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개혁 속도조절론, 재정 무시한 재난지원금, 가덕도공항 반대 국토부文 임기 1년 남았는데 무리할 필요 없다… 민주당-정부 잇달아 '文 패싱'
  • ▲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뉴시스
    ▲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말 레임덕 현상이 현실화하는 분위기다. 여권 곳곳에서 문 대통령의 공식 언급과 배치되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완전히 분리해 검찰을 해체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검찰개혁 시즌2'와 관련, 문 대통령의 가이드라인을 무시하는 발언이 여권 곳곳에서 터져나오는가 하면, 재난지원금 결정 과정에서도 문 대통령의 지시가 '패싱'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됐다.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이 문 대통령에게 '일임'한 거취 문제도 '사직 권유'로 결론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향후 문 대통령의 레임덕 현상은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무부 업무보고에서 박범계 법무부장관은 "올해부터 시행된 수사권 개혁의 안착과 반부패 수사역량이 후퇴돼서는 안 된다는 대통령의 말씀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 언급은 검·경 수사권을 조정한 지 두 달 남짓 된 상황에서 무리하게 검찰개혁을 밀어붙이지 말라는 말로 해석됐다.

    말 그대로 '속도조절론'이지만, 다르게 해석하면 자신의 임기 내에 중대범죄수사청을 설치하지 말고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의 수사역량 강화에 집중하라는 뜻도 담긴 것으로 보인다.

    과반이 수사 경험이 없는 변호사로 채워지는 공수처의 특성상 예전보다 수사총량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지시다.  

    범여권 초선의원들은 그러나 중대범죄수사청 공청회를 강행했고, 박 장관 역시 24일 대전보호관찰소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검찰개혁과 관련해 '당·청 간 이견이 없다'면서도 '당론에 따르겠다'는 취지로 말했다.

    모두 대통령의 지시 또는 가이드라인에 배치된다.

    이와 관련, 박 장관은 “저는 법무부장관이지만 기본적으로 여당 국회의원이다. 당내에 다양한 의견이 있고 의정활동 과정에서 검찰개혁특위 위원들과 많이 토론하고 제 의견도 전달했다”면서 “당론이 모아지면 따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실무적으로 법무부가 제 의견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소간의 차이를 조절해가고 있는 단계”라고 밝힌 박 장관은 “궁극적으로는 수사와 기소권은 분리되어야 하고, 그것이 세계적 추세와도 맞는다”고 덧붙였다. 

    같은 날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은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박 장관이 임명장을 받으러 온 날 문 대통령이 속도조절 당부를 했다"며 박 장관과 정반대로 말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도 중대범죄수사청 설치 강행에 힘을 보태는 모습이다.

    추 전 장관은 "쓸데없는 걱정 대신 '수사·기소 분리' 와 '수사청 설치 법률안' 을 제정하고, 검·경 협력관계가 제대로 안착할 수 있도록 실무적 준비를 해야 할 때"라고 문 대통령의 '속도조절론'에 대놓고 반박했다.

    "'수사주체와 기소주체를 분리하는 것' 과 '수사역량 후퇴' 는 논리상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고 지적한 추 전 장관은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 형사사법체계를 운영하는 선진사법국가의 수사역량이 우리나라보다 못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의 가이드라인을 무시하는 여당의 처사는 '4차 재난지원금' 결정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문 대통령은 지난 8일 4차 재난지원금과 관련해 '재정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위기극복 방안을 강구하라'는 취지로 지시했지만, 정부와 여권이 엇박자를 내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민주당은 기재부의 반대에도 28일 당·정·청 회의에서 20조원 규모의 재난지원금을 확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토부 공무원이 가덕신공항 건설과 관련해 사실상 반대 의견을 낸 것도 레임덕의 징조다.

    '월성 원전1호기 폐쇄' 사건의 학습 효과이기도 하지만, 임기 1년2개월 남은 문 대통령을 위해 무리하게 강행된 국책사업에 '동원'될 이유가 없다는 의미다. 

    이 같은 문 대통령의 권력공백 현상은 '이제는 대통령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시기가 왔다'는 인식이 여권 전반에 깔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전날 국회 운영위에서 나온 유 실장의 '신현수 사표 수리' 관련 언급이 현실화하면 문 대통령의 레임덕은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