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파주 등 1억~100억 투입, '저온창고사업' 추진… 4월 기준 저온창고 화재 5건, 피해액 약 15억원
  • ▲ 지난 4월 29일 발생한 이천 물류 창고 화재 모습. ⓒ뉴시스
    ▲ 지난 4월 29일 발생한 이천 물류 창고 화재 모습. ⓒ뉴시스
    충청북도와 경기도 파주시 등 일부 지자체가 '우레탄폼'이 포함된 '저온창고'를 농가에 지원하는 사업을 벌이는 것으로 확인됐다. 

    우레탄폼은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 화재 참사의 원인으로 지목된 화학물질이다. 당시 용접 작업 도중 튄 불똥이 우레탄폼에 옮겨 붙으면서 화재가 빠르게 번져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정부·지자체의 '탁상행정'이 화재사고 위험을 키운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19일 본지 취재 결과, 전국 지자체 중 '저온창고 지원사업'을 시행하는 곳은 광역단체 1곳과 기초단체 4곳 등 모두 5곳이다. 광역단체로는 충청북도가, 기초단체로는 경기도 파주시, 충남 태안군, 강원도 평창군, 전남 여수시 등이 농가소득 증대 등을 위해 이 사업을 추진 중이다. 저온창고는 농산물이나 생선 등을 운반하기 전 산지에서 미리 냉장해 신선도를 유지하게 만들어주는 일종의 냉장고다.

    충북·파주·평창·여수 등 농가에 저온창고 지원

    충청북도는 국비 37억원을 포함, 총 사업비 107억원을 들여 '농산물 산지유통센터 지원사업'을 시행한다. 이 사업은 산지 농산물의 규격화·상품화에 필요한 집하·선별·포장·저장·출하 등 복합기능을 갖춘 유통시설을 건립하거나 보완하는 사업이다. 

    도는 이 사업을 통해 남제천농협과 영동농협 2곳에 저온창고를 새로 짓거나 기존의 저온창고를 보완할 방침이다. 현재 시공업체를 선정 중이며, 업체 선정을 마치는 대로 착공할 계획이다.

    경기도 파주시는 올해 사업비 1억2000만원을 투입해 35농가에 소규모 저온창고 시설을 지원했다. 지난해부터 '저온창고 지원사업'을 시작한 파주시는 오는 2022년까지 총 사업비 12억9000만원을 투입해 140농가에 저온창고를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강원도 평창군은 63농가를 선정해 66㎡(약 20평) 규모의 저온창고를 지원한다. 총 사업비는 9억7500만원이며 보조금 50%와 자부담 50% 방식이다. 이달 중 보급 완료를 목표로 한다. 전남 여수시 역시 총 1억6000만원의 사업비를 들여 9.9㎡(약 3평) 규모의 소형 저온창고 30동을 지원하기로 했다.

    문제는 최소 1억원대에서 최대 100억원대의 세금을 들여 추진하는 지자체의 '저온창고 지원사업'이 대형 화재의 위험을 안고 있다는 점이다. 저온창고에 단열재로 들어가는 '우레탄폼' 때문이다. 

    우레탄폼은 단열 성능이 뛰어나고 값이 저렴해 대부분의 저온창고에 사용된다. 하지만 화재에 취약하고 불이 붙으면 일산화탄소(CO)·시안화수소(HCN) 등 각종 유독가스를 내뿜는다는 단점이 있다.

    세금 들인 저온창고, 화재 위험 커… 비전문 업체, 설비하기도

    실제로 지난 4월29일 발생한 이천 물류창고 화재 원인도 우레탄폼이었다. 경찰은 '이천 화재 사건'과 관련해 "용접작업 중 발생한 불똥이 우레탄폼에 튀면서 최초로 화재가 발생했고, 유독가스가 많아 인명피해가 컸다"고 밝혔다.

    올 들어 저온창고 화재도 이어졌다. 소방청 등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저온창고 화재는 총 5건이 발생했고, 누적 피해액은 14억7440만원가량으로 집계됐다.

    게다가 이들 지자체의 저온창고 지원사업에 참여한 업체 중에는 보일러업체나 농기계업체도 있다. 저온창고 설비 관련, 안전성이나 전문성이 떨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저온창고 생산업체 대표는 "저온냉장고가 농기계로 분류되면서 농기계를 전문으로 생산하던 업체들이 시장을 점유하는 일이 일어났다"며 "자연스럽게 전문성이 떨어지고 최악의 경우에는 일반 창고에나 쓰는 샌드위치 패널로 저온창고를 만드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어 "대부분의 업체가 가연성이 높은 우레탄폼으로 창고를 만든다"며 "가격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는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 '안전불감증' 지적에… 파주시 "화재 대비는 개인 몫"

    전문가들은 지자체의 '안전불감증'과 '탁상행정'이 사고 위험을 키운다고 비판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 교수는 "물건을 가만히 쌓아만 두는 물류창고보다 24시간 냉장기능이 돌아가 전력 소모량이 많은 저온창고가 화재 위험이 훨씬 높다"며 "이곳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자체적으로 불을 끌 방법이 없고, 소방차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 교수는 또 "지금 건축 관계자들이 제출하는 자료를 보면 자기들은 전부 난연성 재료를 쓴다고 하는데, 사실은 공사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난연성이 없는 일반 우레탄폼을 채워 넣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난연 우레탄폼을 쓰라는 규정도 없기 때문에 대부분 불이 붙기 쉬운 일반 우레탄폼을 쓴다고 보면 된다"고 우려했다.

    이와 관련, 충북도 관계자는 "최근 이슈가 된 이천의 물류창고와 산지유통센터에 들어가는 저온창고는 개념이 다른 창고"라면서 "안전한 설비 등이 진행되고 화재 대비도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저온창고의 자재와 설비 명세 등을 묻는 질문에 "자세한 것은 사업 대상인 제천시에 물어보라"고 답을 피했다. 그러나 제천시 관계자는 같은 질문에 "아직 시행업체가 정해지지 않았다"며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고만 답했다.

    파주시 관계자는 "화재 대비는 농가에서 자체적으로 하라고 말했다"며 "우리는 지원해주는 것일 뿐 화재 대비는 개인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