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은 위안부·원폭피해자와 다르다"… 헌재, 5 대 4 의견으로 각하 결정
  • ▲ 헌법재판관들이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헌법소원심판 사건 선고기일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 헌법재판관들이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헌법소원심판 사건 선고기일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일제강점기 일본군으로 동원됐다 전범으로 처벌받은 조선인 '피해자'들이 정부에 배상문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제기한 헌법소원에서 헌법재판소가 각하 결정을 내렸다. 이들이 입은 피해의 상당부분이 국제전범재판에 따른 처벌로 인해 생긴 것으로, 한국정부에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헌법재판소는 31일 오후 고(故) 이학래 동진회 회장이 "정부가 한국인 전범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며 정부를 상대로 낸 '한일협정'에 따른 분쟁 해결 부작위 위헌 확인 소송에서 재판관 5명의 의견으로 각하 결정했다. 재판관 4명은 반대(위헌) 의견을 냈다.

    '각하'는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했을 때 재판부가 본안을 심리하지 않고 내리는 결정으로, 헌재가 사실상 원고 패소 판결한 셈이다.

    조선인 전범 '피해자'들, 정부에 피해보상 요구하며 헌법소원

    동진회는 일제강점기 일본군으로 동원돼 B·C급 전범이 된 피해자들이 결성한 단체다. 이번 헌재 소송을 제기한 이 회장은 조선인 B·C급 전범 피해자 중 마지막 생존자로, 지난 3월28일 96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피해자들은 당시 일본군 소속으로 연합국 포로 관리 등을 담당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연합국은 전범재판을 열고 이들을 B·C급 전범으로 분류했다. 

    이 회장 등은 일본 내 형무소에서 형을 살다 출소했지만 '전범' '대일협력자'라는 낙인 탓에 귀국하지 못했고, 일본 내에서 생활고까지 겪었다.

    이들은 1991년 일본정부를 상대로 피해보상을 요구했으나 1, 2, 3심 모두 패소했다. 그러다 2005년 한일청구권 협정 과정이 담긴 한일수교회담 문서가 공개되면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당시 일본정부는 '조선인 전범은 별개 문제이니 별도 연구할 것'이라는 방침을 내렸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에 이 회장 등은 2014년 우리 정부가 전범 피해자 문제를 해결할 의무가 있음에도 아무 조치를 하지 않는 것은 기본권 침해라며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 "전범 문제, 위안부·원폭피해자와 같지 않아"

    그러나 이날 헌재는 "국제전범재판소 판결에 따른 처벌로 생긴 B·C급 전범의 피해보상 문제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나 원폭 피해자 등이 갖는 일제의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따른 배상청구권 문제와 동일한 범주로 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특히 헌재는 "한국인 전범들이 국제 전범재판에 따른 처벌로 입은 피해와 관련해 정부에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른 분쟁 해결 절차에 나아가야 할 구체적 작위 의무가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가 한국인 B·C급 전범을 위해 일본 의원들 접촉을 통한 입법 촉구 등 외교적 조치를 이행했으므로 그 작위의무를 불이행했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날 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한국인 전범들은 일제의 불법적인 행위로 인한 '강제동원 피해자 또는 희생자'로 인정됐기 때문에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와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입은 피해에 대한 청구권과 그 성격이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볼 수 없다"며 "피청구인(한국정부)이 현재까지 한일경제협력협정 제3조에 따라 분쟁 해결 절차를 이행할 작위의무를 이행했다고 볼 수 없다"는 의견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