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사법·행정 요직 두루 섭렵…회고록서 "살신구국의 역사적 소명의식에 투철한 사람이 정치인 돼서 국정 맡아야"
  • ▲ 이한동 전 국미총리가 8일 별세했다. 사진은 이 전 총리가 2015년 JP 화보집 <운정 김종필> 출판기념회에서 축사하는 모습.ⓒ연합뉴스
    ▲ 이한동 전 국미총리가 8일 별세했다. 사진은 이 전 총리가 2015년 JP 화보집 <운정 김종필> 출판기념회에서 축사하는 모습.ⓒ연합뉴스
    율사(律士) 출신으로 제5공화국 때부터 DJ정부까지 정계를 누볐던 이한동 전 국무총리가 8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7세.

    판·검사 지낸 뒤 5공 때 정계 입문…2000년 DJP연합시절 국무총리

    이한동 전 총리는 경기도 포천 출신으로, "대통령 빼고 다 했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입법·사법·행정 요직을 두루 거쳤다. 경기고·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이후 서울지법 판사와 서울지검 검사를 거친 뒤 전두환 정권이 출범한 뒤인 1981년 11대 총선에서 민주정의당(민정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이 전 총리는 이후 6선에 성공했다. 민정당 사무총장과 원내총무, 내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엔 국회 부의장을, 자유민주연합(자민련) 소속이었던 김대중 정부 시절엔 제33대 국무총리를 지냈다. 그는 2000년 헌정사상 처음으로 인사청문회를 통해 국무총리로 임명됐고 2년2개월간 총리직을 수행했다.

    이 전 총리는 그러나 '대권'과는 연이 닿지 않았다. 그는 1997년 신한국당(현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에 나서 당시 이회창·이인제 후보 등과 맞붙었으나 '이회창 대세론'에 밀렸다. 대선 후 탈당해 김종필 전 총리가 이끌던 자민련 총재를 지냈다. 2002년 '하나로국민연합'을 창당해 다시 대권에 도전했지만 낙선했다. 이후 2007년 17대 대선에서 이명박 당시 후보를 지지하며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에 복당한 뒤 정계를 은퇴했다.

    이 전 총리는 지난 2018년 발간한 자신의 회고록 <정치는 중업(重業)이다>를 통해 정치인으로서의 소회와 당부를 담기도 했다.

    이낙연 "정치인, 살신구국의 역사적 소명의식 투철한 사람이어야 된다 말씀"

    이 전 총리의 별세 소식에 정치권은 일제히 애도의 뜻을 밝혔다. 김예령 국민의힘 대변인은 이 전 총리에 대해 "대한민국 현대사의 거목이었다"라며 "국민통합과 포용의 정치, 대화와 타협을 중시한 의회주의자로서 많은 후배 정치인들의 귀감이 되어주셨다"고 애도했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9일 페이스북을 통해 "고인께선 6선 국회의원, 내무부 장관, 국무총리를 지낸 40여 년 동안 늘 통 큰 정치를 보여준 거목이셨다"며 "'단탈에 해결하는 결단력으로 '일도(一刀)' 선생'으로 불렸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이 전 대표는 "자신을 죽여 나라와 국민을 살리려는 살신구국의 역사적 소명의식에 투철한 사람이 정치인이 돼 국가운영을 맡아야 한다"는 고인의 회고록을 인용한 뒤 "힘들고 어려운 국민을 위해 국민들의 불안한 삶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본다"고 적었다.

    故이한동 전 총리의 빈소는 9일 건국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조문은 낮 12시 이후 가능하다. 발인은 오는 11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