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권까지 주장하는 대한민국이 수천만 북한 주민 인권 모른 척… 굉장히 문제 있는 것"
  • ▲ 지성호 미래한국당 당선인이 27일 <뉴데일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정상윤 기자
    ▲ 지성호 미래한국당 당선인이 27일 <뉴데일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정상윤 기자
    '꽃제비' 출신으로 목발을 짚고 탈북한 '북한인권운동가' 지성호 미래한국당 당선인은 "의원실 내에 탈북민 권익센터를 만들고 싶다"며 "그곳에서 탈북민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다"고 말했다. 

    2018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연두교서에서 목발을 든 영웅으로 소개된 지 당선인은 지난 27일 국회 의원회관 1017호(김규환 의원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이 같은 포부를 밝혔다.

    북한에서의 사고로 왼팔은 의수, 왼다리는 의족인 지 당선인은 "북한은 거짓으로 가득한 곳이라고 생각해 2006년 4월25일 목발을 짚고 탈북했다"며 "북한 주민들도 자유와 민주주의를 누려야 하는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 당선인은 "인권을 넘어 동물권도 생각하는 대한민국이 북한 주민들의 인권에 침묵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헌법상 북한 주민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하는 체제에서 몇천만 명의 목숨을 모르는 척하는 자체가 굉장히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과거 트럼프 대통령의 소개로 미 상·하원 의원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던 지 당선인은 "결국 김정은과 싸움에서 승리했다는 기분이 들어 목발을 들었다"며 "나는 작은 NGO(비정부기구)의 대표였지만, 골리앗 같은 북한을 상대하는 다윗이었다"고 회고했다.

    최근 김정은의 신변이상설로 후계자 물망에 오른 인물 가운데는 "김평일보다 김여정이 아닐까 싶다"며 "김평일이 집안은 좋지만 몇십 년을 외부로 돌았던 사람이기에 관내를 장악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내다봤다.
  • ▲ 지성호 미래한국당 당선인이 27일 <뉴데일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정상윤 기자
    ▲ 지성호 미래한국당 당선인이 27일 <뉴데일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정상윤 기자
    다음은 지성호 당선인과 일문일답.

    '꽃제비' 지성호로서 살던 삶을 말해달라. 먼저 팔과 다리는 어쩌다 잃은 것인가.  

    "북한에서 나온 지 14년이 됐다. 이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에서 쓰레기를 주워 먹고, 길거리에서 매를 맞고, 힘이 약하다는 이유로 매를 맞고, 때로는 보위부 요원들로부터 꼴보기 싫다는 이유로 잡혀 맞기도 하고, 저 같은 장애인한테 뭐가 있겠다고 항상 잡아서 뇌물을 바치라고 하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탈북으로 이끌었던 것 같다. 처참한 과정을 겪기도 했지만, 탈북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 열네 살 때 60t 화물열차에 깔려 팔과 다리를 절단당했다. 너무 고통스러워 기절했다. 눈을 떠보니 숨을 쉴 수 없었다. 보니 팔도 잘리고, 다리도 잘렸다. 살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어린 나이이니 살려달라고 막 도움도 요청했는데, 사람들은 저를 보기만 하고 뛰어 넘어가지 도와주지 않았다. 그때 사람들이 너무 미웠다. 병원에 이송돼 수술해야 하는데 마취제가 없어 마취할 수도 없고, 수혈할 수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수술받아야 했다. 수술을 안 받아 죽든, 받다가 죽든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결국 수술실로 들어갔다. 의사들이 저를 묶어놓고 살을 배어냈는데, 고기를 써는 소리가 쓱쓱 나는데,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너무 아팠다. 살을 배어내고, 톱으로 뼈를 써는데, 써는 그 소리와 떨림이 너무 무섭고 고통스러웠다. 마지막에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떠보니 손이 없었다. 손가락만 자르는 건데 손목을 절단했다. 거기다 붕대를 감아놨는데, 하얀 붕대를 감아놨는데, 손이 없어진 거다. 그걸 보니까 또 눈물이 나는 거다. 어떻게 내가 할 수 있는 거는 아무것도 없고, 3시간 반 동안 기절했다 깼다를 반복하며 수술받았다." 

    -사고 이후에는 어떻게 지냈나.

    "내가 지르는 고함 소리에 수술장 밖에 있던 어머니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고 한다. 여동생은 무서워 벌벌 떨었다. 아버지가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왔다. 의사한테 '우리 아들 어떻게 됐느냐'고 물어보니, 의사가 살과 뼈를 자른 걸 아버지에게 줬다. 아버지가 생각했던 거는 당에 충성했던 것 밖에 없었다. 일한  대가를 주지 않고, 노예처럼 일을 시켜도 일만 하고 그랬는데, 결국은 아들을 챙기지 못한 자책감에 아버지가 많이 힘들어 했던 것 같다. 국가가 식량이나 의약품 이런 걸 전혀 주지 않다 보니 다 같이 풀을 뜯어 먹으면서 다리가 썩어나도 항생제를 맞을 돈이 없어 썩어나는 다리를 부둥켜안고 울었던 적도 많았다. 차라리 죽여달라고 기도했다. 모든 사람들은 죽는다고 말했다. 살아 남으니 장애인이고, 사회는 손가락질하고, 보위부 사람들은 천대하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가족들이 벌어온 것으로는 살 수 없고, 이번에는 손발이 없는 채로 석탄열차에 매달려야 했다. 그렇게 살다 중국으로 넘어가 식량 구걸도 해보고, 종교도 알게 됐다. 그러다 중국에서 식량 구걸한 죄로 북한에서 체포돼 고문도 당했다. 그때 생각했다. 북한이 지구상에서 최고로 좋은 나라이고, 행복한 나라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북한 밖의 사람들은 고깃국과 쌀밥을 먹고 있었고, 북한에서는 짐승들이 먹다 남은 쌀밥을 먹고, 그렇게 우리는 한심하게 살고 있었다." 

    - 자유를 찾기까지 처절했던 탈북 과정을 설명해달라.

    "그런데 중국에 가서 김정일이 잘 먹고 잘산다는 것을 알게 됐다. 북한에서는 김정일이 인민들과 똑같이 쪽잠을 자면서 주먹밥을 먹는다고 세뇌했다. 그걸 보면서 '이곳은 거짓으로 가득한 곳이다'라고 생각하고 2006년도에 목발을 짚고 나왔다. 왼팔은 목발 짚을 손이 없다 보니 끈으로 묶어 고정하고, 오른팔로는 목발을 짚으면서 2006년 4월25일 두만강을 건넜다. 그때 제가 살던 곳이 굉장히 추웠다. 러시아 시베리아와 가까웠다. 그때 4월인데 3일 밤낮으로 눈이 왔다. 그게 녹아버리고 해서 물에 빠져 죽을 뻔했다. 흙탕물을 많이 먹었다.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꼬르르 소리가 나면서 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러던 와중에 남동생이 제 머리채를 잡고 헤엄쳐 나가 그 흙탕물을 다 토하고, 중국으로 넘어갔다. 한국으로 가려고 했으나 갈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중국으로 넘어가면 대한민국 대사관이나 국정원에서 우리를 다 비행기에 태워 데려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도 없고, 진입하기도 어려웠다. 그런데 다시 북한으로 갈 수는 없고, 그렇다고 죽을 수도 없고, 확률이라면 1%에 목숨을 걸었다.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넘어갈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중국에서 라오스-미얀마-태국으로 1만km를 돌아서 왔다. 목발이 나무이니 나무가 다 달아 다 벗겨지고, 피부에서는 피와 진물이 나고, 그런 고통을 겪으며 2개월 정도를 돌고 돌아 대한민국에 왔다. 오기를 참 잘했다. 대한민국은 정말 좋은 나라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저를 선택해 주셨는데, 북한의 수많은 주민들에게 큰 희망이 될 것이다." 
     
    - 트럼프 대통령 국정연설에서 목발을 들었던 장면이 인상 깊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국정연설에 나가기 전에 만남이 있었는데, 저만 한국사람이었다. 다 미국시민들, 영웅들이 그 자리에 오는 것이었는데, 그 자리에 초청받았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한 사람씩 들어가 트럼프 대통령과 기념촬영을 하는 순서가 있었는데, 내가 먼저였다. 문이 열리고, 들어가라고 하는데, TV에서만 보던 분이 진짜 있는 거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말 크지 않나. 좀 떨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괜찮다. 고생 많이 했다. 정말 영웅이다' 이런 말을 해줬다. 그러자 긴장감이 갑자기 확 풀렸다. TV에서 봤던 모습과 달라 좀 놀랐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북한인권운동을 위해 미국을 수십 번이나 갔을 때 어쩌다 백악관에 가게 되면 밖에서나 미국 대통령 차량이 에스코트를 받는 모습을 보고 신기해서 사진을 찍곤 했다. 그런데 백악관 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입장이 되고, 나를 백악관 차량에 태워 쭉 에스코트를 해 의회로 이동하는데, 정말 표현 못할 그런 경험이었다. 의회에 갔을 땐 정말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 미국에 가서 북한 인권과 관련된 법안들을 통과시켜달라고 한 분 두 분 겨우 겨우 만날 수 있었던 상·하원 의원들이 거기에 꽉 차 앉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트럼프 대통령이 나를 가리키자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환호해줬다. 나는 작은 NGO(비정부기구)의 대표이고, 골리앗 같은 북한을 상대하는 다윗 같은 작은 존재였지만, 결국 김정은과 싸움에서 승리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생각으로 목발을 들었다. 더 놀라운 것은 며칠 후 또 백악관에 초청받았는데, 행사가 끝나고 보니 내가 앉은 자리가 트럼프 대통령 옆이였고, 그 자리가 국가 정상이 앉는 자리였다는 거다. 몰랐는데 한국 언론이 지성호가 국가 정상 자리에 앉았다고 해서 그 사실을 알게 됐다. 지금 보면 정말 대한민국에 와서는 청와대도 못 가봤는데, 미국에서는 그런 자리에까지 앉았다. 가해자의 입장보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함께하는 이런 모습들은 앞으로 우리 정치도 본받아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 ▲ 지성호 미래한국당 당선인이 27일 <뉴데일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정상윤 기자
    ▲ 지성호 미래한국당 당선인이 27일 <뉴데일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정상윤 기자
    - 김정은의 신변이상설로 김여정과 김평일이 후계자로 거론되는데, 당선인의 생각은 어떠한가?

    "글쎄, 조심스럽다. 지금 북한에 있는 것도 아니고, 평양에 살았던 것도 아니지만, 짧은 제 소견으로 봤을 때는 김평일보다 김여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평일은 집안은 좋다고 해도 몇십 년을 밖에서 돌았던 사람이다. 기득권층이 있는 북한 내부로 들어간 지 몇 개월이 안 된다. 북한에는 김정일 정권에서 김정은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세력과 주축들이 있다. 차라리 뭐 김여정이냐, 김정철이냐 하면 조금 더 고민해볼 수는 있겠는데, 짧은 소견으로도 외부자로 돌던 사람이 관내를 장악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 '나우(NAUH)'를 이끌며 탈북자 수백 명을 구출했다. 북한인권과 관련한 철학은 무엇인가?

    "우리나라 정치에서 북한인권을 옹호하는가, 반대하는가 이렇게 따지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역사가 흐르고, 한반도가 통일될 텐데, 세대가 지나가면 굉장히 오점으로 남을 일이다. 사람의 생명을 정치적인 것과 결부시킬 일은 아니다. 죽어가는 사람은 죽지 않게끔 하는 게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지나가던 사람을 아무 이유 없이 때린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고 영원히 나올 수 없는 곳에 가둔다. 또 일한 대가를 주지 않거나 이직할 수 있는 자유를 주지 않는다. 이민갈 자유도 없다. 모든 자유가 결박된 상황에서 우리 입장이라면 정치적으로 볼 수 있겠는가. 우리는 정말 자유민주주의를 오늘날까지 성장시킨 나라다. 그래서 국제사회의 칭찬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북한 주민들도 자유와 민주주의를 누려야 하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다 알고, 북한도 민주화돼야 한다는 것도 다 아는 사실인데, 정치 논리로 한 사람 두 사람도 아닌 몇천만 명의 목숨을 모르는 척하는 자체가 헌법상 북한주민들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하는 체제에서는 굉장히 문제다. 그래서 북한인권은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인권을 넘어 동물권도 생각하지 않나. 또한 국제사회의 많은 나라의 인권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도 하고,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가치와 민주화를 이뤘던 경험을 다른 나라에 전수해주지 않나. 그런 대한민국이 북한주민들의 인권에 침묵한다는 것은 정말 말이 안 된다. 이거는 정치적 문제로 보기 전에 인류애적 문제로 봐야 한다. 그런 입장으로 나는 북한인권운동을 하려고 한다. 그것을 정치적으로 보는 것 자체가 문제다." 

    - 북한의 테러 위협으로 경찰의 '신변보호 최고등급' 경호를 받는다. 특별히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면.

    "특별히 우려되는 부분은 없다. 나는 원래 북한인권운동을 시작할 때부터 이 일을 하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목숨을 내려놓고 이 일을 했고, 그렇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내가 나 자신을 넘어 민족을 위해 사는 모습을 보고 미국 백악관이 초청해줬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딱히 무섭거나 두렵운 것은 없다. 최근 북한을 추종하는 사람들도 있고 하니 어떤 일이 있을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 21대 국회에서 각오 한마디.

    "일단은 내가 영입될 때부터 한 말이 있다. 물론 국회는 법안을 만드는 곳이고, 그에 대한 지식도 있어야 되고, 전문적인 보좌진과 함께 일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나는 머리보다 가슴으로 일하는 정치인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더 나아가 21대 국회가 끝났을 때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 인정해줄 수 있는 감동이었다고 말해줄 수 있는, 끝날 때 더 빛나는 의원으로 기억되고 싶다. 의원실 문턱도 낮출 것이다. 사람 냄새가 나는 사람으로서 의정을 하려고 한다. 의원실 내에 탈북민의 권익을 대변하고, 민원을 들어주는 탈북민 권익센터를 만들고 싶다. 그곳에서 탈북민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다. 또한, 많은 분이 '국회에 가면 싸워야 하는데, 그렇게 착해서 어떻게 싸우겠어요'라고 걱정을 많이 한다. 나는 원래 정치를 안 좋아했다. 왜냐하면 그런 싸우는 모습이 싫어서였다. 다만, 나는 믿는 것이 있다. 민심을 믿는다. 싸울 힘은 없지만 진심은 있다. 국민에게 호소해 국민들이 마음으로 함께해주는 정치를 하고 싶다. 싸워서 될 문제가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싸울 때는 싸워야겠지만, 국민의 눈치를 보지 않는 정치인은 없을 거다. 나는 남은 게 눈물 밖에 없다. 이제 탈북민을 위해, 대한민국 위해 최선을 다할 거다. 그런데 싸우는 건 정말 못할 것 같다. 도망가면 안 될 것 같고, 좀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