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국민대 교수 "공동체 살리기 위해 국가권력 제한… 개혁 과도하지 않았다"한미 FTA, 제주해군기지, 이라크 파병… "지금 친노, 친문들 노무현 생각 이해 못해"
  • ▲ 김병준 국민대 명예교수가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정치문화플랫폼 하우스에서 열린 전직 대통령 평가 강연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옥지훈 기자
    ▲ 김병준 국민대 명예교수가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정치문화플랫폼 하우스에서 열린 전직 대통령 평가 강연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옥지훈 기자

    "국가권력 휘두르는 일 최대한 자제한 자유주의자."

    김병준 국민대 명예교수의 노무현 전 대통령에 관한 총평이다. 20일 저녁 서울 여의도 하우스 카페에서 열린 강연에서 노무현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과 교육부장관을 지낸 김 교수는 이렇게 노 전 대통령을 평가했다.

    이날 강연은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과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 등이 '2022 대선 특별기획'으로 마련한 자리로, 매주 전직 대통령 7명의 공과를 평가한다. 강연은 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 시행에 따라 현장 참석자가 제한된 상태에서 유튜브 중계로 진행됐다. 특히 최근 국민의힘에 입당해 대권 도전을 선언한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참석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김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사람들이 노 전 대통령이 국가권력을 과도하게 휘둘러 개혁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전혀 그렇지 않다"며 "오히려 노 전 대통령은 공동체가 살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국가권력이 제한돼야 한다는 입장이었다"고 강조했다.

    "청와대 상춘재에서 만났을 때 노 전 대통령은 국가경영의 우선순위를 '공동체-시장-국가' 순으로 매겼다"고 회고한 김 교수는 "지금 소위 말하는 친노·친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노무현의 생각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盧·文, 검찰개혁 접근방식 180도 달라"

    김 교수는 "검찰개혁만 봐도 문재인·노무현 대통령 똑같이 하겠다고 나섰는데, 둘의 차이가 180도 다르다"며 "노 대통령은 평검사와 대화부터 시작했다. 반면 이 정부는 인사권이라는 칼부터 들이댔다"고 비판했다.

    "노 전 대통령도 접근 방법이 현 정부와 달랐지만, 금융개혁·교육개혁·검찰개혁·지방분권·지역주의 타파를 다 하고 싶어 했다"고 밝힌 김 교수는 "그럼에도 대통령이 칼을 빼 들면 그 자체로 변질된 권력이 된다는 것을 알기에 싫어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이어 "경제정책도 지금 정부는 국가주의 입장에서 나라가 개입해 해결하려 한다"며 "반면 노 전 대통령은 시장의 힘을 적극 활용했다. 미국이라는 세계 최대 시장을 열어 미꾸라지 속에 메기를 풀어놓는 효과를 본 것"이라고 분석했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 초기에 "이러다 대통령 직을 못해먹겠다는 생각이, 위기감이 든다"고 털어놓았다 뭇매를 맞은 바 있다. 당시를 회상한 김 교수는 "실제로 그때 그랬는데, 왜냐하면 일을 펼치려고 하면 이해관계세력들이 여기저기서 올라와 반대, 찬성 하면서 딱딱 맞서고 있었다"며 "전부 말로 하는 게 아니라 시위하고 싸우고 하니까 그런 솔직한 이야기가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 ▲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하우스 카페에서 '2022 대선 특별기획: 기적의 나라 대한민국, 7인의 대통령' 노무현 편 강연을 듣고 있다.
    ▲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하우스 카페에서 '2022 대선 특별기획: 기적의 나라 대한민국, 7인의 대통령' 노무현 편 강연을 듣고 있다.

    "盧 후보 시절부터 이미 개방체제 공약"

    김 교수는 "노 대통령이 한미 FTA, 제주해군기지, 이라크 파병을 하니까 진보들이 '속았다'고 했다"며 "속은 것이 아니라 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이미 개방체제를 통한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공약으로 걸었다. 그런데 '좌회전 켜고 우회전했다'고 비판하니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정권 초반부터 각 부처 모든 현안을 보고받던 비서실을 개편해 총리실에 기능을 이관하고 대연정을 꺼내든 것도 '힘의 균형'을 추구하는 자유주의자적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거론하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말을 멈추었다. "이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우리는 시스템을 봐야 한다"고 입을 연 김 교수는 "인간적 결단이나 검찰이 어떻게 수사해서 (서거)했다고 볼 것이 아니라, 어떻게 대한민국 대통령이 임기 말에 갈수록 우울해지고, 힘이 빠지고 일을 제대로 못하는가에 대해서 고민해봐야 한다"고 역설했다.

    "갈등 심화, 연정으로 극복하려 했다"

    이날 강연이 끝나고 이어진 비대면 화상토론회에서 20대 청년 윤찬우 씨는 "현 정부에서 추미애-윤석열 갈등, 젠더 갈등, 세대 갈등 등이 심화했는데 만약 노 대통령이었다면 어떻게 대처했을까 궁금하다"고 질문했다.

    이에 김 교수는 "갈등이라는 것이 어떤 신념과 이해관계 차이에서 많이 발생해 복잡한데, 한마디로 '노 대통령이라면 이렇게 해결했을 것'이라고 단언하기 힘들다"면서도 "노 대통령은 정말 연정을 하고 싶어 하셨다. 우리 사회가 서로 화합하고 이질적인 집단이 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을 모델로 보여 주고 싶어 했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일이 안 되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답했다.

    "총리를 야당이 가져가는 대신 노무현정부의 일 몇 가지를 해 달라는 것이었는데, 아시다시피 실패했고 너무 안타까워했다"고 전한 김 교수는 "그런 식으로 됐으면 우리 사회 갈등을 해소하는 데 좋은 본보기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