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디아 새들로 前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 '포린어페어스' 기고①"탈냉전 이후 자유화 낙관이 美 국익에 반해… 국제기구 의존도 끝내야"
  • ▲ 나디아 섀들로 박사. 2018년 1월부터 4월까지 前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으로 재임하며 트럼프 행정부 세계전략 수립에 참여했다. 현재는 허드슨 연구소 선임연구위원(Senior Fellow)ⓒ연구소 홈페이지 캡처
    ▲ 나디아 섀들로 박사. 2018년 1월부터 4월까지 前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으로 재임하며 트럼프 행정부 세계전략 수립에 참여했다. 현재는 허드슨 연구소 선임연구위원(Senior Fellow)ⓒ연구소 홈페이지 캡처
    "냉전이 끝난 후 최근까지 미국의 지도자들은 세계질서와 관련, 여러 가지 착각에 빠져 있었다. 중대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들은 보고 싶은 것만 봤고, 실상에는 눈을 감았다. 외교가 출신이 아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착각에 빠져 허덕이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혼란을 일으키는 인물이고, 그의 정책은 비정통적 관점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질서를 바로잡으려 하고, 이 과제는 오랫동안 지체된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은 독설로 가득한 당파적 논쟁에 휩싸여 오해를 낳기도 하지만, 미국의 국익과 가치 그리고 자유세계에 우호적인 세계질서를 유지하는 데 이바지할 것이다."

    나디아 새들로 박사는 미국 국제관계 평론지 '포린어페어스' 9·10월호에 이렇게 시작하는 글을 기고했다. 제목은 '미국의 착각은 끝났다: 트럼프와 지금의 세계'(The End of American Illusion: Trump and the World as it is)로, 미국의 기존 세계전략 비판과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변화 내용을 담았다. 

    새들로 박사는 2018년 1월부터 4월까지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담당 국가안보부보좌관을 지내면서 미국의 신국가안보전략 수립에 깊숙이 관여한 인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그의 기고는 트럼프 행정부가 어떤 세계를 지향하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중요한 단초를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한마디로, 냉전 종식에 따른 자유화에 따른 낙관주의가 중국의 성장을 가져왔고, 그 결과 미국의 국익과 가치에 위배되는 국제질서가 조성되었으며, 트럼프 행정부가 그것을 바로잡으려 한다는 것이다.

    "세계화와 경제적 상호 의존, 불평등 조장하고 취약성 노출"

    기고에 따르면, 소비에트연방 붕괴와 함께 냉전이 끝나자 미국에서는 낙관적 예상이 팽배했다. 하지만 정치적 자유화 확산과 초국가기구의 성장은 국가 간 경쟁관계를 누그러뜨리지 못했다. 세계화와 경제적 상호 의존은 그리 순수한 것이 못 됐고, 오히려 불평등과 취약성을 노출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생산성 향상을 가져왔지만, 미군의 우위를 잠식하고 민주사회를 향한 도전으로도 나타났다.

    세계는 탈냉전 시대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에서 이미 벗어났다. 새로운 시대를 적절하게 순항하기 위해 미국은 낡은 환상을 버려야 하고, 자유주의적 국제주의 신화에서 벗어나야 하며, 세계질서의 본질을 바라보는 관점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것이 새들로 박사의 진단이다.

    "자유주의적 융합 향한 환상 그만 접어야"

    새들로 박사는 기고에서 '자유주의적 융합'(liberal convergence)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는데, 이는 탈냉전 후 전 세계가 국내·국제적 차원에서 서구식 자유주의 정치·경제체제로 수렴해온 과정 또는 그와 같은 지향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새들로 박사가 지적한 '미국의 낡은 환상'은 첫째, 냉전이 끝남에 따라 민주주의적 이상을 수용하는 나라가 많아지면서 안정적 국제정치질서가 세워질 것이라는 착각이다. 자유주의적 융합을 지나치게 낙관했다는 말이다. 

    탈냉전의 주역인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재임 1989.1~1993.1) 대통령이 주창한 '신세계질서'(New World Order)는 자유주의적 가치, 민주적 지배, 자유시장을 기반으로 '전 세계에 의한 평화'(Pax Universalis)를 이룩하자는 것이었다. 

    1996년 빌 클린턴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은 '포용과 민주주의의 확장'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정치적 안정, 분쟁의 평화적 해결, 전 세계 시민들의 위엄과 희망의 증진"을 목표로 내세웠는데, 모두 자유주의적 융합이 순순히 이뤄질 것이라는 착각에 따른 것이었다.

    "중국, 경제적 자유→ 정치적 자유로 이어질 것이라는 착각"

    미국의 이 같은 '자유주의적 융합'을 향한 환상은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도록 지원하는 계기가 됐다. 클린턴 대통령은 당시 "인권과 정치적 자유의 향상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중국의 WTO 가입을 환영했다. 

    중국이 자유무역체제에 편입되면 다른 국가들은 값싼 중국상품과 거대한 중국시장에 접근하게 될 뿐 아니라, 중국의 정치적 자유화도 함께 진행될 것이라는 환상이었다. 

    새들로 박사는 이 대목에서 "중국은 서구와 융합할 생각이 없었다. 중국공산당은 서구의 규칙에 따라 행동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단언한다. 

    중국공산당은 시장 개방 대신 통제를 택했고, 환율을 조작했으며, 외국기업을 대상으로 규제장벽을 높였다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의 의도를 의심하면서도 규칙 기반의 국제체제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중국과 협력해야 하며, 중국의 경제적 자유화가 궁극적으로 정치적 자유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 같은 대중국 노선은 조지 부시(아들 부시) 행정부와 오바마 행정부에 이르기까지 계속됐다. 그동안 중국은 경제적 상호 의존을 통해 경제력과 군사력을 증강했고, 결국 공산당의 권력만 커졌다.
  • ▲ [AP/뉴시스] 지난달 6일 남중국해 지역에 미국의 항공모함인 니미츠호와 로널드 레이건호가 급파된 모습.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해상자원의 권리를 주장하는 건
    ▲ [AP/뉴시스] 지난달 6일 남중국해 지역에 미국의 항공모함인 니미츠호와 로널드 레이건호가 급파된 모습.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해상자원의 권리를 주장하는 건 "완전히 불법이다"고 지난달 13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비판했다. ⓒ뉴시스
    "세계화로 미국 제조업 일자리 500만 개 증발"

    자유주의적 융합의 각론 중 하나가 바로 세계화다. 세계화를 지지하던 사람들은 크게 네 가지 주장을 내세웠다. ▲소비자는 상품가격이 낮아져 이득이다 ▲제조업 일자리의 손실은 더 질 좋은 서비스업 일자리로 대체할 수 있다 ▲ 외국인 직접투자는 모든 분야에서 이뤄질 것이며, 기업들은 세계 어디에 있든 전보다 효율적인 혁신을 이룩할 수 있다 ▲ WTO 같은 국제기구는 더 자유화하고 더 융합된 세계를 관리하는 데 유용하다는 등의 논리였다. 

    새들로 박사는 "'세계화'라는 파도를 모든 배가 똑같이 탄 것은 아니다. 어떤 배는 위로 치솟았고, 어떤 배는 정체됐으며, 어떤 배는 가라앉았다"는 비유적 표현을 통해 중국 중심의 세계화와 자유주의적 융합이라는 환상의 한계를 지적했다. 새들로 박사는 "결국 승자와 패자가 있었을 따름"이라며 그 근거로 "미국의 경우 2000년부터 2016년까지 제조업에서 약 5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는 것을 들었다.

    "초국가적 난제는 국제기구에서 해결? 유엔의 무능을 보라"

    미국의 두 번째 착각은 '국제기구에 의존해 미국을 향한 도전을 해결할 수 있으며, 미국이 지도력을 발휘해 '글로벌 거버넌스'를 출현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새들로 박사는 이 같은 착각이 "많은 나라들이 자유주의적 융합을 따랐던 만큼, 핵확산·테러리즘·기후변화 등 초국가적 과제가 부상하면서 국가 간 경쟁을 약화할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그와 같은 초국가적 과제는 국제기구에서 해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게 전통적 관념이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새들로 박사는 세계보건기구(WHO)를 대표적 국제기구 실패 사례로 들었다. 기고에 따르면, WHO는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1948년 설립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식품 안전부터 휴대전화 사용 문제, 그리고 대기 질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서 경고를 발송하는 기관이 됐다. 

    그러다 보니 현재 진행 중인 대규모 감염병인 우한코로나 확산에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됐다. 우한코로나 확산 초기, 전 세계 국가들이 의료장비 확보에 열을 올리면서 WHO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WHO가 노골적으로 중국을 비호하고 나선 것에서 보듯, 중국은 WHO의 임무를 지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국제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WHO를 끌어들였다. 

    새들로 박사는 유엔의 전반적인 운영 행태가 WHO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2016년 2월 사임한 앤서니 밴버리 전 유엔 사무차장보는 30년간 유엔에서 일하면서 본 유엔의 폐해를 고발하는 기고를 뉴욕타임스에 실은 바 있다. 밴버리 전 유엔 사무차장보는 당시 기고에서 "유엔의 관료조직이 너무 복잡해 성과를 낼 수 없으며, '수많은 세금을 빨아들여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하는 블랙홀'과 같다"고 혹평했다. 

    새들로 박사는 "유엔의 이 같은 행태는 냉소주의를 낳았고,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내부에서 파괴했다"고 진단했다. 

    <②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