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발굴된 국군 전사자 유해, 고 조응성 하사로 확인… 딸의 DNA 제공으로 확인경북 의성 출신 고인, 1952년 1월 아내와 두 딸 뒤로 한 채 입대… 1952년 10월 전사 추정
  • ▲ 철원 백마고지에서 고 조응성 하사의 유해를 발굴할 당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제공.
    ▲ 철원 백마고지에서 고 조응성 하사의 유해를 발굴할 당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제공.
    지난해 10월 백마고지에서 발굴한 국군 전사자가 고 조응성 하사로 확인됐다고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17일 밝혔다. 발굴감식단은 “따님의 DNA 제공 덕분에 신원 확인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발굴감식단 “유해 발굴 당시 사격 자세… 1952년 10월 백마고지 전투서 전사한 듯”

    발굴감식단이 고 조 하사의 유해를 발굴한 것은 지난해 10월28일이다. 육군 5사단 장병들과 함께 발굴한 유해는 참호 속에서 사격 자세로 발견됐다. 이 모습이 화제가 돼 서욱 국방부장관도 며칠 뒤 유해 발굴 현장을 찾았다.

    발굴감식단은 “고인은 9사단 30연대 소속으로 백마고지전투 당시 전사하신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백마고지는 6·25전쟁 당시 철원 일대에서 국군 9사단과 중공군이 12차례에 걸쳐 공방전을 벌이며 주인이 일곱 번이나 바뀔 정도로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이다. 고인은 1952년 10월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 때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굴감식단은 설명했다.

    “DNA 시료 덕분에”…70년 만에 부친 유해 찾은 딸

    발굴감식단은 고인의 유해 발굴 당시 만년필·반지 등 개인 유품이 많아 신원 확인에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유품 가운데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이 없어 벽에 부닥쳤다. 이에 발굴감식단은 백마고지전투 전사자들의 병적기록을 조사해 유족을 찾았다. 유족인 딸 조영자 씨에게 DNA 시료를 제공받아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 ▲ 고 조응성 하사의 유품. 유품 수는 타 전사자에 비해 많았지만 모두 이름이 적혀있지 않아 결국 DNA 시료를 통해 신원확인을 했다고 한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제공.
    ▲ 고 조응성 하사의 유품. 유품 수는 타 전사자에 비해 많았지만 모두 이름이 적혀있지 않아 결국 DNA 시료를 통해 신원확인을 했다고 한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제공.
    유족에 따르면, 고 조 하사는 1928년 2월 경북 의성에서 3남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6·25전쟁 발발 당시에는 평범하게 농사를 짓던 중이었다. 

    전쟁이 일어나자 피난을 갔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1952년 5월 아내와 다섯 살, 세 살 배기 딸을 남겨두고 제주 제1훈련소로 입대했다. 그리고 9사단 30연대 소속으로 백마고지에서 싸우다 전사한 것이다.

    고인의 딸 조영자 씨는 신원 확인 소식에 “이제야 아버지를 찾았다는 실감이 난다”고 소회를 밝혔다. 조영자 씨는 “어느 날 아버지께서 오징어를 사와 맛있게 먹었는데, 자식들에게 이별하는 심정으로 맛있는 것을 사 주셨던 것 같아 잊을 수가 없다”고 추억했다.

    발굴감식단 “DNA 시료 없어 아직 신원 확인 못한 유해 1만 여 구”

    발굴감식단은 이날 인천시 남동구 소재 조영자 씨의 집을 찾아 고 조 하사의 유해를 전달하고, 고인의 참전 과정과 유해 발굴 경과를 설명했다.

    2000년 4월부터 시작한 발굴감식단의 6·25 전사자 유해 발굴로 지금까지 신원이 확인된 국군 전사자는 모두 185명이다. 발굴감식단은 “이번에는 유족을 찾았지만 유족의 DNA 시료가 없어 신원 확인을 못한 전사자 유해가 아직 1만여 구에 달한다”며 이들이 하루빨리 유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전사자 유족들이 DNA 시료 채취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