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해범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장 '중국은 북한을 어떻게 다루나' 출간… 한·중 외교 비책 제시
  •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명나라 요동 지역 절도사는 "요동은 조선을 의지해 울타리로 삼고 있으니, 이는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것과 같다"며 파병의 이유를 설명했다.

    6.25전쟁 초기에도 중국은 이 '순망치한(脣亡齒寒)'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1950년 10월 24일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는 인민정치협상회의 제1기 18차 회의에서 "중국과 조선은 순치(脣齒)의 나라다. 입술이 없으면 곧 이가 시리다. 만약 조선이 미 제국주의에 의해 침략당한다면, 우리나라 동북 지방은 안전해질 수 없다"며 참전의 목적과 당위성을 설명했다.

    1920년대 항일투쟁과 1940년대 국공내전(國共內戰) 때도 북한과 함께 피를 흘린 중국은 6.25전쟁 때 총 40만명에 달하는 전투력 손실(전사자는 약 14만3600명)을 감수하면서까지 사회주의 형제국인 북한을 지켜줬다. 이런 역사적 배경에서 양국은 서로를 '피로 맺어진(鮮血凝成的) 동맹'이란 뜻의 '혈맹'이라 부른다.

    '순망치한'은 북중 관계의 상징적 비유가 아니라 현실적 위기감에서 나온 말이다. 중국 정부는 지금도 북한과의 관계를 '순망치한'의 틀에서 바라보고 동북아 전략을 짠다.

    중국과 북한 양국은 1961년 한 나라가 무력 침공을 당할 경우 다른 나라가 지체없이 군사적 원조를 제공하도록 하는 '우호협조상호원조조약'을 체결하며 한국과 미국 간에 체결된 '상호방위조약'에 대응하고 있다.

    ◆ 중국과 '순망치한' 관계 원했지만... 뒤통수 맞은 文 정부


    그런데 문재인 정부 들어 한국도 중국과 '순망치한'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듯한 모습이 보인다.

    지난해 말 중국 우한(武漢)에서 발생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올해 초 세계 각국으로 확산될 때, 문재인 정부는 국민의 안전보다 중국과의 관계를 더 중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대한의사협회가 중국인의 입국 금지를 여러 차례 공식 요청하고 많은 국민들이 청와대 홈페이지를 통해 이를 청원했지만, 정부는 이 요구를 외면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전화 통화에서 "중국의 어려움이 바로 우리의 어려움"이라고 말했고, 시진핑 주석은 "같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깊은 우의"를 강조했다. 신임 주한 중국대사는 "중국과 한국은 운명공동체"라고도 했다.

    하지만 그 후 한국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늘어나자 중국은 먼저 한국인의 입국을 막았다.

    한국 정부가 항의하자, 중국은 "외교보다 방역이 중요하다"며 한국의 요청을 묵살했다. 중국인이 한국을 마음대로 드나드는 동안, 한국인은 중국에서 강제 격리되고 집 출입문이 봉쇄당하는 수모까지 겪었다.

    누가 봐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을 성사시키기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는 듯한 모습에 언론과 야당은 "정부의 중국 짝사랑이 도를 넘었다"고 비판했다.

    한국 정부가 이런 식으로 중국에 접근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 중국의 잘잘못에 관계없이 중국을 향해 구애(求愛)하는 외교가 효과적일까?

    베이징 특파원과 논설위원을 지내고 현재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장으로 있는 저자는 이에 대해 단호히 "아니다"라고 말한다.

    ◆ 북중동맹은 '해체'가 아니라 '진화'하는 중

    '중국은 북한을 어떻게 다루나(부제 '북중동맹의 진화와 한국을 위한 제언', 도서출판 기파랑)'는 중국 후진타오-시진핑 정부의 대북한 정책을 집중 분석한 책이다.

    "중국이 북한을 어떻게 다루는지 알면, 중국의 한반도 정책을 읽을 수 있고, 그것을 통해 한국의 대중 외교 전략을 제대로 짤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은 먼저 북한과 중국의 관계가 여러 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양국이 공식적인 동맹조약(1961년)을 체결하기도 전에 여러 차례 전쟁(항일전쟁, 국공내전, 6·25전쟁)을 치르면서 형제와 같은 모습을 보였지만, 그 후 미중 수교와 냉전 해체, 한중 수교 등의 과정에서는 '이혼 직전의 부부'나 '흑(黑)사회 조직의 두목들'과 같은 거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북중관계의 실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가령 2000년대 초 북한이 잇따라 핵실험을 단행했을 때 중국이 이를 강력히 규탄하고 유엔 대북제재까지 참여하자, 국내외 많은 학자들은 "북중 동맹관계가 깨졌다"는 분석을 내놓았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러나 이는 성급한 진단이며, 북중 관계를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이나 거친 언사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경계한다. 자동차의 최종 목적지를 알려면 수시로 변하는 자동차의 방향이 아니라 운전자의 '의도'를 읽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북중 외교의 실체를 파악하려면 그때그때 달라지는 양국의 행동이 아니라 양국 지도부의 전략적 의도를 읽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중국 지도부의 대북 외교의 '본심'을 읽기 위해 중국의 '대북 비핵화 정책'과 '대북 경제협력 정책'이란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한다. 중국 정부의 공식 문건과 발표 자료뿐만 아니라, 중국 지도부의 비공식 발언과 6자회담장에서 보인 태도, 미중 지도자들의 회고록, 황장엽·태영호 같은 고위 탈북자의 증언 등을 종합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결론에 도달한다.

    ◆ 미국은 '사자', 중국은 '늑대', 한국은 '양'

    첫째, 중국은 북한 문제를 미국과의 전략적 대결 구도에서 판단하며, 이에 따라 북한(나아가 한반도 전체)에 대한 영향력 확보를 대북 외교의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이 목표는 중국의 한반도 외교에서 다른 어떤 목표보다 우선한다. 북한이 2차 핵실험을 단행한 2009년 중국의 후진타오 정부는 중앙외사영도소조를 열어, '북한 비핵화'보다 '북한 정권의 안정'을 중시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 결정적 증거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 원칙에 따라, 중국은 미중 관계가 좋을 때는 북한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행동에 동참하지만, 미중 관계가 악화되면 곧바로 대북 압박 강도를 줄이고 북한에 대한 경제 지원을 통해 김씨 정권의 안정에 힘을 쏟는다는 것이다.

    후진타오 정부가 북한 핵문제에 대해 '중재자'에서 '방관자'로, 시진핑 정부가 '심판자'에서 '보호자'로 태도를 바꾼 원인도 여기에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둘째, 2000년대 들어 북한의 잇따른 핵실험으로 국제사회가 대북 경제협력을 줄여나갈 때, 중국은 오히려 중앙과 지방 정부 차원에서 대규모 대북 경협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동북진흥전략(2003~2020년), 루강쥐(路港區) 일체화계획(2005~2020년), 창지투(長吉圖) 프로젝트(2009~2020년)가 그것이다.

    그 결과 2000년 24.7%에 불과했던 북한의 대중국 무역의존도는 2018년 95.6%로 치솟았다. 북한은 이제 중국의 경제 지원 없이는 몇 개월도 버틸 수 없는 허약한 경제 체질이 됐다.

    북한이 외치는 '자력갱생'도 실은 '자력(自力)'이 아니라 중국의 힘(中力)에 의지한 것이다. 중국은 북한의 핵보유로 대북 군사적 영향력은 약화됐으나, 3대 경협 프로젝트를 통해 경제적으로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강력한 지렛대를 확보하게 됐다고 저자는 말한다.

    중국은 시진핑 시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몽(中國夢)'을 실현하고자 한다. 그 목표는 2050년 미국과 대등한 초강대국으로의 도약이다. 이를 위해서는 최소한 아시아에서 미국의 힘을 넘어 맹주의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이 때문에 중국에게는 북한이라는 '동맹'이 중요하다. 북한 역시 한반도에서 자신들이 꿈꾸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 한국에 주둔 중인 미군을 철수시켜야 한다.

    조선일보 베이징 특파원 출신으로 중국 문제를 집중 연구해 온 저자가 외교현장의 감각과 국제정치학적 이론을 접목시켰다는 점이 특이하다.

    저자는 북중관계를 미국의 정치학자 랜달 슈웰러의 '이익동맹 이론'으로 설명한다. 슈웰러 모델에서 한반도 이해관계국 가운데 미국은 현상을 유지하려는 '사자', 중국은 현상을 타파하려는 '늑대', 북한은 강대국 간 힘의 틈새를 엿보는 '자칼', 한국은 사자에 편승하려는 '양'으로 분류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중국(늑대)은 한반도에서 미국(사자)을 몰아내고 새로운 동북아 질서를 만들기 위해 북한(자칼)을 포용하고 지원한다. 즉, 중국과 북한은 '한미동맹의 해체'라는 공통의 목표를 추구하는 '이익동맹'이 된다. 북중동맹은 과거에는 '군사동맹'의 성격이 강했다면, 21세기에는 '군사-경제 복합동맹'으로 성격이 바뀌고 있다. 저자는 이를 '북중동맹의 진화(進化)'라고 규정한다.

    ◆ 중국은 미군이 철수한 한반도를 원한다

    중국이 북한을 이렇게 관리한다면, 자연히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란 물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이 문제에 1개 장(章) 분량과 맞먹는 보론(補論)을 할애했다. 저자는 '우리가 중국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알려면, 먼저 '중국이 한반도를 어떻게 다루는지' 파악해야 한다고 말한다.

    중국은 과거 1000년 이상 한반도를 자신들의 변방 속국으로 간주해 왔으며,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잃으면 중국 본토가 위태로워진다는 역사적 교훈을 기억하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임진왜란과 한일합방, 6·25전쟁이 모두 한반도로부터 시작돼 중국에 화를 미쳤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중국은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는 것에 한반도 외교의 최우선 목표를 둔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러한 외교적 목표를 가졌기 때문에 중국은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미중 간 무역 전쟁이 시작된 2018년 이후,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김정은 위원장을 5차례나 만나 양국 간 '피로 맺어진 우정'을 확인한 점이 이를 말해 준다.

    심지어 트럼프와 김정은의 하노이 정상회담 때 중국은 김정은의 전용열차가 안전하게 중국 땅을 통과할 수 있도록 온갖 뒷바라지를 다했다. 중국은 북한의 비핵화보다 대북 영향력 강화를 더 중시한다는 것이 드러났다.

    상황이 이런데도 한국 정부가 "중국을 통해 북한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자존심 강한 북한은 중국의 간섭을 싫어하며, 중국 역시 그것을 알기 때문에 결코 한국의 요청대로 행동하지 않는다. 중국은 또한 한국 주도의 남북통일에 결코 협력하지 않는다. 인구 7500만의 자유민주 통일한국이 장차 중국에 큰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이 책은 지적한다. 중국의 목표는 미군이 떠난 '친(親)중국의 한반도'를 만드는 것이라고 이 책은 경고한다.

    ◆ 원칙 있는 외교만이 중국을 움직인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먼저 "원칙 있는 외교만이 중국을 움직인다"고 강조한다. 원칙 있는 외교란, '어떤 나라에 대해서도 우리의 영토와 주권, 자유 민주 정치체제, 인권과 법치의 가치,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킨다는 점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아울러 국가 지도자와 정부, 국민이 행동으로 이 원칙을 지키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이 원칙이 무너지면, 어떤 나라도 한국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원칙 있고 강단 있는 외교'가 효과를 본 사례로 저자는 중국 어민의 서해 불법조업에 대한 실탄 단속을 든다. 중국 어민들은 한중수교 이래 오랫동안 서해에 무단 진입해 해양자원의 씨를 말리는 싹쓸이 불법조업을 해왔다. 한국 해경의 단속에 중국 어민들은 칼과 낫 등 흉기를 들고 저항해 한국 해경의 생명을 앗아가기도 했다.

    이에 2016년 한국 정부가 베트남 러시아 등 외국사례를 참조해 중국 어선의 선체에 실탄 조준사격을 가하는 단호한 조치를 도입했다. 이때부터 중국인의 불법조업이 크게 줄었고 중국 정부도 이에 대해 더 이상 문제 삼지 못했다. 명분을 가진 원칙 있는 외교만이 중국을 움직이고 국익을 지킨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와 관련, 저자는 북한문제 등 특정 외교 사안에서 중국의 협조를 얻겠다고 한국 정부가 중국에 '저자세(低姿勢) 외교'를 취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강조한다. 중국은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의 전략이익과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한국이 저자세를 취한다고 해서 그 요청을 들어줄리 만무하다는 것이다.

    ◆ 중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미국을 활용해야

    저자세 외교는 오히려 중국의 경멸과 과도한 요구만 부를 뿐이라고 말한다. 대표적으로 사드 배치와 관련, 박근혜 정부의 '3무(無) 정책'과 문재인 정부의 '3불(不) 약속'은 우리의 군사주권을 당당히 행사하지 못하고 중국의 눈치를 본 '저자세 외교'였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한국이 중국의 사드 경제보복을 WTO(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하지 못한 것도 나쁜 외교선례를 남긴 것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2017년 이후 3년이나 중국의 경제보복을 받았지만 큰 영향을 받지 않을 만큼 한국 경제는 튼튼하기 때문에 중국의 보복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또한 한국이 종합국력에서 강한 중국을 움직이려면 중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미국을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한미동맹은 한국이 가진 소중한 전략적 자신이기 때문에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2017년 미국을 방문한 시진핑이 트럼프에게 "한국은 사실상 중국의 일부였다(Korea actually used to be a part of china.)"고 말한 점을 들며, 중국의 한반도에 대한 영토적 야욕을 견제하는데도 한미동맹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미동맹은 현재 한국인이 누리는 자유민주 정치체제와 경제적 풍요의 바탕이기 때문에 이를 포기하는 것은 한국의 미래에 엄청난 재앙으로 다가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국이 미국과 결별하고 중국의 영향권으로 들어가는 순간, 지금 홍콩이 겪는 것과 같은 공산당의 폭압정치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해방 이후 미국과 손잡은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력과 30000달러 소득을 달성했지만, 중국과 손잡은 북한은 일인당 소득 1400달러의 세계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 한미동맹의 가치를 증명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 저자 소개

    지해범(池海範) : 경북 상주 출생(1959). 경북고등학교와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한 뒤 육군 복무 후 1986년 조선일보사에 입사해 사회부, 월간조선부, 경제부, 국제부 기자를 거쳤다. 중국 난징(南京)대학에서 연수하고, 주 베이징 특파원(1997~2001년)과 국제부장, 논설위원 등을 지냈고 현재 동북아연구소장 겸 '中文조선' 'NK조선' 편집인으로 있다.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에서 석사학위, 국제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2019)를 받았다. 논문으로 '후진타오-시진핑 시기 중국의 대북정책 변화 연구: 비핵화와 경제협력 정책을 중심으로(박사학위논문)', 저·역서로 '화교 네트워크(1998)', '원자바오(2007)', '제국의 황혼(공저, 2011)'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