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측 '재판부 기피신청' 기각 후 283일 만에 재판 속행… 삼성준법감시위 활동, 양형에 영향 미칠 듯
  • ▲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별세한 2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이 도착했다. ⓒ이기륭 기자
    ▲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별세한 2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이 도착했다. ⓒ이기륭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이 26일 재개됐다. 특검의 재판부 기피신청으로 재판이 중단된 지 283일 만이다. 이 부회장은 부친 고(故) 이건희 회장의 별세로 이날 재판에는 불출석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는 이날 오후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등 혐의 사건 파기환송심의 공판준비기일을 진행했다. 

    지난 1월17일 공판기일 이후 박영수특검이 "파기환송심이 피고인들에게 편향적 재판을 한다"며 재판부 기피신청을 냈지만, 대법원이 이를 기각하면서 약 9개월 만에 열린 재판이다.

    이날 재판에 이 부회장은 불출석했다. 이 부회장 측 변호인단은 지난 25일 이 부회장의 부친 이건희 회장의 별세로 재판에 불출석한다는 사유서를 냈다. 공판준비기일에는 피고인의 출석 의무도 없다.

    재판부, 1년 전 이 부회장에 부친 '신경영 선언' 언급

    이 회장의 별세가 이 부회장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관심사다. 법조계에서는 이 회장이 재판 당사자가 아닌 만큼 이 부회장 재판에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 부회장이 '사법 리스크' 등으로 인한 경영환경 악화로 부침을 겪는 와중에 부친상을 당해 동정론이 일 수는 있겠지만, 재판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 대기업 법무팀 소속 변호사는 "이건희 회장의 투병은 오래됐고,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재판도 그런 와중에 파기환송심까지 왔다"며 "이미 사실상 총수로서 역할하던 중 상당시간 재판을 받아온 것"이라며 "실질적 총수가 됐다고 해서 재판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만 법조계는 1년 전 법정에서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이 부회장을 향해 이 회장에 관해 언급했던 점에 주목했다. 

    당시 정준영(53)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이 부회장에게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51세 이건희 삼성그룹 총수는 낡고 썩은 관행을 모두 버리자는 '삼성 신경영'을 선언하고 위기를 과감한 혁신으로 극복했다"며 "2019년 그때 이건희 총수와 똑같이 만 51세가 된 이재용 삼성그룹 총수의 선언은 무엇이고 또 무엇이어야 하나"라고 물었다.

    "세습경영 포기, 신경영 선언 이상의 의미"

    정 판사는 이어 "국정농단 사건은 삼성그룹 총수와 최고위직 임원들이 계획하고 가담한 횡령 및 뇌물범죄"라면서도, 삼성이 다시는 이 같은 범법행위에 가담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증명'을 요구했다. ▲효과적인 기업 내부 준법감시제도 설치 ▲재벌체제 폐해 시정 및 혁신경제 기여 ▲어떤 결과도 겸허히 받아들이는 자세 등 3가지였다.
  • ▲ 국정농단 특별검사팀의 박영수 검사. ⓒ뉴데일리DB
    ▲ 국정농단 특별검사팀의 박영수 검사. ⓒ뉴데일리DB
    이에 당시 특검 측과 일부 시민단체는 재판부가 사건과 무관한 사안으로 이 부회장의 양형을 고려한다며 반발해 재판부 기피신청의 발단이 됐다.

    이 부회장은 즉각 재판부의 요구사항을 실행에 옮겼다. 김지형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한 삼성준법감시위원회를 출범시켰고,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며 파격적인 경영권 세습 포기 선언도 했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이건희 회장 별세가 재판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지는 않더라도, 재판부가 법정에서 이 부회장에게 이 회장의 '신경영 선언'을 언급한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며 "이 부회장이 즉각 재판부의 요구를 실행에 옮긴 데서 나아가 '세습경영'을 포기했다는 것은 '신경영 선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양형에 유리한 작용을 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재판부, '삼성 준법위 평가' 심리위 취소신청 기각 

    실제로 재판부는 삼성의 준법감시위원회 활동을 평가하기 위한 전문심리위원회를 구성할 방침이다. 법원과 특검, 이 부회장 측이 각각 1명씩 추천해 총 3명으로 전문심리위원을 구성해 운영실태를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삼성의 준법감시위원회 활동을 양형 사유에 반영하겠다는 취지로, 특검 측은 앞서 전문심리위원 구성 자체를 반대하며 위원 추천도 거부한다는 내용의 전문심리위원 지정 및 참여 결정 취소신청을 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날 공판준비기일에서 "재판 진행 및 기피신청 사건의 기각 결정 취지에 비춰 전문심리위원 참여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이를 취소할 상당성이 인정되지 않아 (전문심리위원 참여 결정을) 취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특검 측에 오는 29일까지 중립적 후보를 추천할 것을 요구했다. 
     
    재판부는 다음달 9일 5차 공판기일을 연다. 이후 다음달 16~20일 준법감시위 운영평가를 위한 전문심리위원의 면담조사를 진행하고, 다음달 30일 6차 공판기일에서 전문심리위원의 의견 진술을 듣는다. 이어 12월14일 또는 21일 결심 재판을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