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사퇴 후 '정권 수사 좌초' 우려… 일선검사들 "'검수완박' 시도, 정권 수사에 대한 보복"
  • ▲ 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현관에서 사의를 표명하는 입장 발표를 하고 있다. ⓒ정상윤 기자
    ▲ 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현관에서 사의를 표명하는 입장 발표를 하고 있다. ⓒ정상윤 기자
    검찰의 최대 방패막이였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잃은 검찰의 근심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위기 때마다 윤 총장이 힘을 실어줬던 각종 정권 수사에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문재인정권은 윤 총장의 사퇴 여파가 잠잠해지면 사실상 '검찰 해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 여기에 차기 총장까지 친정부 인사로 임명되면 정권 수사가 좌초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는 탄식이 검찰 안팎에 쏟아졌다. 

    4월까지 조남관 직무대행 체제 유지될 듯 

    5일 법무부와 대검찰청에 따르면, 당분간 대검은 조남관 대검 차장검사의 총장대행 체제로 운영될 전망이다. 법무부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의 구성과 후보 추천, 후보자 인사청문회 등 일정을 고려할 때 새 총장이 임명되려면 한 달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 같은 수장의 부재가 정권 수사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우선 조 직무대행은 지난해 윤 총장 징계 사태 당시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에게 반기를 들며 윤 총장 곁을 지킨 전력이 있기 때문에, 정권 수사 등 산적한 과제에서 윤 총장의 기조를 이어받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각에서는 조 직무대행이 차기 총장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만큼 당장 정권 수사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결국 직무대행 체제 기간 동안 정권 수사는 공전을 거듭할 공산이 크다는 뜻이다. 

    게다가 오는 7월 대규모 검찰 인사로 수사팀의 대폭 교체가 예상되는 상황을 감안하면, 현재 수사팀에 남은 시간은 약 세 달 안팎에 불과하다. 

    더욱 큰 문제는 직무대행 체제가 끝난 후다. 현재 조 직무대행과 함께 유력한 후보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등 '친정부' 인사가 차기 총장 자리에 앉는다면 정권 수사는 사실상 좌초할 것이라는 관측이 팽배하다.  

    검찰 내부망에 정권 수사 관련 정부 비판글 속출

    당장 일선검사들 사이에서는 정권 수사 좌초 우려 목소리가 크다. 일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중수청법 막으려다 정권 수사 다 빼앗기게 생긴 꼴" "정권 수사 안 하면 검찰 살려주는 건가"라는 등의 비아냥거림도 나온다.

    박노산 대구서부지청 검사(37‧사법연수원 42기)는 5일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법무부장관님, 살려주십시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는 지난해 11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이었던 박범계 법무부장관이 국정감사에서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을 향해 예산과 관련해 "'의원님, 살려주십시오'라고 한번 해보라"고 해 논란이 된 사건을 풍자한 것으로 보인다.

    박 검사는 "월성 원전 사건, 라임 및 옵티머스 사건, 김학의 출국금지 사건 등 수사를 중단하고 조국 전 법무부장관 일가 사건, 울산시장선거 하명수사 사건 등에 대한 공소를 취소하면 검찰을 용서하는 것이냐"면서 "이제 아무리 의심이 들어도 청와대와 국회, 고관대작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사건은 기록도 쳐다보지도 않겠으니 검찰을 다시 풀어달라"고 비꼬았다. 

    정희도 청주지검 부장검사(55·사법연수원 31기)도 이날 '이프로스'에 '개혁이 아니라 보복'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집권여당 강경파의 '검수완박' 시도가 조국 전 장관 수사로 대표되는 '정권의 심기를 거스를 수사'에 대한 보복이라는 사실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며 "더불어 향후 또 다시 벌어질지 모를 현 집권세력에 대한 수사를 막기 위한 시도라는 것 역시 대부분 사람도 알고 있다. 다수의 국민들이 현재 벌어지고 있는 검찰개혁이 '검찰 길들이기 내지 검찰 장악'으로 변질됐다고 염려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검수완박'은 윤 총장이 지난 3일 여당의 중수청법 추진을 비판하면서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라는 뜻으로 표현한 말이다. 

    장진영 대전지검 천안지청 검사(41·사법연수원 36기)도 이날 '검찰의 정체성과 방향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총장님은 사퇴하셨지만, 검찰은 여전히 본연의 업무를 하고 있고, 해야 한다"며 "정상적인 검찰개혁을 완수하기 위해 정치적 중립방안과 수사지휘 복원을 통한 실질적 사법통제 방안을 마련해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장 검사는 지난해 12월 일선검사 중에서 추 전 장관의 사퇴를 최초로 공개요구했다.  

    꼬리→윗선 수사 본격 착수 시점에 좌초 위기 

    현재 주요 정권 수사로는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의혹(대전지검), 김학의 전 법무부차관 불법 출국금지 및 수사 무마 외압의혹(수원지검), 청와대 울산시장선거 개입 의혹(중앙지검) 등이 있다. 

    월성 원전 사건은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장관 영장 재청구와 함께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현 한국가스공사 사장) 등 청와대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수사가 남았다. 

    김 전 차관 불법 출금 사건의 경우에도 이성윤 중앙지검장 등 윗선 개입 여부 관련 수사를 앞두었다. 이 사건에서 이 지검장 등 현직 검사들을 대상으로 한 수사는 지난 3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로 이첩됐지만, 현재로서는 검찰로 재이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