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1400' 원전 모델, 장단점, 대안까지 치밀하게 검토… "원전 불결-불안전" 文 발언과 배치
  • ▲ 산업통상자원부. ⓒ뉴데일리 DB
    ▲ 산업통상자원부. ⓒ뉴데일리 DB
    문재인정부가 탈원전정책으로 건설을 중지시킨 신한울 원전 3·4호기의 제작분을 북한 내 원전 건설에 활용하거나, 백지화된 신한울 원전 건설을 북한에 대량의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재개하는 방안을 심도 있게 검토한 내용이 정부 내부 문건에서 발견돼 큰 파장이 예상된다.

    원자력 전문가들은 이 문건이 정부의 탈원전정책 기조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 등을 근거로 윗선의 지시나 상부 보고가 있었을 것이라고 의심한다. 

    탈원전으로 멈춘 신한울 3·4호기, 北 원전에 활용 방안 검토

    산업통상자원부는 1일 검찰에 기소된 김모 산업부 서기관이 감사원 감사 직전 삭제한 북한 원전 관련 문건 17개 중 1개인 '북한 지역 원전 건설 추진 방안' 문건을 공개했다. 야당을 중심으로 문건을 공개하라는 요구가 빗발치자 논란을 종식시키기 위해 문건을 직접 공개한 것이다.

    문건 상단에는 '향후 북한 지역에 원전 건설을 추진할 경우 대안에 대한 내부검토 자료이며 정부 공식 입장이 아니다'라고 전제했으나, 아이디어 차원의 검토라고 보기에는 다소 상세하게 북한 원전 건설 추진에 관한 3가지 방안과 각 방안의 장단점을 고찰했다.

    먼저 1안은 북한 함경남도 금호지구에 원전 모델 'APR-1400' 2기를 지어주는 방안이다. 장점으로는 "신한울 3·4 주기기 제작분 활용 가능" "북한 내 송전망 활용 가능" "신속하게 추진 가능" 등을 열거했고, 단점으로는 "사용 후 핵연료에 대한 통제 곤란"이라고 적었다. 

    2안은 DMZ(비무장지대)에 신규 APR-1400 원전 모델을 개량한 'APR+/SMART'를 지어주는 방안이다. 장점은 "APR1400 이후의 수출모델 실증 가능" "평화지역에 핵의 평화적 이용과 원전 수출 지원이라는 상징성 확보 가능" 등이고, 단점은 "신규노형 건설로 장시간, 고비용 소요"였다.

    3안은 문재인정부가 탈원전정책으로 백지화한 경북 울진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마저 마치고 동해안지역을 통해 북한에 전력을 송전하는 방안이다. 장점은 "가장 신속히 추진 가능" "울진지역의 요구 수용 가능" 등이고, 단점은 "북한지역 송전망 구축" "국민적 합의 필요" "북한용 원전을 남한에 건설하고 사용 후 핵연료도 남한에 저장하는 데 따른 반발" 등이라고 적시했다.

    산업부는 "이 문서는 2018년 4·27 제1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향후 남북경협이 활성화될 경우를 대비하여 아이디어 차원에서 검토한 자료"라며 "추가적인 검토나 외부에 공개된 적이 없이 그대로 종결됐다"고 설명했다.

    "원전 불결하고 불안전하다며… 北을 쓰레기통으로 생각하나"

    해당 문건을 살펴본 원자력 전문가들은 특히 1안과 3안에 주목했다. 정부의 탈원전정책으로 건설이 중지된 신한울 3·4호기 활용 방안이 담긴 데 이어 문재인 대통령의 "원전이 안전하지도 않고, 저렴하지도 않으며, 친환경적이지도 않다"는 발언과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이 담겼다는 것이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1안은 건설 중지 상태인 신한울 3·4호기 제작분을 (북한 원전 건설에) 재활용하겠다는 것이고, 3안은 원전 2기로 1년에 2조원어치의 전기를 북한에 쏴주겠다는 것"이라며 "대통령께서는 원자력이 안전하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다고 생각하시면서 원전 수출은 하겠다고 하셨는데, 그게 만약 북한에 갖다 주는 것이라면 북한을 쓰레기통으로 생각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도 통화에서 "1안과 3안은 북한이 정상국가로 돌아온다면 가능한 얘기지만, 북한이 지금 핵무기를 다 없앤다거나 NPT(핵확산금지조약)에 복귀한 것도 아니다"라며 "제일 큰 문제는 정부의 탈원전정책과도 맞지 않는 내용"이라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일선 공무원이 해당 문건을 작성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의심했다. 문건 작성 경위를 비춰 봤을 때 상부의 지시나 윗선 보고가 있었을 확률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정범진 교수는 "문건 내용의 규모가 너무 크다"면서 "문건을 보면 '내부검토용'이라고 쓰여 있는데, 내부검토용 자료에는 그런 말을 안 쓴다. 외부 자문회의나 남을 보여줄 때 정보 유출 방지를 위해 그런 말을 쓴다"고 의심했다.

    정용훈 교수도 "(윗선에서) '북한 원전을 지원하는 아이디어를 만들어봐라' 그러면 이런 아이디어가 가능하겠다"며 "이 문건이 일선 공무원이 만든 문건이겠으나 그 동기는 설명이 안 된다"고 의구심을 내비쳤다. 
  • ▲ 산업부가 공개한 '북한 지역 원전 건설 추진 방안' 문건. ⓒ산업통상자원부
    ▲ 산업부가 공개한 '북한 지역 원전 건설 추진 방안' 문건. ⓒ산업통상자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