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시간 동안 '수신료 인상 필요성' 설명하고 '인상안' 찬반 조사학습·숙의토론 후 설문조사하는 '공론조사'…여론조사 '둔갑' 우려
  • ▲ 양승동 KBS 사장. ⓒ뉴데일리
    ▲ 양승동 KBS 사장. ⓒ뉴데일리
    '방만 경영'과 '편파성 보도' 등으로 국민적 공분을 자아내면서도 줄기차게 '수신료 인상안'을 밀어붙이고 있는 KBS가 28일 "국민참여단 209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공론조사 결과 10명 중 8명(79.9%)이 수신료 인상에 찬성했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해 빈축을 사고 있다.

    대표성을 띠기 어려울 정도로 표본 수가 적은 데다 여론조사가 아닌 공론조사 결과였지만, 이 자료를 토대로 다수 언론이 '시민 10명 중 8명이 수신료 인상에 찬성했다'는 식으로 관련 보도를 쏟아내면서 자칫 여론을 왜곡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관련 기사를 접한 네티즌들은 "KBS를 지지하는 209명 모아놓고 투표한 것 아니냐" "전 국민을 대상으로 조사하면 인상은커녕 수신료를 폐지하자고 나올 것" "댓글만 봐도 다 반대하는데, 도대체 누가 찬성한다는 건지" 등의 댓글을 달며 해당 조사 결과에 대한 깊은 불신을 드러냈다.

    숙의토론 자료 왜곡되면 공론조사 결과도 왜곡

    '공론조사(Deliberative polling)'는 무작위로 선정한 시민들에게 의제에 관한 전문가들의 정보를 제공하고 학습과 토론 등 숙의 과정을 거쳐 결과를 도출하도록 하는 조사 방식이다.

    이 조사는 특정 이슈에 대해 잘 모르고 응답하는 경우가 많은 여론조사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으나, 응답자들이 판단 근거로 삼는 숙의자료가 편향적이거나 왜곡됐을 경우 조사 결과도 왜곡될 수 있다는 단점을 갖고 있다.

    숙의토론을 포함한 이번 조사는 미디어전문가 5명(조항제 부산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이재진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양정혜 계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주정민 전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으로 구성된 '공적책무와 수신료공론화위윈회(위원장 조항제)'가 진행했다.

    KBS 이사회의 의뢰를 받아 지난 22~23일 양일간 서울 여의도 KBS아트홀에서 'KBS 미래 비전, 국민에게 직접 듣는다'는 주제의 숙의토론을 진행한 수신료공론화위는 토론 시작 전과 폐회 후 총 2차례에 걸쳐 토론 참여자 209명을 상대로 수신료 인상 등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였다.

    조사 결과, 토론회 전에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72.2%가 수신료 인상에 찬성한다고 답했고, 폐회 후 실시한 조사에서는 79.9%가 찬성한다고 답했다. 이를 두고 KBS는 "이틀간 진행한 숙의토론이 수신료 인상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변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인상에 찬성한다'는 응답자를 대상으로 한 '적정한 인상금액'을 묻는 조사에서는 월 평균 3830원이 나왔다. 앞서 KBS는 지난 1월 말 현행 월 2500원인 수신료를 월 3840원으로 1330원 올리는 인상안을 이사회에 상정한 바 있다.  

    공론조사에 참여한 국민참여단은 한국리서치가 2500명을 상대로 진행한 기초조사에서 숙의토론 참여의사를 밝힌 응답자 가운데 성·연령·지역별 인구비례 등을 고려해 선정했다.

    KBS는 "공정한 토론을 위해 KBS의 공적 책무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드러낸 시민(59%)과 긍정적 견해를 보인 시민(35%), 모르겠다(6%)고 응답한 시민들을 고루 섞어 국민참여단을 구성했다"고 밝혔다.

    "KBS 뉴스 불공정" "경영 방만"… 70% 이상이 부정적


    숙의토론이 진행된 KBS아트홀에는 진행자와 발표자, KBS경영진 등만 참석하고, 토론 참가자들은 각 가정이나 전국 지역 KBS에 별도로 마련된 화상 토론장을 통해 공론조사에 응했다.

    미디어전문가 3명(홍종윤 서울대 SNU 펙트체크센터 부센터장, 최세경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겸임교수)이 이틀간 '수신료 제도와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 이해' '더 나은 공영방송을 위한 쟁점과 과제' 'KBS 공적 책무 확대계획의 적정성과 우선순위' 등의 주제발표를 하면, 국민참여단이 분임토의와 질의응답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한국리서치가 진행한 설문조사는 휴대전화를 통한 웹조사 방식으로 이뤄졌다.

    기자협회보에 따르면 국민참여단은 총 14시간에 걸쳐 KBS 측이 밝힌 수신료 인상의 필요성, 공적책무 이행계획과 전문가들의 보충 설명을 듣고도 "재원의 위기를 타개할 자구책 마련에 소홀했고, 국민의 마음과 신뢰를 얻으려는 노력도 여전히 부족하다"고 질타를 쏟아낸 것으로 전해졌다.

    KBS가 보도자료를 통해 "수신료 인상에 찬성한 참가자들이 많았다"고 밝혔지만 정작 현장에선 "KBS의 자구노력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수신료 인상이 유일한 답이 될 수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는 것이다.

    KBS가 발표한 공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참여단의 91.9%가 "공영방송이 필요하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공영방송의 재원을 늘리는 수신료 인상에도 원론적으로 반대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56%가 "잘 못하고 있다"고 답해 절반 이상은 KBS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KBS 뉴스가 공정하지 못하다", "KBS 경영이 방만하고 비효율적이다"라는 의견도 각각 73.2%, 74.6%로 나타났다.

    따라서 국민참여단이 수신료 인상에 동의한 것은 KBS가 '공공성'과 '신뢰성'을 회복하는 것을 전제로 한, 원론적인 의견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 네티즌은 "수신료를 월 3840원으로 올리면 KBS 수신료 수입이 1조원을 넘어서게 된다고 한다"며 "광고료도 받으면서 수신료는 왜 받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당신들은 정말 공정하다고 생각하는가?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라고 비판의 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