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녘동포에 따뜻한 마음" 원문에 없던 '김정은 메시지' 추가… '北 열병식 포착' 기사는 멋대로 삭제
  • ▲ 지난해 10월 10~11일 방송된 KBS1라디오 오후 2시 뉴스 큐시트와 기사 내용. ⓒKBS노동조합 제공
    ▲ 지난해 10월 10~11일 방송된 KBS1라디오 오후 2시 뉴스 큐시트와 기사 내용. ⓒKBS노동조합 제공
    여권에 불리한 내용을 삭제하는 방식 등으로 라디오 뉴스를 편파 진행했다는 의혹을 받은 KBS 김OO 아나운서가 북한에 불리한 내용까지 삭제하고 방송했다는 추가 의혹이 제기돼 파문이 일고 있다.

    KBS노동조합에 따르면 김 아나운서는 지난해 10~11월 △합동참모본부가 '북한 열병식'을 포착했다고 밝힌 속보와 △북한 열병식을 비판한 각종 외신 보도 △오토 웜비어 가족이 발표한 '김정은 정권 규탄 편지' 내용 등을 삭제하거나 빠뜨린 채 읽었다.

    반면 북한의 심야 열병식을 전한 뉴스에서는 "김정은이 사랑하는 남녘 동포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보낸다고 밝혔다"는 '원고에 없던 내용'을 추가해 읽었다.

    "北·여당 비판 뉴스 삭제‥ 편파방송 20여건 추가 확인"


    앞서 여권에 불리한 '주요 사실'을 자의적으로 삭제하거나 수정·방송한 혐의(방송법 위반 등)로 김 아나운서를 고발한 KBS노조는 1일 배포한 'KBS1라디오 편파 왜곡방송 실태조사 결과'에서 "김 아나운서가 지난해 10~12월 큐시트에 배치한 기사를 임의로 삭제·수정하거나 불방한 20여건의 사례를 확인했다"며 김 아나운서의 뉴스 편파 진행이 상습적으로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KBS노조는 "이 기간 김 아나운서는 △청와대 주요 인사에 대한 검찰조사 뉴스 △북한의 무력시위 동향이나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가 담긴 뉴스 △코로나 신규 확진자 급증 뉴스 △해외 한인 교포의 코로나 사망 뉴스 등을 불방하고,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한 문장 △현 정부에 불리하게 해석될 수 있는, 한국의 소비심리지수가 폭락했다는 문장 등을 삭제한 채 방송했다"고 밝혔다.

    KBS노조는 "특히 김 아나운서는 지난해 10월 11일 <(종합)北 첫 심야 열병식…김정은 "전쟁억제력 계속 강화" 재확인>이라는 기사를 전하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또 사랑하는 남녘 동포들에게도 따뜻한 마음을 정히 보낸다고 밝히고, 하루 빨리 이 보건위기가 극복되고 북과 남이 다시 손을 마주잡는 날이 찾아오길 기원한다고 말했습니다'라는 내용을 추가했다"며 이는 당초 기사에는 있지도 않았던 문장이라고 강조했다.

    "'검찰, 강기정 GPS기록 확보' 기사‥ 이유 없이 삭제"


    KBS노조에 따르면 편집기자가 뉴스 큐시트에 배치한 기사 중 김 아나운서가 자의적으로 삭제해 불방한 기사는 총 6건이었다.

    김 아나운서는 지난해 10월 10일, 당초 큐시트에서 '톱기사'로 배치됐던 <(속보)합참 "北 오늘 새벽 열병식 실시정황 포착">을 통째로 날린 뒤 '2번 뉴스'였던 <北매체, 오전까지 열병식 개최·보도 없어>를 톱기사로 읽었다.

    김 아나운서는 이튿날인 11일에는 큐시트에 있던 <美 당국자 "北, 핵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우선시에 실망">과 <외신, 북 신형 ICBM 공개 열병식 신속 보도…"거대한 ICBM 과시">를 임의로 삭제했다.

    10월 18일에는 당초 5번째로 배치돼 있던 <검찰, 강기정 전 수석 GPS 기록 확보…라임 김봉현 상대로 조사>라는 검찰발 기사를 삭제했다.

    당시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5천만원을 건넸다'는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법정 증언으로, 강 전 수석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뜨거워진 상태였다. 그러나 김 아나운서는 아무런 설명 없이 '검찰이 강 전 수석의 GPS 기록을 김 전 회장에게 제시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방송하지 않았다.

    "김정은 정권의 거짓말·폭력의 희생자"‥ 웜비어 부친 편지 생략


    이외에도 김 아나운서는 '러시아 모스크바 한인 1명이 코로나로 사망했다'는 기사와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450명으로 집계됐다'는 뉴스도 임의로 삭제하고 방송하지 않았다.

    김 아나운서는 북한 관광 중 고문을 받고 사망한 오토 웜비어 가족의 편지 내용도 생략했다.

    지난해 10월 24일 큐시트에 올라온 <(대체) 北 서해상 피격 공무원 추모식 열려…웜비어 가족 편지 공개>라는 기사 말미에는 "이 자리에서는 북한에서 억류됐다 사망한 미국 오토 웜비어의 가족의 편지도 공개됐습니다. 웜비어의 아버지는 이씨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는 김정은 정권의 거짓말과 폭력의 희생자며, 그 거악과 싸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고 밝혔습니다"라는 문장이 있었다.

    그러나 김 아나운서는 북한 김정은 정권을 비난한 웜비어 아버지의 발언 내용을 통째로 삭제했다.

    KBS노조 "원문에 없던 '김정은 발언' 추가‥ 배후 세력 의심"


    허성권 KBS노조위원장은 1일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KBS1라디오에서 방송된 주말 오후 2시 뉴스를 조사한 결과, 김 아나운서가 △기사를 임의로 삭제해 불방한 건이 6건 △기사 중 일부를 삭제해 불방한 건이 10여건 △원문 기사에 없는 내용을 자의적으로 추가 방송한 건이 1건으로 집계됐고 △그밖에 큐시트를 임의 변경한 사례가 다수 적발됐다"고 밝혔다.

    허 위원장은 "적발한 기사 횟수와 기간 등을 감안할 때 이 같은 행위가 상습적으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제기된다"며 "특히 원본 기사에 없던 '북과 남이 손을 마주잡는 날이 찾아오길 기원한다'는 김정은의 발언을 추가한 것이 과연 김 아나운서 개인의 판단이었겠느냐는 합리적 의심도 해본다"고 주장했다.

    앞서 KBS노조와 시민단체 '공영방송을 사랑하는 전문가연대(공전연)'는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 속보를 전하면서 '이 사건은 명백한 봐주기 수사'라는 국민의힘 김웅 의원의 발언을 생략하는 등, 여권에 불리한 '주요 사실'을 자의적으로 삭제·방송한 김 아나운서를 방송법 위반 및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KBS "시간 관계상 문장 생략할 수도… '여당 편들기' 아냐"


    한편, 김 아나운서가 여당 등에 불리한 내용을 삭제하고 방송했다는 KBS노조의 지적에 대해 KBS는 "담당 아나운서는 당일 코로나 확진자가 늘어나는 엄중한 상황에서 편집된 순서대로 뉴스의 문장 전부를 낭독할 경우, 큐시트의 예상방송 시간(6분 42초)이 실제 방송시간 5분을 초과해 코로나 관련 뉴스가 방송되지 못한다는 자체 판단을 하고, 앞서 배치된 뉴스의 문장 일부를 수정 또는 생략했다고 밝혔다"고 해명했다.

    KBS는 "이처럼 라디오 뉴스는 마지막 날씨 기사까지 방송될 수 있도록, 편집자와 협의 없이 아나운서가 방송 중 문장 일부를 생략하는 경우가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이러한 사실관계 파악도 없이 KBS의 신뢰도를 훼손하려는 내·외의 시도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KBS는 이번 사안과 관련해 심의평정위원회 여는 등 사내 절차와 사규에 따라 김 아나운서의 규정 준수 여부를 검토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