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김정일 모두 후계자 지정한 뒤 권좌에서 물러나""김정은 지난해부터 정신적 문제 가능성… 스스로 오래 못 산다 느끼고 있을 수도”
  • ▲ 지난 4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를 주재하는 김정은.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 4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를 주재하는 김정은.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북한이 지난 1월 제8차 노동당대회에서 당 규약을 개정해 ‘당 제1비서’ 자리를 신설한 것을 두고 다양한 추측이 나왔다. 일부 언론은 “북한이 대남 적화혁명을 포기했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당 제1비서직 신설’이 김정은의 건강 이상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비서, 김정은의 대리인이자 후계자”

    이 같은 추측을 내놓은 것은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다. 김일성 종합대 영문과를 졸업한 주성하 기자는 1998년 탈북, 2002년 한국에 입국했다. 북한에 별도의 소식통을 갖고 있는 주 기자는 국제부 소속이면서 북한 문제도 다루고 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에도 기고하고 있다.

    그는 지난 6일 북한 노동당의 제1비서직 신설과 관련해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비서는 노동당 총비서의 대리인'이라고 규정한 개정된 노동당 규약을 언급한 뒤 “김정은을 대신해 통치하는 사람, 즉 후계자”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이 자리에 노동당 공식서열 2위인 조용원이 앉느니 뭐니 하는데, 그럴 가능성은 낮게 본다”고 전망한 주 기자는, 김정은의 아들이 아직 어린 만큼 ‘왕조체제’인 북한에서 김여정이 김정은의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주장했다. 현 상황에서 김정은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은 김여정뿐이라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아직 노동당 제1비서직만 신설했을 뿐 김여정을 공식 임명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주 기자는 덧붙였다. 

    주 기자는 “이것(당 제1비서직 신설)이 놀라운 점은 김정은이 아직 후계자를 거론할 나이가 아니라는 점”이라며 “김정은이 벌써 ‘죽음의 그림자’를 느낀다는 뜻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37세인 김정은이 “나는 오래 살지 못할 수도 있다. 죽을 가능성에 대비해 사후 혼란을 막고 권력을 내 뜻대로 이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는 주장이다. 

    주 기자는 그러면서 “이런 각도에서 보니 지난해 4월부터 최근까지 1년 남짓 동안 김정은의 비정상적 행보가 이해가 되는 듯하다”며 4개의 퍼즐을 제시했다.

    은둔과 김여정의 대리인 행세, 빈번해진 공개처형… 또 다시 은둔

    주 기자가 말한 4개의 퍼즐은 △지난해 4월 김정은의 은둔 △6월 대리인을 자처한 김여정의 행태 △권력구도에서 보면 불필요한 공개처형 빈발 △올 들어 다시 시작된 김정은의 은둔이다.

    주 기자의 지적처럼 김정은은 지난해 4월15일 김일성 생일에도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지 않는 등 지난해 5월 하순까지 40일 넘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주 기자는 “4월 들어 김정은의 신경질이 급격히 늘어나고 비준해야 하는 서류에 서명하지 않으며, 결재를 받으러 간 간부들에게 욕설을 하고 물건을 던지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말을 당시 북한 고위소식통으로부터 들었다고 밝혔다. “정보가 맞다면 (김정은의) 정신상태가 불안정했다는 의미이고, 보인 행동은 우울증 또는 조울증 증상에 가까웠다”는 주장이다. 

    또한 지난해 6월 김여정이 갑자기 전면에 나서서 이상한 형식의 담화문을 발표하고,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가 하면, 북한에서 ‘위임통치’가 이뤄진다는 국가정보원의 보고가 나온 것도 이상하다고 주 기자는 지적했다. “김정은이 멀쩡했다면 나올 수 없는 표현”이라는 것이다.

    김정은이 지난해 상반기부터 매우 포악해진 점도 이상징후라고 지적했다. 장성택 처형 때와 달리 북한에 더 이상 자신에게 도전할 세력이 없음에도 김정은은 노동당 경제부장, 노동당 선전비서, 공훈국가합창단 지휘자를 공개처형하고 시신을 수습하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했다고 주 기자는 전했다. 

    “코로나 사태 후 2월 중순부터 두 달 동안 무려 700여 명이 방역지침 위반으로 처형됐다”고 소개한 주 기자는 “이런 잔인함은 김정은의 정신상태가 매우 좋지 못하고,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화를 통제하지 못한다는 증거가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주 기자는 최근 김정은이 다시 사라진 것을 네 번째 퍼즐로 지목했다. 지난 4월11일부터 지금까지 50일 동안 김정은이 단 사흘만 잠깐 얼굴을 드러낸 것이 지난해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올해는 전국에 ‘제2의 간고한 고난의 행군’을 선포한 터라 계속 나타나 다그쳐도 모자랄 판인데 자기는 사라진 것”이라고 짚은 주 기자는 “나타나야 할 타이밍에 나타나지 못한다는 것은 (김정은의) 건강이 따라주지 않아서일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김일성도, 김정일도 환갑 넘겨서야 후계자 지정… 김정은, 건강 이상 있을 수도

    주 기자는 불과 37세인 김정은이 ‘대리인’, 사실상 ‘후계자’를 언급한 것 자체가 그의 건강에 심각한 이상이 있을 수 있는 증거라고 거듭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일성과 김정일 모두 후계자를 지정한 뒤 권좌에서 내려온 과정을 설명했다.

    김일성은 1974년 제6차 노동당대회에서 김정은을 후계자로 공식 발표했다. 그 이후 권력의 중심은 김정일에게로 급격히 이동했다. “김일성은 결국 1992년 아들에게 아부하는 시까지 쓰는 신세가 됐다”는 것이 주 기자의 설명이다. 

    김정일도 환갑이 지난 뒤에도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2008년 8월 뇌졸중으로 쓰러져 사경을 헤맨 뒤에야 2010년 김정은을 공식 후계자라고 인정했다. 

    “김일성도 김정일도 환갑을 넘긴 시점에 후계자를 발표했다”고 설명한 주 기자는 “그런데 불과 37세인 김정은이 대리인을 꺼내든 것은 건강이 정상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주 기자는 “어떤 언론은 노동당 규약에서 남한을 혁명 대상으로 명시했던 대목을 삭제한 것을 가장 중요한 내용으로 보도했다”면서 “하지만 이는 지금 김정은이 남한의 혁명까지 생각할 여유가 전혀 없는 것 때문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주기 전에 자기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김정은의 공포가 새 노동당 규약 속에 짙게 깔려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