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파일러 "내가 다 안고 가야지, 했을 것"… 법조계 "말할 수 없는 상황 처한 듯" 황무성 전 성남도개공 사장 "죽을 사람 아니다"… 유족 측 "유서 공개 원치 않아"영장 실질심사 나흘 앞두고 극단 선택… 검찰 "고인의 명복, 공소권 없음" 전망
  • ▲ 유한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본부장(현 포천도시공사 사장)이 10일 오전 고양시 일산서구 자택 인근 한 아파트 화단에서 숨진채 발견돼 경찰이 현장 확인을 하고 있다. ⓒ뉴시스
    ▲ 유한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본부장(현 포천도시공사 사장)이 10일 오전 고양시 일산서구 자택 인근 한 아파트 화단에서 숨진채 발견돼 경찰이 현장 확인을 하고 있다. ⓒ뉴시스
    경기도 성남시 대장동 개발 의혹과 관련해 뒷돈을 챙긴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유한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본부장(현 포천도시공사 사장)이 숨진 채 발견됐다. 유 전 본부장은 오는 14일 영장실질심사를 앞둔 상태였다.

    일산서부경찰서 등에 따르면, 10일 오전 7시40분쯤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한 아파트 화단에 유 전 본부장이 숨져 있는 것을 주민이 발견해 신고했다. 유 전 본부장이 발견된 곳은 그의 자택 인근으로, 경찰은 정확한 사망 경위 등을 조사 중이다.

    유한기, 유서에 극단적 선택 암시

    경찰은 이날 오전 4시10분쯤 유 전 본부장의 가족으로부터 그가 유서를 남기고 집을 나갔다는 내용의 실종신고를 접수하고 수색작업을 벌였다. 유 전 본부장 가족들은 유서의 구체적 내용은 밝히지 않았지만,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실종신고 2시간 전인 오전 2시쯤 유 전 본부장이 걸어서 자택인 아파트단지를 빠져 나가는 모습을 확인하고 주변을 수색했다. 다만 유 전 본부장이 휴대전화를 가지고 나가지 않아 위치추적은 어려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CCTV 분석 등을 통해 유 전 본부장이 오전 2시55분쯤 자택에서 200m 떨어진 아파트 11층에 올라 약 15분 뒤 추락해 사망한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은 정확한 사망 경위를 밝히기 위해 부검할 방침이다.

    다만 유족 측은 유 전 본부장의 유서 내용이 공개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의견을 경찰에 전했다.

    9일 퇴근 전 사직서 맡겨… 별다른 이상징후 없었다

    유 전 본부장은 전날 퇴근 전 사직서를 비서에게 맡긴 것으로 확인됐다. 포천도시공사 관계자는 "유 사장이 비서실 직원에게 사직서를 맡겼지만 정식 접수되지 않아 대부분의 직원은 모르고 있었다"고 밝혔다.

    전날까지도 유 전 본부장에게 별다른 이상징후는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유 전 본부장은 그간 포천도시공사에 정상적으로 출·퇴근해 업무를 봤으며, 대장동 의혹과 관련한 특별한 언급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성남도시개발공사 내에서 유동규 전 기획본부장의 뒤를 잇는 2인자라는 뜻의 '유투(2)'로 불렸던 유 전 본부장은 2011년 7월부터 2018년 9월까지 성남시설관리공단 기술지원TF단장,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본부장, 사장대행 등을 지냈다. 

    성남도시개발공사를 떠난 뒤에는 2019년 1월 포천도시공사의 전신인 포천시설공단 이사장으로 채용됐다. 이후 같은 해 6월 포천도시공사가 출범하면서 초대 사장으로 부임했다. 그의 임기는 다음달 7일까지였다.

    황무성 "유한기 뭘 잘못했다고 죽나"

    유 전 본부장으로부터 사퇴를 종용받았던 황무성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은 그의 사망 소식에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황 전 사장은 이날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극단적 선택을 할 정도는 아니지 않으냐"며 "죽을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황 전 사장은  "모든 것을 다 저질러 놓고도 내가 뭘 잘못했냐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자기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죽나"라며 "그 사람은 시킨 대로 한 것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최근 유 전 본부장과 연락했느냐는 질문에 황 전 사장은 "안 했다. 죽을 정도라면 나한테 무슨 이야기라도 했을 것 같은데, 아무런 메시지도 남기지 않았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 ▲ 지난 6월 9일 포천시의회 정례회에 참석한 유한기 전 본부장의 모습이다. ⓒ뉴시스
    ▲ 지난 6월 9일 포천시의회 정례회에 참석한 유한기 전 본부장의 모습이다. ⓒ뉴시스
    전문가들은 유 전 본부장의 극단적 선택과 관련 "구속과 수사에 부담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한기 유서에 단서 있을 것… '내가 다 안고 가야지' 생각한 듯"

    서울디지털대학교 경찰학과 학과장을 지낸 배상훈 프로파일러는 뉴데일리와 통화에서 "책임감이 크거나 자신한테 집중되는 정신적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내가 다 안고 가야지' 이런 생각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배 프로파일러는 "영장심사를 앞두고 압박감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며 "유 전 본부장에게 죄가 있다 없다의 문제가 아니라 '나만 입을 다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왜곡된 생각에 잘못된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지낸 한 변호사는 "유 전 본부장이 사실을 얘기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것 아닌가 싶다"며 "그가 남긴 유서에 어떤 단서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2억원을 뇌물로 받았다면 기본이 징역 10년 이상인데 형량이 깎이더라도 최소 5년 이상 감옥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과, 이후에도 수사를 계속 받아야 한다는 압박을 심하게 받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 변호사는 그러면서도 "아니면 이제 중간에서 제대로 말도 못하고 자기가 다 뒤집어쓰게 생긴 상황에서 이럴 바에는 차라리 내가 죽자 하는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도 보인다"고 덧붙였다.

    14일 영장심사 예정… '공소권 없음' 처분 전망

    검찰은 지난 9일 유 전 본부장을 대상으로 사건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유 전 본부장은 2014년 8월 서울의 한 호텔에서 천화동인4호 소유주인 남욱 변호사와 천화동인5호 소유주 정영학 회계사 등으로부터 뇌물 2억원을 받은 혐의 등을 받는다.

    유 전 본부장은 자신의 혐의를 줄곧 부인했으며, 오는 14일 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를 받을 예정이었다.

    서울중앙지검은 이날 "이번 불행한 일에 대하여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공식 견해를 전했다. 검찰은 유 전 본부장이 사망함에 따라 해당 사건을 '공소권 없음' 처분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