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지위 향상과 역량 강화 분야서 탁월한 성과 인정받아최초 '여성 초헌관'… 사찰·서원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 견인
  • ▲ 제5회 반기문 여성권익상 수상자로 선정된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 ⓒ정상윤 기자
    ▲ 제5회 반기문 여성권익상 수상자로 선정된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 ⓒ정상윤 기자
    우리나라의 사찰 7곳과 서원 9곳을 유네스코 인류유형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이배용(74·전 이화여대 총장) 한국의서원통합보존관리단 이사장이 아시아 여성 최초로 '제5회 반기문 여성권익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미국 뉴욕에 있는 비영리 국제단체 '아시아 이니셔티브(Asia Initiative)'는 이배용 이사장과 폴 폴먼(Paul Polman) 전 유니레버 최고경영자에게 반기문 여성권익상을 수여했다고 16일 밝혔다.

    반기문 여성권익상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재임 기간 여성 지위 향상과 역량 강화 분야에서 이룩한 성과를 기리기 위해 2017년 제정된 상이다.

    이 이사장은 이화여대 총장 재직 시절 국제문제 담당 부서를 만들고 전 세계 명망가를 초청해 재학생들과 대화할 기회를 부여하는 등 여성 교육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았다.

    17일 이 이사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이화여대 총장을 지낼 당시 '국제교류처'와 '이화학술원'을 설치하고, 우리나라의 사찰과 서원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일에 앞장서 온 데다가, 서원 600여 년 역사상 최초로 향사(享祀: 서원의 제사)에서 '첫 술잔'을 신위(神位)에 올리는 '초헌관(初獻官)'에 임명된 점 등이 높은 점수를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2006∼2010년 이화여대 총장을 지낸 이 이사장은 제28대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세계유산분과 위원장, 한국대학교육협의회장, 제16대 한국학중앙연구원장, 한국여성연구원장, 한국여성사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2010년 국가브랜드위원회 2기 위원장으로 일할 때부터 한국의 산사·서원의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추진해 온 이 이사장은 전통 사찰인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과 '한국의 서원'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인물로 꼽힌다.

    사찰과 서원에 이어 우리나라의 전통 한지(韓紙)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 위해 '전통 한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 추진단' 단장을 맡은 이 이사장은 관련 학술포럼을 열고 전국 각지에 흩어진 한지장 실태를 파악하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 ▲ 제5회 반기문 여성권익상 수상자로 선정된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 ⓒ정상윤 기자
    다음은 이배용 한국의서원통합보존관리단 이사장과의 일문일답.

    - 우선 '반기문 여성권익상'을 수상하신 걸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수상하신 거죠?

    ▲국내뿐 아니라 아시아 최초예요. 지난해에는 제인 구달(Jane Goodall)이라는 침팬지 연구가가 받았고, 그동안 다 서양의 여성 지도자들이 이 상을 받았어요. 아시아 여성 지도자 중에선 제가 처음으로 이상을 받는 영예를 안게 됐습니다. 올해 남성이 이 상을 받은 것도 처음이라고 해요. 폴 폴먼(Paul Polman) 박사는 유니레버의 최고경영자 등을 지내면서 여성 권익 신장에 큰 기여를 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 상을 받게 됐어요.

    - 시상식은 온라인으로 개최됐죠?

    ▲코로나19 때문에 직접 가지는 못하고 온라인으로 상을 받았어요. 지난 15일(현지시각) 뉴욕에서 열린 '아시아 이니셔티브 갈라쇼'에서 '반기문 여성권익상' 수상 사실이 공표됐고요. 바로 직전에 아시아 이니셔티브 뉴욕 회장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폴먼 박사 이렇게 세 사람과 제가 줌으로 관련 좌담회를 갖고 그 자리에서 반 전 총장이 시상을 했어요.

    - 이배용 이사장님이 올해 수상자로 선정되신 건 아무래도 오랫동안 이화여대 총장으로 계시면서 여성 교육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내신 덕분이 아닌가 싶은데요.

    ▲제가 일평생 '이화인'으로 살아오면서 여성 인재 양성에 앞장서 온 점을 주최 측이 높이산 것 같아요. 제가 총장 때 '국제교류처'를 처음 신설해 국내외 학생들의 교류를 활성화하고, 세계 지성의 중추가 되겠다는 포부로 '이화학술원'을 설치해 국내 석학뿐 아니라 해외 석학들도 석좌교수로 모셨죠. 이러한 제반 환경이 우리 학생들의 학구적 지향성과 지위 향상을 도모하고 계속해서 발전해 나가는 교육적 풍토를 조성했다고 생각합니다.

    - 저는 개인적으로 이사장님이 여성 최초로 '초헌관(初獻官)'에 임명되신 것도 여성의 지위 향상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죠. 오랫동안 여성이 주류가 되지 않았던 영역에서 제가 최초로 '초헌관'이 된 것은 상징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여성 지도자로서 우리 문화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올린 것도 여성의 문화적 역량 강화에 이바지했다고 봐요.

    - 사찰과 서원에 이어 최근엔 전통 한지(韓紙)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계시죠?

    ▲우리 전통 한지가 인사동에서 사라지고 있어요. 99번의 공정을 거쳐서 100번째 나온다고 해서 백지(百紙)라고도 부르는 한지는 1000년이 지나도 품질이 유지될 정도로 질 좋은 종이예요. 다만 수공업 제작이라 기계로 만드는 것보다 비싸고, 대량 생산이 어렵다는 게 단점이죠. 품질은 좋은데 판로가 약해요. 한지장들이 생계를 유지해야 우리 전통도 살릴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국가가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지를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올리려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죠.

    - 아까도 잠시 언급하셨지만 다른 종이들과 비교해 한지가 우수한 점이 뭔가요?

    ▲유럽의 양피지가 500년 이상 못 가는데요. 한지는 질 좋고 보존력이 뛰어나 요즘엔 외국에서 더 각광받고 있어요. 프랑스 루브르박물관과 이탈리아 문화재 보존복원연구소에서도 한지의 내구성과 보존력을 인정했죠.

    - 현재 '전통 한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 추진단' 단장도 맡고 계시죠?

    ▲네, 지난 4월 29일 전통 한지의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발대식을 갖고 활동 중인데요. 벌써 선지(宣紙)와 화지(畫紙)를 유네스코 등재한 중국과 일본에 비해서는 한참 늦었죠. 지난 6월 25일 안동에서 학술포럼을 했고 10~11월에는 문경과 전주에서도 학술포럼을 열 계획입니다. 일단 '한지장'의 실태를 파악하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해 한지장이 있는 전국 지자체 17곳(광역 6곳, 기초 11곳)을 추진단과 함께 돌고 있는데요. 2000km 이상을 오가면서 그분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고 우리 전통 한지를 보전해달라고 격려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