이 학살을 당한 사건인 것은 맞다. 그리고 4월3일 남로당이 이것을 이용해 무장공격을 했고, 5·10단독선거를 반대해 일어나라는 김일성과 박헌영의 평양 개입설 또한 분명 팩트다. 

    이를 우리가 부인하면 안 된다. 다만, 국가폭력에 의해 무고한 사람들이 많이 희생됐기 때문에 현재는 그들을 보듬고 치유하고 명예회복해 줘야 한다. 이들을 보듬고 치유하고 명예회복을 시킨다고 해서 그 전제에 있던 스탈린·김일성·박헌영의 개입설까지 부인하면 역사에 대한 진실 왜곡이라고 본다."

    - 4·3진상조사보고서에는 중앙당 차원의 지령은 없었다고 하고 있고, 김일성이 단순히 체제 선전 도구로 사용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했다. 근거 중 하나로 제시한 드라마 <한라의 메아리> 시작화면에도 소설에 기초한다고 씌어 있다.

    "<한라의 메아리>는 2000년대에 나온 드라마다. 그런데 그때 당시 우리가 5·10단독선거 때의 상황을 보면 소련이나 김일성의 당 결정이 계속 있었다. 5·10단독선거에 반대해 전체 남조선 인민들은 일어나 싸우라는 호소문도 나가고, 남로당을 향한 라디오 방송도 있었다. 북한 평양 중앙의 결정이 없었더라면 이런 일이 안 일어났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당시 우리가 전국적으로 5월10일 단독선거를 진행했는데 제주도에서만 2개 지역에서 선거가 진행되지 못했다. 그 지역의 소위 남로당 제주도당 총책이라는 김달삼이 선거인명부를 가지고 해주로 도망쳐 김일성을 지지하는 선거를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한 측면을 우리가 봐야 한다. 역사적 팩트로 봐야 할 것은, 당시 박헌영이 어디에 있었느냐다. 이미 도망쳐 평양에 있었다. 그런데 이때 김일성과 박헌영 사이에 권력암투가 벌어진다. 누가 당권을 쥐느냐, 요즘으로 치면 누가 당대표가 되느냐 이거다. 결국 마지막에 김일성이 박헌영을 전쟁 이후 간첩으로 몰아 처형했다. 그래서 5·10단독선거 반대투쟁을 두고는 북한도 '이것 다 내가 한 거야' 이러지 않는다. 

    그런데 제주도 사건만은 매우 특이하다. 박헌영이 처형되면서 남로당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북한에서 숙청되거나 요직에서 다 밀려나 지방으로 좌천되는 일들이 있었고, 현 시점에서도 북한에서 남로당 출신 자녀들은 승진을 못한다. 그런데 바로 이 제주도는 특이하다. 김달삼·강규찬·고진희가 북한으로 올라가 영웅 대접을 받았고, 애국열사릉에 묘비도 다 세웠다. 

    특히 그들과 관련한 <한라의 메아리>라는 장편 드라마도 만들었다. 어떤 일까지 있었는가 하면, 고진희가 북한으로 올라갔을 때 집에 불이 나는 사건이 있었다. 불이 나서 재산이 다 불탔는데, 그때 김일성이 '집이 다 불탔다는데 어떻게 하느냐'면서 이불도 보내 줬다는 것이다. 이것이 다 북한 역사문헌고에 다 나와 있는 자료들이다."
  • ▲ 국민의힘 3·8전당대회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한 태영호 의원이 22일 오후 서울 중구에 위치한 뉴데일리 스튜디오에서 인터뷰를 하고있다. ⓒ뉴데일리TV 갈무리
    ▲ 국민의힘 3·8전당대회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한 태영호 의원이 22일 오후 서울 중구에 위치한 뉴데일리 스튜디오에서 인터뷰를 하고있다. ⓒ뉴데일리TV 갈무리
    -북한에서 4·3을 대하는 태도가 그만큼 특별했다는 것인가?

    "정말 특별했다. 방금 언급했던 <한라의 메아리>와 관련한 소설이 있는데, 거기에서 너무 상세하게 언제 어떤 회의를 했고, 그 해에는 누가 참가했다는 것을 다 그렸다. 북한이 가지고 있는 내부 당 문서고를 보지 않고는 1947년도부터 있었던 일을 그렇게 상세하게 기록할 수 있겠나. 이것은 불가능하다. 

    여기에 이런 장면도 나온다. '강규찬·고진희는 죽는 순간까지 김일성과 한 언약을 지켰다'고. 그런데 민주당이나 좌파 측에서는 제주도당과 평양의 연계설을 자꾸 끊으려 한다. 그런데 전 세계 공산당은 다 똑같다. 중앙유일관리제다. 민주주의 국가의 정당들과는 다르다. 제주도당이 결정할 때는 중앙당에서 '이렇게 하라'는 지시가 없으면 그런 결정을 도당 위원장 자체로 결심할 수 없다. 사소한 결정이라도 '우리가 이런 것을 해보겠습니다'라고 했으면 반드시 중앙당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중앙당의 승인도 없이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킬 수 있는 무장폭동을 제주도당이 단독결심으로 했다? 그것도 1954년까지 밀어붙였다? 그러면 중앙의 결정도 없는데 왜 김달삼·강규창·고준희가 해주에 도착했을 때 영웅 대접을 받았겠나. 이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운영 원리와 맞지 않는다고 표현하셨다. 이런 논리적 부분이 아니라 좀 더 확실한, 흔히 말하는 물증이라는 것이 있을까?

    "북한에 있는 물증을 가져올 수는 없다. 그러나 북한에서 언제 어떤 호소문을 발표했는지 그런 출처는 다 있다. 몇월 며칠 김일성의 무슨 호소문, 이런 것은 당시 라디오로 다 나온 것이기 때문에 물증은 충분하다. 

    언제 그런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통일이 돼서 북한 노동당의 비밀문서고가 열린다면 거기에 상세한 자료들이 다 기록돼 있을 것이다.

    -4·3사건의 발단은 남조선노동당의 테러행위였으나, 이후 진압 과정에서 정권으로부터 무고한 민간인 피해가 발생한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이 부분을 구분하지 않고 "김일성 일가에 의해 자행된 만행"이라고 한 것은 정치적 의도로 읽힌다. 논란을 예상하지 못했나?

    "너무나 당연한 현실이기 때문에 논란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다. 4·3사건은 남로당이 무장공격을 가해 촉발된 사건이다. 5·10단독선거를 완전히 무효화해버리라는 평양 중앙의 지시를 관철하기 위해 제주도당이 무장하고 공격한 사건이다. 

    저는 여기에 대해서는 추호의 의심도 없었고, 아직도 확신한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될까 이렇게 생각했다. '국가권력에 희생된 정말 무고한 양민들이 다 김일성의 지시를 받고 했다는 거냐' 이렇게 일부 사람들은 묻더라. 저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때 남로당원이 몇 명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제가 말한 부분은 그 무장공격에 의해 4·3사건이 촉발됐고, 그 과정에서 많은 분이 희생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처음 무장공격을 한 사람들이 결국 김일성의 지시에 의해 일어났기 때문에 '정말 죄송하다. 용서를 빈다'고 한 것이다."

    -북한 고위층이었다. 북한체제에 환멸을 느끼고 귀순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나

    "제가 김씨정권에 환멸을 느꼈던 것은 6·25전쟁을 북한에서는 미국과 이승만정권이 일으켰다고 배웠는데 해외에 나가 김일성이 일으켰다는 것을 처음 듣게 됐을 때다. 팩트 자료를 다 들여다보니 '김일성이 이렇게 한 것이 맞구나' 하는 충격적인 사실을 접하게 됐다. 

    제가 제주도에 가서도 왜 만행이라는 표현을 썼느냐 하면, 김일성의 북한 공산정권에 의해 우리 민족이 입은 피해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이 희생됐나. 그래서 제가 이것을 만행이라고 단정짓지 않을 수 없었다."

    -결정적인 것이 있었을 것 같은데.

    "북한에서는 한국영화나 드라마를 보기만 해도 총살 당한다. 그런데 김씨정권을 보면 에릭 클랩튼 보겠다고 많은 돈을 쓰면서 외국에 가서 볼 것 다 본다. 북한주민들의 눈과 귀를 철저히 막는 이런 이중적인 모습에서 자괴감을 느꼈다. 

    제가 외교관생활을 할 때 김씨 일가의 사취와 관련한 업무지시가 대단히 많았다. 김일성이 사망한 이후 덴마크에서 근무했는데, 당시 김일성 사망 3주년 행사를 (북한에서) 크게 했다. 그때 북한에서 정말 많은 사람이 굶어 죽었다. 

    그런 상황에서 하루는 북한대표단이 덴마크에 온다고 하더라. 덴마크의 '칼스버그'와 '투보그'라는 맥주 때문이었다. 그것도 병맥주가 아니고 생맥주를 비행기로 실어다 김일성 추모 행사에 참가한 뒤 연회에서 간부들한테 마시게 하려고 생맥주를 덴마크에 와서 사 가는 것이었다. 저희 대사관에는 덴마크에 식량을 달라는 지령이 내려왔는데, 고관들은 생맥주까지 비행기로 실어다 마시는 것을 보면서 자괴감을 느꼈다. 

    또 북한에 가면 은곡협동농장이라는 것이 있다. 그 농장에서 김씨 일가를 위해 소 몇백 마리를 키우고 매일 우유와 치즈를 만든다. 소를 잡아 평양으로 매일 올려보내기도 한다. 그것을 위해 덴마크에서 소 정액을 사 가기도 한다. 극소수 김씨 가문이 먹겠다고 그렇게 큰 농장을 비밀리에 운영하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 북한에서 몇 십만 명씩 죽어 나가는 것을 보면서 '내가 충성을 다하고 있는 이 정권이 충성할 가치가 있는 정권인가' 이런 생각을 끊임없이 하게 됐다."

    - 후보님과 같은 생각을 가진 간부들이 또 있었나. 적극적으로 움직임이거나 하지는 않았는지?

    "대단히 많은데, 많은 사람이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절대적으로 복종할 수밖에 없는 것이 국가기구인 것 같다. 제가 대한민국으로 탈북하기 전까지는 대단히 오랫동안 고민했다. 나 혼자 자유를 얻자고 하면 이것은 다른 한 사람의 자유를 빼앗는 것이다.  '과연 이게 옳은 길일까'라는 것을 끊임없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제가 1990년대부터 김씨 정권에 불만은 있었지만 한 가닥 기대도 있었다. '아이고, 저 김정일이 살아야 얼마나 살까. 김정일도 그때 가면 죽겠지. 그러면 한국처럼 자유로운 나라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중국 정도의 자유를 주는 그런 일당제 공산국가는 되지 않을까' 이런 기대감이 있었다. 

    그러다 2009년도에 갑자기 막내아들 김정은이 짜짠 하고 등장해 3대로 간다고 하니 우리한테 무슨 희망과 보람이 있을까 이런 생각이 확 들더라. 이번에 김정은이 자기 딸 김주애를 데리고 나타났을 때 북한 주민들과 엘리트층이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다만 연좌제 사슬을 정말 그 누군가가, 혹은 어떤 집단이 의기투합해 끊기는 대단히 힘든 구조가 북한이다."

    - 지난번 총선에서는 '북한 주민을 구한다는 의미'로 '태구민'이라는 이름으로 출마했다. 지역구를 위해 계속 일할 계획이신가?

    "그렇다. 우리 지역구 주민들이 저를 국회에 보내셨기 때문에 그분들을 위해서 제가 봉사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국회에 들어가면 해달라는 요구사항이 있었다. 

    첫 번째는 종합부동산세다. 강남은 대한민국에서 집값이 제일 높다. 당연히 좋아야 하는데 괴리감이 있다. 강남에는 1가구 1주택자들이 많은데, 나이 드신 분들이 평생 그 집에 살아오다 보니 소득이 없다. 그런데 공시지가를 매겨 종부세를 내라고 하니 힘든 것이다. 과세표준을 조금만 올려 줘도 종부세가 낮아진다. 

    다른 하나는 재건축문제가 치열하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국토부가 강남갑은 재건축 허가를 잘 안 해 준다. 또 부동산가격이 치솟아 투기꾼들이 모일까 봐 그렇다. 이게 강남이 받고 있는 역차별이다. 이런 큼직한 지역현안들이 있다."

    - 국민의힘이 다른 인물을 공천하는 선택을 한다면 의정활동을 다른 지역구에서라도 계속 이어가실 것인가.

    "글쎄, 그것은 2024년 총선을 준비하면서 당 지도부가 결정할 문제다. 공천과 관련된 문제는 맞닥뜨리기 전까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저는 북한과의 관계에서 상징적인 존재다. 제가 이 지역에서 의정활동을 계속 잘하는 것이 북한 엘리트층에 마음의 동요를 일으킬 수 있는 큰 수단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저희 당에서도 그런 측면을 많이 보지 않을까."

    - 북한인권재단이 3월로 예상되고 있고, 대통령도 의지를 갖고 계신 것 같다.

    "아직은 출범한다는 담보는 없다. 대통령의 의지가 있어도 안 되는 이유는 민주당이 인권재단 이사를 추천해야 하는데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우선 저희 당이 내년 총선에서 압승하면 된다. 그리고 이후에 양당이 5명씩 인사들을 무조건 추천하는 북한인권법을 바꾸면 된다. 보수가 정권을 쥐었을 때는 인권재단 이사들을 보수 쪽 사람들로 임명할 수 있게, 진보가 정권을 쥐었으면 그 사람들 마음대로 임명할 수 있게 하는 거다. 단, 인권재단은 발족시켜야 된다. 이렇게 오랜 기간 출범을 안 시킨다는 것은 정말 말이 안 된다."

    - 북한인권재단 이사장을 맡아 달라는 요청이 온다면 의향이 있나. 현역 국회의원 활동과 병행이 안 될 수도 있다면?

    "그런 요청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부분 또한 제가 앞으로 꼭 해야 할 사명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인권재단 이사장이냐 국회의원이냐 선택해야 한다면 저는 당연히 인권재단 이사장보다 입법을 통해 바로잡아야 할 일이 더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입법기관에서 일하는 것을 선택하겠다. 이것이 저한테는 더 큰 의미가 있다."

    - 대한민국에서 태영호라는 사람이 의원으로서 정치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또 앞으로의 각오를 말씀해 달라.

    "정치인으로서의 뚜렷한 꿈이 있다. 바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통일이다. 그래서 방법론적 문제를 고민했다. 김정은정권과 그 정권에 몸담고 있는 북한 엘리트층을 분리해야 한다. 북한 엘리트층이 스스로 들고일어나 김씨 일가를 엎어버려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전략적으로 다가가야 된다. 

    북한 엘리트층은 김정은 체제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김정은을 버리자니 미래에 대한 확신도 없다. 왜냐하면 북한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자유나 민주주의, 화해나 타협 이런 것을 배우지 못했다. 북한의 엘리트층이 경험한 역사는 일제에 의한 전체주의, 제국주의 이런 시대다. 말 안 들으면 바로 숙청해버리는 것만 봤기 때문에 한국의 자유민주의 시스템이 들어섰을 때를 걱정하고 있다. 

    그러나 저같이 북에서 온 사람이 큰 정치인으로 계속 활동한다면 이것을 본 북한의 엘리트층은 '한국의 그런 엘리트층과 손잡고도 그런 불이익을 당하지 않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서 같이 상생하고 나갈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런 상징적인 인물이 제가 아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