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검증" "사실상 2차 가해" "피해자 인권 무시" 비판… 박원순 고소인 "참 잔인하다" 탄식
  • ▲ 故 박원순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피해여성을 대리하는 김재련 변호사가 지난 7월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성원 기자
    ▲ 故 박원순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피해여성을 대리하는 김재련 변호사가 지난 7월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성원 기자
    MBC가 지난 13일 진행한 취재기자 입사시험에서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고소한 여성을 '피해자'라 불러야 하는지, 아니면 '피해호소인'이라 불러야 하는지 서술하라는 문제를 낸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일고 있다.

    '피해호소인'이라는 표현 속에 성추행 피해 사실을 고소인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치부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점에서 '2차 가해'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여당 대표 등이 고소인을 '피해호소인'으로 부르다 '2차 가해를 조장한다'는 지적을 받고 공식 사과까지 한 사안을 언론사에서 다시 '논쟁거리'로 삼은 건 적절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지배적이다.

    응시생들 "문제 자체가 2차 가해… 인권 무시한 처사"


    직장인 커뮤니티 애플리케이션 '블라인드'와 언론사 취업 준비 카페 '아랑' 등에 따르면 지난 13일 치러진 MBC 공채 취재기자 필기시험 중 논술 논제로 "박원순 전 시장 성추행 문제 제기자를 피해자로 칭해야 하는가, 피해호소자라고 칭해야 하는가(제3의 호칭도 상관없음)"라는 질문이 출제된 것으로 드러났다.

    시험 직후 관련 커뮤니티 게시판을 통해 이 같은 문제점을 지적한 응시생들은 "문제 자체가 2차 가해 아니냐"며 "엄연히 존재하는 피해자의 인권을 무시한 처사"라고 분개했다.

    이어 "정치권에서도 이미 정리가 된 문제를 굳이 공채 시험 논제로 낸 이유가 궁금하다"며 "출제 의도가 불순해보인다"는 비판을 가했다.

    블로그와 카페, 관련 기사 등을 통해 이 사실을 접한 네티즌들도 "피해자라고 쓰면 탈락이냐"며 "MBC가 여전히 진영논리에 갖혀 있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네티즌 "대깨문인지 아닌지 사상 검증… 어용언론답다"


    아이디 'ddul****'는 "MBC 수준봐라 ㅋㅋ 문빠 감별해서 문재인 지지자만 뽑겠다는 건가? 박원순 피해자를 2차 가해하는 문제까지 내면서 저게 뭐하는 짓? 저런 방송국은 없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아이디 'mino****'는 "MBC답네. 저게 문제냐? 대깨문인지 아닌지 사상검증하나? 박원순 피해자를 피해자라하면 불합격이고 피해호소인이라하면 합격인 건가? 이러니 '문재인 어용언론'이라는 소리를 듣지"라고 비난했다.

    또 아이디 'ilma****'는 "저런 것도 입사시험문제라고 출제하다니 진짜 제정신인가? 정권의 충견 MBC, 이것들도 과연 언론인가. 언론을 가장한 적폐어용언론이다"라고 일갈했고, 아이디 'haha****'는 "피해자라고 하면 떨어지겠지. 왜? 대깨문들이 언론장악을 해야 하니까. 대놓고 저렇게까지 하는 걸 보니 독재가 맞긴 맞구나. 이젠 부끄러움도 없네"라고 개탄했다.

    박원순 고소한 전직 비서 "이런 상황‥ 참 잔인하다"


    박 전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전직 비서 A씨는 법률대리인인 김재련 변호사를 통해 "이런 상황이 참 잔인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14일 방송된 KBS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나와 A씨의 심경을 대신 전한 김 변호사는 "일단 굉장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이라고 불렀던 분들이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용어가 정리됐는데, 언론사에서 살아있는 피해자를 다시 도마 위에 올려놓고 이 사람을 뭐라고 부를지 본인들이 결정하는 상황을 만들어버렸다"고 탄식했다.

    김 변호사는 "피해자가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해 법에 고소했고 우리 법에서는 그 단계부터 피해자로 명명하고 보호 규정을 적용하고 있다"면서 "어디에도 없는 '피해호소인'이라는 명칭을 쓰면서 논제로 던지는 것 자체가 매우 유감스럽고 안타깝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MBC노조 "성의식 비뚤어진 사람 뽑겠다는 건가"


    MBC노동조합도 비판조의 성명을 냈다. MBC노조는 14일 배포한 '성추행 피해자라 부르지 못했던 MBC의 논술 문제'라는 제하의 성명에서 "지난 13일 MBC 입사시험에 응시한 많은 이들이 '논제 자체에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우려가 있다'고 불쾌해 했고, '논제가 편향적'이고 '사상검증'이라는 말도 나왔다"고 전했다.

    MBC노조는 "지금까지 MBC의 보도 행태로 미루어 볼때 어떻게 대답하는 사람을 뽑으려는 것인지 대단히 우려스럽다"며 "여권 정치인에게 성추행을 당한 여성은 피해자가 아니라 '피해호소자'라는 비뚤어진 성의식을 가진 사람을 뽑으려는 음모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MBC노조는 "박 전 시장이 목숨을 끊은 당일 그를 고소한 전직 여비서를 '피해자'로 호칭했던 MBC 뉴스데스크는 7월 13일부터 15일 사이에는 피해자 측 기자회견을 보도하면서 단 한 마디도 '피해자'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MBC노조는 "그랬던 MBC 뉴스데스크가 청와대 관계자가 기자들과 만나 '피해자'라고 호칭을 바꾸기 시작한 날부터 다시 피해자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며 "박 전 시장 고소인의 호칭은 청와대에서 결정해줘야한다고 쓰면 합격시키려 하는가"라고 비꼬았다.

    MBC노조는 이번 논술 문제 논란은 일부 MBC 구성원들의 왜곡된 성의식의 발로일 수 있다는 점에서 '사내 성의식'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는 시각도 드러냈다.

    MBC노조는 "그동안 MBC는 외부 조직의 성추행 비리 은폐에 대해서는 추상같이 비판해 왔으나, 지난해 말 회사 고위간부가 여사원에게 불미스러운 행동을 한 사건은 외부에 알리지 않고 사내 문제로 끝내고 말았다"며 "문책의 형평성뿐 아니라 이 같은 나쁜 선례가 잘못된 의식을 만연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MBC노조는 "따라서 박성제 사장과 현 경영진은 이번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누가 무슨 목적으로 이런 문제를 냈는지 밝힐 것을 촉구했다.

    野 "정치적으로 줄 세워 '정권 호위무사' 채용 의도"


    '사상 검증' 논란을 불러일으킨 MBC의 필기시험에 대해 정치권에서도 비판의 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성폭력대책특별위원회는 13일 성명을 통해 "MBC가 낸 논제는 성추행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이자, 응시자를 정치적으로 줄 세워 정권의 호위무사를 채용하겠다는 것"이라며 "오늘 MBC가 출제한 필기시험 논제는 진실을 덮고 정권을 맹목적으로 옹호하는 언론인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선언이자, 스스로 공정한 언론의 역할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 소속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은 같은 날 페이스북을 통해 "MBC는 성범죄 피해자를 피해호소자로 부르는 기자를 뽑고 싶나"라며 "가해자 편을 들고 피해자를 울리는 인식의 뿌리가 궁금하다"고 비판했다.

    박 의원은 "뻔한 의도에 낚일 수도 없고, 안 낚일 수도 없고 응시생들이 당황했을 것"이라며 MBC는 '만나면 좋~은 동지'를 찾나? '땡문뉴스'를 고착화하려는 시도인가?라고 힐난했다.

    이 같은 시험은 수험생에겐 사상 검증이고, 피해자에겐 2차 가해나 다름 없다고 지적한 박 의원은 "'피해호소자'는 성범죄를 물타기하는 불순한  표현이라는 게 이미 드러났고, 그 용어를 쓰던 사람들도 여론의 거센 역풍을 맞고 철회했는데, 인권의 보루가 돼야 할 공영방송이 피해자를 두번 울렸다"며 "MBC는 공영방송인가? 공영호소방송인가?"라고 따져물었다.

    MBC "시사현안 파악 정도 확인 위해 출제‥ 사상검증 아냐"


    한편 MBC 관계자는 미디어스와의 통화에서 해당 문제를 내게 된 배경에 대해 "응시생들이 시사현안을 얼마나 잘 파악하고 있는지, 맥락을 읽는 능력을 보고자 함이었다"며 "조국 논란에 이어 우리 사회에 가장 뜨거운 현안 중 하나였고, 이미 공론화된 문제다. 이를 어떻게 정의하고 자기 입장을 서술하는지 궁금했으며 평소 언어 사용에 대해 얼마나 고민하는지 묻고자 출제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이를 찬반문제로 등치시키는 건 대단히 위험하다"며 "문제 안에 '피해호소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2차 가해라고 명시해뒀다. 기자들은 어느 한쪽에 문제가 있다면 논리적이고 심층적으로 파악해 이를 전달해야지 문제 속으로 들어가면 안 된다. 사건의 맥락을 잡아내고 분석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