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일제잔재법률용어청산의원모임' 주장… 학계 "민주당 당명부터 일본식인데" 어리둥절
  • ▲ 정청래 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일제잔재법률용어청산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 19인이 17일 '일제잔재법률용어청산 법률안'을 발의했다.ⓒ연합뉴스
    ▲ 정청래 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일제잔재법률용어청산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 19인이 17일 '일제잔재법률용어청산 법률안'을 발의했다.ⓒ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일제시대의 잔재를 청산한다는 명분으로 법률용어 개정에 나섰다. 국민이 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은 일본식 법률용어 사용의 부작용이라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민주당의 '민주'가 일본식 용어"라며 "당명부터 바꾸라"는 지적이 나왔다. 법조계에서도 "일본식 아니면 중국식인데 무슨 차이냐"는 반응이다.

    민주당 "일제 잔재 때문에 국민이 법 이해 못해"

    민주당의 '일제잔재법률용어청산을위한국회의원모임'(일제청산모임) 19인은 17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우리의 법률과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는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겠다"며 '일제잔재법률용어청산 법률안'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이 모임은 이번 국정감사를 전후해 '일제 잔재'로 인한 문제의식을 느껴 후속 조치로 만들어졌다는 전언이다.

    모임은 "외래어를 넘어 외계어가 된 일본식 법률용어로 인해 국민 생활 속에서 법이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며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쉽게 받을 수 있는 소수의 힘 있는 자들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안락함을 영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교묘하게 파고들어 법의 공정성마저 훼손하고 있다"고 강조한 이들 모임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규정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모임은 50개의 정비 대상 용어와 121개의 일제 용어 포함 법안을 선정해 용어를 개정하겠다며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의 '민주' 일본식 용어

    그러나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근대어는 대부분 일본의 번역을 통해 들어왔다는 것이 학계에서 통하는 정설이다. 이 때문에 '일제 잔재 청산'의 논리라면 99%에 가까운 우리의 용어를 모두 바꿔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또 용어를 정비하기 위해서는 근대 문명과 개념에 관한 철저한 해부가 필요하다는 것이 학계의 지적이다.

    민주당의 당명에 포함된 '민주'라는 말도 일본식 용어다. 조선시대 문헌에서 몇 번 등장하는 '민주'라는 말은 'democracy'가 아닌 백성(民)의 주(主)인인 왕을 의미하는 것이고, democracy라는 관념으로서의 '민주'는 근대용어인 데다 일본이 번역한 것이다.

    이 때문에 학계에선 "일제 잔재 청산 논리라면 일본의 번역어로 가득 찬 헌법 및 더불어'민주'당이라는 당명부터 고쳐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의 '민주공화국'도 일본식 한자어의 대표사례다.

    김행범 부산대 정치학 교수는 통화에서 이같이 지적하며 "개호는 'care'를 일본인이 음으로 표기한 것이고, 이를 '돌봄'으로 바꾸는 것은 바람직하며 개정의 좋은 요소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다만 '일제 잔재 청산' 논리라면 왜 굳이 몇 개 용어와 법률안에만 개정을 적용하려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일본식 아니면 중국식인데 무슨 차이?

    국립국어원 심의위원을 지낸 최대현 전 MBC 아나운서는 통화에서 "쉬운 말로 표현이 가능한데 각종 공문서에 쓸데없이 어려운 한자어가 남발되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쉬운 이해'를 돕는 취지라면 방향 자체는 나쁘지 않다"면서, 다만 "'일본식' 한자이기 때문에 다른 한자로 바꾼다는 행위는 자칫 모순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임무영 변호사도 "국회의원들이 실적 쌓기용으로 걸핏하면 들고 나오는 일인데, 그렇게 따지자면 일본식 아니면 중국식이고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임 변호사는 "법률용어는 엄정성이 생명이기 때문에 한글만 고집하다가는 부정확하거나 뜻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며 "말이 길어져서 용어의 경제성 및 효율성도 떨어진다"고도 말했다.

    민주당 일제청산모임이 개정안에서 용어를 바꾼 주요 어휘들은 △개호(介護)→간병 △감안→고려 △계출→신고(또는 제출) △부잔교(浮棧橋)→부두연결다리 △지불→지급 △절취→자름 △명기→명확하게 적다(또는 명확하게 기록하다) △고아원→보육원 △납득→수긍(또는 받아들이다) △추월→앞지르기 등이다.

    또 민주당이 선정한 일제용어 포함 법안 정비목록은 △5·18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 △경찰대학 설치법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 △노근리 사건 희생자 심사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삼청교육 피해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률 △세종특별자치시 설치 등에 관한 특별법 등이다.

    이 같은 일본식 법률용어 청산 개정안 공동발의에는 민주당의 한준호·신현영·이수진·임오경·이성만·주철현·김민철·임호선·홍성국·김병주·정청래·이용우·최혜영·장경태·장철민·김남국·이규민·이원택·오영환 의원 등이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