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적대세력이 저지른 학살·납치… 진실 규명하고 배상해야" 과거사위에 10건 접수
  • ▲ 북한인권단체 물망초가 18일 오전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앞에서 6.25 전쟁 당시 북한과 중공군들이 저지른 학살·납치 사건에 대해 진실 규명과 손해배상을 정부에 요청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물망초 제공
    ▲ 북한인권단체 물망초가 18일 오전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앞에서 6.25 전쟁 당시 북한과 중공군들이 저지른 학살·납치 사건에 대해 진실 규명과 손해배상을 정부에 요청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물망초 제공
    북한인권단체 물망초(이사장 박선영)가 6·25전쟁 당시 북한과 중공군들이 저지른 학살·납치사건의 진실 규명과 손해배상을 정부에 요청했다. 

    물망초는 1950년 6월25일 전쟁 발발 이후 처음으로 인민군과 중공군, 빨치산, 좌익세력 등 대한민국 적대세력이 무고한 국민에게 저지른 생명·신체 침해 행위가 밝혀질 것으로 기대했다.

    물망초는 18일 오전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6·25전쟁 당시 발생한 생명과 신체 침해사건의 진실 규명과 보상신청서를 위원회에 제출한다고 밝혔다. 지난 6월2일 '대한민국 적대세력에 의한 피해신고센터'를 설치한 이후 피해 사례 150여 건을 접수해, 이 가운데 10건을 추렸다는 것이 단체의 설명이다.

    "(접수된 사건) 대부분 조부모나 증조부모 또는 형제자매들이 경찰·군수·지주였다는 이유로 동네 뒷산으로 끌려가 총살되거나 죽창으로 살해당했던 사건 또는 납북되었던 사건들로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법적으로 진실이 규명되거나 국가로부터 보상을 받은 적이 없는 사례들"이라고 밝힌 물망초는 "이 사건의 후손들은 오히려 죄인처럼 쉬쉬 하며 숨어 살거나 고향, 심지어 이 땅을 떠나가야 할 정도로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물망초는 "접수 예정인 사건 중에는 등기소에 갇힌 채 불에 태워진 사례도 포함돼 있고, 6·25전쟁 중에 민간인으로서 국군의 실탄과 식량 등을 운반하다 인민군의 총탄에 맞아 부상을 당해 야전병원에서 치료받다 사망했으나 병원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물망초 "진실 규명, 명예회복, 피해 보상 위해 최선의 노력 다할 것"

    물망초는 "그동안 정부는 5·18, 4·3, 각 민주화운동 등에 대해서는 개별 법률을 통해 진상 규명과 보상을 진행해왔으나, 대한민국 적대세력으로부터 받은 피해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진상 규명이나 손해배상을 인정한 예가 없어 이번 10건의 사례는 그 결과가 주목된다"고 기대했다.

    이어 "피해자 유가족들에게 법령 미비라는 미명으로 그동안 진실 규명과 명예회복, 피해 보상 등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이제부터라도 이에 대한 모든 절차가 성실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우리 물망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물망초는 이날 기자회견 후 과거사위원회에 10건에 관한 피해사실을 제출했다. 이후 9월1일(제2차 접수), 9월29일(제3차 접수), 10월20일(제4차 접수)에도 신청서를 낼 계획이다.

    손해배상을 청구한 당사자 중 한 명으로, 전쟁 당시 경찰로 복무하던 최태집(1925·경남 경주시) 씨의 딸 최병희 씨는 통화에서 "우리 아버지는 경찰이었는데 인민군들이 끌고 간 뒤 생사도 알지 못한다"고 호소했다.
  • ▲ 물망초가 18일 인민군과 중공군, 빨치산, 좌익 세력 등 대한민국 적대세력이 무고한 국민에게 저지른 침해행위 10건을 과거사위원회에 접수하고 있다. ⓒ물망초 제공
    ▲ 물망초가 18일 인민군과 중공군, 빨치산, 좌익 세력 등 대한민국 적대세력이 무고한 국민에게 저지른 침해행위 10건을 과거사위원회에 접수하고 있다. ⓒ물망초 제공
    "전쟁이 나자 우리 가족은 할아버지 고향인 경남 합천으로 피란을 갔다"고 밝힌 최병희 씨는 "그런데 동네 사람이 '대구에서 경찰을 하던 양반이 숨어 있다'고 고변(告變)해 인민군이 찾아와 몇 날 며칠을 할아버지에게 아들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인민군들이 아들을 내놓지 않으면 온 가족을 죽이겠다고 협박을 하자 아버지가 자진해서 나오셨다"며 "아버지가 3일 정도만 조사를 받고 오겠다고 했지만 이후로 얼굴을 볼 수 없었다"고 전했다.

    "이웃 밀고로 부친 납치·납북당해… 국가가 해준 것 없어"

    최씨는 국가를 향한 아쉬움도 토로했다. "나중에야 아버지가 북한으로 끌려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정부에서 사람을 보내 오히려 아버지가 간첩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냐며 감시했다"고 밝힌 최씨는 "나중에야 황교안 국무총리로부터 아버지가 납북됐다는 결정서는 받았지만 그것 말고 국가가 우리에게 해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토로했다.

    최씨는 "어머니 혼자 애 키우느라 너무 고생하셨고, 할아버지는 아들이 간첩이라는 사람들의 말을 가슴에 묻고 돌아가셨다. 정부가 이제라도 진실을 밝히고 보상해 줘야 한다. 죽어서 떳떳하게 아버지와 어머니, 할아버지를 만나고 싶다"며 눈물을 삼켰다.
     
    다음은 이날 과거사위에 접수한 10건의 사건 내용이다.

    △ 최태집(1925·경남 경주시) : 경찰. 인민군에 납치돼 생사 모름. 납북자결정서로 납북 사실만 확인 △ 이순목(1913·경기도 양주군) : 대한청년단 간부. 인민군에 끌려가 동네 뒷산에서 총살당함 △ 이모극(1930·충북 보은군) : 대동청년단 간부. 이웃 좌익단체 조직원에게 끌려가 마을 입구에서 죽창으로 살해당함 △ 김길태(1923·충남 서천군) : 지주. 지역 지주 10여명과 함께 인민군에 끌려가 군청 옆에서 집단으로 화형당함 △ 윤석두(1914·전북 익산시) : 지주. 인민군 조직원에 의해 부친이 끌려가 총살당함 △ 윤석모(1926·전북 익산시) : 지주. 피난길에 하인의 밀고로 인민군에 끌려가 총살당함 △ 박봉구(1895·전남 장흥군) : 지역 유지. 지역 인민위원장 등에 의해 경찰서로 끌려간 후 공동묘지에서 학살됨 △ 신일균(1913·충남 제천군) : 이장. 직무수행 중 인민군 내무서원에게 체포돼 20여 일간 고문을 당한 후 귀가. 고문 후유증으로 병원 치료를 받았으나 사망 △ 장덕실(1904·강원 삼척시) : 노무자로 참전. 입대 후 강원도 금강산 부근에서 실탄과 식량을 운반하던 중 인민군 총탄에 부상을 입고 후송된 후 야전병원에서 치료받다 사망 △ 이대운(1917·강원 동해시) : 동해안 봉골 앞바다에 침투한 무장공비 간첩선의 포격으로 가족이 몰살당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