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지난 14일 檢조사 당시 "서훈이 보안 유지 강조해 전 부처가 따랐던 상황" "첩보 삭제 지시 안 했고, 삭제 자체가 불가능하다"던 박지원, 조사 후엔 "삭제는 되더라""故人 채무관계 등 신상정보 발표도 반대했다"며 거리 두기… 檢, 불구속 기소할 듯
  • ▲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관련해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지난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검으로 피고발인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정상윤 기자
    ▲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관련해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지난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검으로 피고발인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정상윤 기자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부장검사 이희동)는 지난 14일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을 불러 약 12시간 동안 고강도 조사를 하며 '국정원 첩보 삭제 지시' 의혹과 관련해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16일 중앙일보에 따르면, 박 전 원장은 조사 당시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며 '보안 유지'를 강조해 전 부처가 따랐던 상황이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월북 판단'은 전적으로 서 전 실장과 안보실의 판단이라는 취지이자 검찰이 사건의 정점으로 지목한 서 전 실장과 거리를 두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검찰의 판단은 박지원의 '보안 유지' 지침 따라 첩보 삭제됐다는 것

    반면 검찰은 국정원 조직 특성상 국정원장의 지시나 승인 없이 기밀 문건인 첩보가 삭제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지난 15일 '실무진이 알아서 삭제했다'는 박 전 원장 측 주장에 "국정원이 그렇게 허술한 조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 전 실장으로부터 박 전 원장을 거쳐 하달된 '보안 유지' 지침이 실은 ‘첩보 삭제 지시’였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해 박 전 원장은 당초 "국정원 메인 서버에 원본이 남는다"며 '삭제'라는 검찰의 논리가 틀렸다고 주장했는데, 조사 이후에는 "오늘 수사를 받으면서 보니까 삭제가 되더라. 중대한 사실을 이번에 알았다"며 보고서 자체가 삭제됐을 가능성을 인정했다. 다만, 여전히 "삭제 지시는 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박지원 "채무관계 등 신상정보 발표하는 것에 반대"

    박 전 원장은 사건을 은폐하고 '자진월북'으로 몰아간 의혹과 관련해서도 "월북 판단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정책적인 판단이라 생각해 그런 줄 알았다"는 취지로 혐의를 부인했다고 한다.

    박 전 원장 측 변호사도 중앙일보에 "월북으로 결론 내린 최종 의사결정기관은 국가안보실이었다"며 "국정원은 정보기관으로서 판단 근거가 되는 첩보 분석만 보고했고, 그마저도 '월북으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서 전 실장과 박 전 원장 등 당시 청와대 안보 라인은 지난 10월27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군 감청자료 등을 종합 분석한 결과 '월북'이 가장 유력했다"고 밝혔다. 

    당시 서 전 실장은 "사실관계를 규명해 있는 그대로 국민들께 소상히 발표한다는 원칙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박 전 원장은 이 의사결정 과정에 자신은 '결정권’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박 전 원장은 "고인(이대준 씨)의 도박빚을 비롯한 채무관계 등 신상정보를 발표하는 것에 반대했다"고 진술했다. 해양경찰은 피살 발생 3일째인 2020년 9월24일 '자진월북 가능성'이 있다며 "이씨가 평소 채무 등으로 고통을 호소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 박 전 원장 측 변호사는 "박 전 원장이 빚 문제를 비롯한 개인 사생활은 정부가 나서서 발표할 사안이 아니라는 의견을 개진했었다"며 "좀 과하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은 서 전 실장의 지휘로 해경·국방부 등이 이씨의 신상을 공개해 월북으로 몰아가려 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검찰은 서해 사건의 핵심인 월북 결론에서 국정원의 역할을 고려해 박 전 원장을 불구속 기소하는 방향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