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노조 "KBS 사측, 경영적자 면피하려 '지역방송국 구조조정' 의혹"
  • 양승동(사진) 사장 체제 출범 이후 적자로 돌아선 KBS가 재정난을 해소하기 위해 위해 7개 지역방송국을 9개의 광역거점센터(이하 총국)와 통·폐합하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준비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KBS는 지역방송국을 폐지하는 수순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지역방송을 살리기 위함이라고 이번 조직개편의 취지를 설명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이번 개편이 KBS의 경영실패를 만회하려는 '꼼수'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경영진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적자규모를 감축하기 위해 지역방송국의 인건비와 운영비를 줄이는 '손쉬운 방법'을 택했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국민의 수신료로 운영되는 KBS가 단기적 경영개선만 노리고 지역민의 '시청권'을 내팽개쳐 결과적으로 공영방송의 책무를 망각했다는 따가운 지적도 나온다.

    진주·포항·안동 등 7개 지역국, '총국'으로 기능 이전

    본지 취재 결과 KBS는 지난 2월 총 9개 지역방송국 중에서 강릉과 울산을 제외한 나머지 7곳(진주·포항·안동·목포·순천·충주·원주)의 TV제작·편성·송출·총무직제를 없애고 기능을 총국으로 이전하도록 하는 '방송구역·분야 변경허가 신청서'를 방송통신위원회에 제출했다. 7개 지역방송국의 TV제작 및 송출 기능을 없애고 라디오 방송 기능만 남기겠다는 게 이번 신청의 핵심 골자다.

    KBS는 1차로 기본 계획안이 통과하면, 관련 분야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 심사와 시청자 의견 청취 등을 거쳐 늦어도 5월 말이면 변경허가가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을 4일 본지에 알린 허성권 KBS노동조합 부위원장은 "지난달 27일 사내 게시판에 '7개 지역방송국의 기능 이전 안을 담은 방통위 변경허가 절차가 진행 중'이라는 사측 공지가 올라왔다"며 "사측은 이 글에서 변경허가 건이 방통위 의결을 받으면 총국과 지역방송국 조직 개편을 단행하겠다고 밝혀 지역방송국 직원들의 대규모 인사이동을 예고했다"고 전했다.

    허 부위원장은 "사측은 이 같은 구조조정안을 '지역방송 활성화 계획'으로 부르고 있다"며 "사측은 '총국 중심으로 리소스를 통합해 지역의 편성·제작 자율권을 확대하고 지역 시청자들에 대한 서비스를 다양화하겠다'고 자신했지만 실상은 정반대"라고 지적했다.

    "'뉴스7', 총국 중심으로 개편… 서부경남뉴스 현저히 감소"


    허 부위원장은 "경영진은 우선 시범적으로 평일 오후 7시에 방송되는 '뉴스7'을 지역화한다는 목표로 지난 2월부터 9개 총국이 관할 지역 뉴스 제작·편성을 전담하는 개편을 단행했다"며 "원래 본사(서울) 뉴스 후반부에 5분가량 방송되던 지역 뉴스를 40분 전체로 늘렸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KBS는 9개 총국(부산·창원·대구·광주·전주·대전·청주·춘천·제주)과 9개 지역방송국(강릉·울산·진주·포항·안동·목포·순천·충주·원주)을 운영하며 오후 7시와 9시에 각각 5~10분 정도 지역별 뉴스를 전달해왔다.

    그러나 올해 초부터 '뉴스7' 지역화를 명목으로 7개 지역방송국(진주·포항·안동·목포·순천·충주·원주) 취재·촬영기자의 소속을 각 지역 대도시별로 포진된 '총국'으로 옮겨, 강릉와 울산을 제외한 지역방송국의 보도·제작·편성 기능을 상당 부분 이전한 상태라는 게 허 부위원장의 설명이다.

    허 부위원장은 "경영진은 지역 뉴스의 심층성과 다양성을 구현하기 위해 시도한 '뉴스7'의 지역화가 사내외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고 자평했으나, 정작 '뉴스7' 지역화가 시행된 날부터 타사 보도에 비해 지역 뉴스 건수가 현저히 줄어드는 부작용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KBS노동조합이 지난 2월 3일부터 ~ 3월 31일까지 KBS의 서부경남지역(진주·사천·남해·하동·산청·함양·거창) 뉴스와 타사의 보도를 비교·분석한 결과, 2월 한 달 간 창원총국 뉴스에 나간 서부경남 단신 중 ▲하루 전날 지역신문이나 타사에 나간 단신은 15건 ▲이틀 지난 단신은 4건 ▲6일 지난 단신은 3건 ▲8일 지난 단신은 1건으로 확인됐다.

    또 2월 한 달 중 서부경남권 뉴스가 방송되지 않은 날이 절반 이상되고, 구색을 맞추기 위해 리포트대신 뉴스의 맥락을 끊는 영상뉴스나 자치단체 홍보 일색인 시장·군수 인터뷰 등이 전파를 탄 것으로 드러났다.

    3월 한 달 동안에도 ▲하루지난 서부경남 단신이 15건 ▲이틀지난 단신이 1건 ▲3일 지난 단신이 1건 ▲심지어 4일 지난 단신도 2건이나 있었다. 3월 중 서부경남 리포트가 방송되지 않은 날은 무려 17일이나 됐다.

    허 부위원장은 "타 언론사인 MBC와 지역민방 KNN보다 지역밀착형 서부경남 뉴스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같거나 1~2건 많이 보도된 날은 2월 한 달 중 단 4일에 불과하고 나머지 25일은 서부경남 기사가 형편없이 적었다"며 "이것이 지역방송을 활성화한다며 시작한 뉴스 지역화의 실체"라고 개탄했다.

    "'뉴스7' 시청률 상승? 7개 지역 시청률은 떨어졌다"


    허 부위원장은 "'뉴스7' 지역화를 시작하면서 총국에 인력과 예산을 집중시키고 있는데, 일부 제작 인력을 지역방송국에 남겨 둔 이유는 '뉴스9' 후반부에 방송하는 지역 뉴스 때문"이라며 "지역방송국의 송출 기능이 완전히 중단되고 '뉴스9' 전체가 본사 뉴스로 채워지면 남아 있는 인력 대부분이 총국으로 이동해 사실상 지역방송국은 빈껍데기만 남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한 "일각에선 2월 3일부터 9개 총국에서 자체 제작·방송하는 평일 '뉴스7' 시청률이 두 자릿수를 상회할 정도로 높은 호응을 보였다고 평가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코로나19 이슈 등으로 반짝 상승한 '총국'의 시청률을 가리킨 것으로 7개 지역 시청률은 오히려 떨어졌다"며 "TV를 틀면 대구 뉴스, 창원 뉴스만 주구장창 나오는 데 안동이나 진주 시민들이 볼 턱이 있나"라고 지적했다.

    허 부위원장은 "지역에서 공영방송의 역할을 더 강화해야할 KBS가 겉으로는 지역방송 활성화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공영방송 역할 덜어내기'를 획책하고 있다"며 "이처럼 준비없이 강행된 KBS 지역국 통·폐합은 KBS 노동자들의 심각한 피해를 불러오는 것과 동시에 수신료 거부 운동 등 시청자들의 반발을 살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허 부위원장은 15년 전 통·폐합돼 없어진 여수방송국과 태백방송국 자리에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서고, 영월방송국은 박물관으로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 뒤 "오래 전 헐값에 지역국을 팔아 대체 무엇을 남겼나? 지역에 공영방송이 없다는 상실감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사측은 지역국을 죽여 KBS를 살린다는 최악의 모순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 뉴스 버리려면 수신료부터 포기해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박대출 미래통합당 의원도 KBS가 사내 게시판을 통해 지역방송국 축소·폐지를 공식화한 것은 수신료로 운영되는 KBS의 '본분'을 망각한 행동이라며 "'거대 여당'의 등장에 안하무인이 도를 넘었다"고 개탄했다.

    박 의원은 지난달 28일 배포한 성명에서 "'방송통신위원회의 변경허가 절차가 마무리되면 (지역방송국·총국 통폐합 관련) 구체적 일정을 공유하겠다'는 공지는 KBS가 상급기관인 방통위마저 입맛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KBS는 방송법에서 규정한 국가기간방송이고 공적 책임과 방송의 공공성·공익성, 지역성 보장과 실현은 법상 KBS의 의무"라며 "공적 책무를 버리려면 수신료부터 포기하는 게 순서다. 수신료를 받으면서 지역방송국을 축소·폐지하려 드는 것은 국민을 기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