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죄 성립하려면 '구체적 해악' 고지 있어야… '권언유착' 의혹의 본질 판단에 관심
  • ▲ 이동재(가운데) 전 채널A 기자. ⓒ뉴데일리 DB
    ▲ 이동재(가운데) 전 채널A 기자. ⓒ뉴데일리 DB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 재판이 본격화한다. 

    재판에서 쟁점은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 대표를 대상으로 한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의 취재행위를 강요로 볼 수 있느냐 여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법원이 최근 강요죄 성립 요건인 협박의 범위를 넓게 보지 않는 만큼, 이 전 기자의 강요미수죄 성립이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 사건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주장하는 '검언(檢言)유착'이 아닌 '권언(權言)유착'이었다는 주장도 제기돼 재판부가 사건의 본질을 어떻게 판단할지 여부도 관심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1단독 박진환 부장판사는 오는 26일 강요미수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 전 기자의 첫 공판기일을 연다. 

    이 전 기자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최측근인 한동훈 검사장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이 전 대표에게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비위 정보를 알려달라고 강요하다 미수에 그친 혐의를 받는다. 

    이 사건을 4개월간 수사해온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판사 정진웅)는 지난 5일 이 전 기자와 후배 기자 백모 씨를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법원, '강요죄' 성립 까다롭게 봐

    이 전 기자의 재판에서는 실제로 이 전 전 기자의 행위를 강요미수죄로 볼 수 있는지 여부가 중점적으로 심리될 것으로 보인다. 형법상 강요죄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받는다. 미수범 역시 처벌되지만 기수범보다는 형이 감경된다. 

    또 강요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의 권리 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자를 처벌한다"고 규정했다. 강요죄가 성립하려면 '폭행' 또는 '협박' 행위가 존재해야 한다는 뜻이다. 

    최근 법원은 강요죄 성립 요건인 협박의 범위를 넓게 보지 않는다. 지난달 24일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재판을 받은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의 조카 장시호 씨는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1년5개월을 선고받았다. 장씨는 지난 2월 그의 강요 혐의를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대법원 판결에 따라 형량이 1개월 감형됐다. 

    대법원은 대기업에 재단 출연금을 요구한 장씨의 행위를 강요죄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강요죄가 성립되기 위한 협박이 없었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협박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발생 가능하다고 생각할 정도의 '구체적인 해악'의 고지가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10일 박근혜 전 대통령도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원심 대비 10년 감소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박 전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 취지에서 국정농단 사건 중 일부 강요 혐의가 무죄가 되면서 형량이 감경됐다. 

    이 전 기자를 강요미수 혐의로 구속하는 것과 관련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과 대검찰청 간 의견이 엇갈린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수사팀은 지난 6월 대검 부장회의에 이 전 기자 구속영장 청구 방침을 보고했다. 당시 대검 부장들은 이 전 기자의 강요미수죄 성립이 어렵다고 봤다. 이 전 기자의 행위에 이 전 대표의 의사결정 자유를 제한할 정도로 겁을 먹게 할 구체적 해악의 고지가 없다는 것이다. 

    대검 부장들은 또 강요죄 성립을 위해서는 해악의 고지로 인해 이 전 대표가 실제로 겁을 먹었다는 점도 입증돼야 한다고 수사팀에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법조인은 "강요죄가 성립하려면 상대방이 구체적 해악의 고지를 듣고 두려움을 느껴 할 일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 입증돼야 한다"면서 "이 전 기자와 한 검사장의 공모가 있었다고 가정하더라도, 지난 1월 인사로 부산으로 좌천된 상태였던 한 검사장이 신라젠 수사에 영향을 끼칠 만한 위치에 있었다고 하기도 힘들기 때문에 이 전 기자의 행위에 구체적 해악의 고지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검언유착'인가 '권언유착'인가

    이 전 기자의 재판에서는 재판부가 이 사건의 본질을 어떻게 파악하느냐 여부도 관심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당초 서울중앙지검 수사팀과 여권에서는 이 사건을 두고 이 전 기자와 한 검사장이 공모해 이 전 대표를 대상으로 강요 범행을 저지른 '검언유착'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수사팀은 이 전 기자를 기소하면서 공소장에 한 검사장과 공모관계를 적시하지 않았다. 이 전 기자의 기소일까지 두 사람 사이의 공모관계를 밝혀내지 못했다는 의미다. 

    앞서 공개된 '이동재-한동훈 대화 녹취록'에서도 두 사람의 공모 정황이 드러나지 않으면서 여권이 주장해온 검언유착이라는 프레임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이다. 

    한 검사장 측은 "채널A 기자의 협박성 취재 의혹을 MBC에 제보한 지모 씨가 친정부 인사들과 함께 자신에게 함정을 팠다"고 주장한다. 사건의 본질이 검언유착이 아닌 권언유착이라는 취지다. 

    지난 3월31일 MBC의 검언유착 의혹 보도 직전 정부 고위직으로부터 "한동훈 검사장을 내쫓을 보도가 곧 나간다"는 취지의 전화를 받았다는 권경애 법무법인 해미르 변호사의 폭로로 이 같은 주장은 더욱 힘을 받는다. 

    한편 권언유착 수사는 서울남부지검에 배당됐으나 아직 수사 착수조차 되지 않은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