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당 39호실 실장 전일춘의 사위… 쿠웨이트서 부인·자녀 데리고 2019년 9월 입국
  • ▲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대사 대리(붉은 점선 안 인물).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대사 대리(붉은 점선 안 인물).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가 2019년 한국으로 귀순했다고 매일경제가 보도했다. 주인공은 전일춘 전 노동당 39호실 실장의 사위라고 신문은 전했다. 39호실은 김정은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부서다.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대사대리, 2019년 9월 가족 동반 귀순

    신문은 “류현우(한국에서 쓰는 가명)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가 가족과 함께 국내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그는 현지 북한대사관에서 참사관으로 근무하던 중 2017년 9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결의 2371호에 따라 서창식 대사가 추방되면서 그 자리를 대리하게 됐고, 이후 2019년 9월 부인과 자녀를 데리고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류현우가 “부모로서 자식에게 더 좋은 미래를 선물해주고 싶었다”고 탈북 이유를 밝혔다고 전했다. 

    신문에 따르면, 류현우 전 북한 대사대리는 평양외국어대 아랍어과를 졸업한 뒤 북한 외무성에서 근무를 시작했고, 시리아 등에서 경력을 쌓았다. 류현우의 부인 전모 씨는 김일성종합대에서 경제학 석사까지 마치고 평양의 한 연구기관에서 근무했던 경력이 있다. 

    특히 전씨의 부친은 노동당 39호실장을 지낸 전일춘이라고 신문은 강조했다.

    류 전 대사대리 장인은 김씨 일가 ‘금고지기’ 전일춘 전 39호실장

    1941년생인 전일춘은 김정일과 평양 남산고등중학교 동창으로, 김씨 일가의 ‘금고지기’로 불렸다. 1998년 2월 39호실 부실장을 맡았고, 2010년 2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과 39호실장을 맡았다. 같은 해 국가개발은행 이사장도 겸임했다. 전일춘은 2017년 신룡만이 후임에 임명될 때까지 그는 7년 동안 39호실장을 맡았다. 

    노동당 39호실은 1970년대 김정일이 권력을 승계받으면서 만든 조직으로 알려졌다. 39호실은 마약 밀매, 위조지폐 유통, 위조담배 수출 등 불법 외화벌이로 축적한 비자금을 세계 각국에 숨겨놓고 관리한다. 2005년 9월 미국 제재로 문을 닫았던 마카오 은행 ‘방코델타아시아’의 북한 계좌 또한 39호실이 관리하던 것이다.

    현재 39호실은 100개가 넘는 기업소를 차려 외화벌이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등의 북한식당이나 지난해 8월 통일부가 ‘물물교환’ 대상 파트너로 삼으려다 문제가 됐던 ‘개성고려인삼무역회사’도 39호실 산하다. 

    39호실 산하 기업소 사장을 지낸 리정호 씨는 외신과 인터뷰에서 “북한의 불법환적이 심각한 수준”이라며 39호실이 문제라고 누차 경고했다. 미국 재무부도 “불법 환적을 통해 석유제품을 사들인 주체는 39호실 산하 태성은행”이라며 이를 확인한 바 있다. 즉, 39호실은 김정은정권의 가장 내밀한 일을 아는 조직이다. 

    김성민 “고위급 귀순 워낙 많아… 조용히 있으면 북한 가족들 무사할 듯”

    류 전 대사가 쿠웨이트에서 대사대리를 맡은 데는 이런 39호실 실장을 했던 장인의 배경이 영향을 끼치지 않았겠느냐는 지적도 있다. 예산과 외교문제로 많은 외교공관을 유지하지 못하는 북한으로서는 쿠웨이트대사관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카타르·바레인·오만까지 관장하는 핵심 공관이다. 이런 곳의 대사대리가 가족을 데리고 귀순한 것이라고 신문은 설명했다.

    김정일에 이어 김정은 시대까지 권력 핵심부에 있던 이의 가족이 귀순했는데 북한에 남은 가족은 무사할까.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지난 몇 년 사이 북한 고위급의 탈북과 귀순이 매우 많았다”며 “북한 당국이 귀순한 고위급의 가족을 모두 처벌하지는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북한 고위급 인사 가운데 외화벌이 사업을 한다며 해외에 갔다가 한국으로 귀순한 사례가 상당히 많다”며 “김정은은 귀순한 사람들이 대외적 활동을 얼마나 하는지를 본 뒤 문제 삼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그러면서 2015년 5월 공개처형된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을 예로 들었다. 현영철의 조카도 오래 전 가족과 함께 귀순했다. 하지만 그가 국내에서 대외활동을 하지 않고 지내자 현영철은 인사상 별다른 불이익을 받지 않았고, 나중에 인민군 총정치국장과 인민무력부장까지 진급했다고 김 대표는 지적했다. 

    “현영철 조카와 비슷한 사례가 적지 않은 편”이라고 김 대표는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