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인마을개발사업, 주민-시행사 갈등에 12년째 표류… 주민들, 3월 임시총회 결의 무효확인소송
  • ▲ 3월 12일 헌인마을 도시개발조합이 임시총회를 열고 새로운 집행부를 선출하자 주민들은 서울중앙지법에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뉴데일리 DB
    ▲ 3월 12일 헌인마을 도시개발조합이 임시총회를 열고 새로운 집행부를 선출하자 주민들은 서울중앙지법에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뉴데일리 DB
    서울 서초구 내곡동 '헌인마을개발사업'이 주민들과 시행사 측의 갈등으로 12년째 표류 중이다. 갈등의 핵심은 조합원들의 '자격' 때문이다. 헌인마을 주민들은 '시행사 측이 일부 무자격 조합원들을 앞세워 개발사업을 입맛대로 추진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관리감독 기관인 서울시와 서초구는 주민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조합원들의 자격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견해다.

    22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헌인마을도시개발조합은 지난달 12일 임시총회를 열고 조합장 등 새로운 집행부를 선출했다. 이날 임시총회에서는 조합장을 비롯한 감사·이사·대의원 등 총 26명이 선출됐다. 2013년 전 조합장 사망 이후 8년 가까이 공석이던 집행부가 선출되면서 헌인마을개발사업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주민들은 기대했다.

    주민들 "3월 선출 조합장 무자격"… '임시총회무효확인'소송 제기

    그러나 헌인마을 주민들은 "임시총회를 거쳐 조합장으로 선출된 임원들의 토지 지분은 평균 약 0.037㎡, 조합 임원 및 대의원이 소유한 토지 지분은 0.11~2.74㎡에 그친다"며 "이들은 '무자격' 조합원"이라고 반발했다. 결국 지난 3일 헌인마을 주민들은 "임시총회 결의가 무효임을 확인해달라"며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제기했다.

    헌인마을은 1960년대 초 나병 환자들이 자활촌을 형성해 만든 마을이다. 주민들이 양계사업을 운영하다 1980~90년대 가구단지가 형성되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자리 잡았다. 

    헌인마을은 자연녹지지역으로 2009년 13만2379.7㎡가 도시개발구역으로 진행됐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로 시행사들이 줄도산하면서 사업 추진에 제동이 걸렸다. 여기에 2013년 전 조합장 사망 이후 8년 가까이 집행부가 공석으로 유지되면서 사업은 사실상 휴업상태로 접어들었다.

    헌인마을 조합원들의 무자격 논란은 도시개발구역 지정 신청 전인 2006년께 마을주민 110명이 헌인마을개발사업 시행 대행사인 우리강남PFV에 땅을 팔면서 불거졌다. 우리강남PFV는 시공사인 삼부토건과 동양건설산업이 출자해 만든 시행사다.
  • ▲ 헌인마을 조합원 자격 논란이 끊이지 않은 가운데 개발사업도 12년째 표류하고 있다. ⓒ뉴데일리 DB
    ▲ 헌인마을 조합원 자격 논란이 끊이지 않은 가운데 개발사업도 12년째 표류하고 있다. ⓒ뉴데일리 DB
    헌인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우리강남PFV는 이들 110명에게 돈을 지불하고도 등기하지 않은 채 신탁사에 토지 처분을 맡기도록 했다. 또한 우리강남PFV는 사업구역 내 토지 3필지(총 111㎡)를 매입해 자사 직원과 직원 가족, 법무사 직원 등 56명(평균 2㎡씩)에게 지분을 등기했다. 2009년 최초 조합이 설립될 당시 조합원 225명 중 166명이 조합원 자격이 없는 이들이라는 말이다.

    헌인마을 '무자격' 조합원 문제는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도 거론됐다. 당시 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서울시에 우리강남PFV와 조합원 166명이 '부동산 실권리자 명의에 관한 법률'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부동산 등기 특별조치법' 등의 실정법을 위반했음에도 2009년 이들을 포함한 조합원 225명을 대상으로 한 헌인마을 도시개발조합이 어떻게 설립 인가받았는지 서면질의를 보냈다. 이에 서울시는 "주장이 사실이라면 조합 설립인가도 취소하겠다"고 답했다.

    "미등기 전매로 무자격 조합원 생겨"… 서울시 "사실이면 조합 설립 인가 취소"

    이후 서울시와 관할 구청인 서초구청 등은 조합 설립 인가의 정당성과 관련해 두 차례 회의를 가졌다. 첫 회의는 지난 1월9일 헌인마을 주민 측과 서울시·서초구청이 참석했으며, 이 자리에서 서울시 관계자는 "매매, 지분쪼개기 정황 등의 자료를 보내주면 검토해서 처리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그런데 서울시는 2월21일 헌인마을 주민들과 서초구청이 참석한 2차 회의에서 "조합 설립 인가와 관련한 업무는 2009년 서초구청에 위임했다"며 "(서울시의) 책임은 없다"고 선을 그었고, 서초구청은 '알아보겠다'는 취지로만 답했다고 한다.

    문제는 서울시 등과 두 차례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헌인마을 조합에 2006년과 같은 방법으로 99명의 조합원이 새로 추가됐다는 점이다. 사실상 무자격 조합원이 더 늘어난 셈이다.

    헌인마을 관계자에 따르면, 우리강남PFV는 지난 1월 99명과 미등기 전매계약을 했다. 52명은 내곡동 1-1908번지 면적 8㎡ 토지(평균 0.11㎡씩), 45명은 1-1909번지 207㎡ 토지(평균 2.74㎡씩)를 매매계약했다. 이들은 서초구청 검인을 통해 조합원 자격을 얻었다. 동시에 166명 중 105명의 소유권이 우리강남PFV 앞으로 이전됐다. 2006년과 2020년 두 차례에 걸쳐 이 같은 방법을 통해 조합원이 된 이들은 전체 조합원 209명 중 150명에 달했다.
  • ▲ 헌인마을 주민들은 실질적인 조합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토로하는 반면, 서울시와 서초구는 사업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뉴데일리 DB
    ▲ 헌인마을 주민들은 실질적인 조합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토로하는 반면, 서울시와 서초구는 사업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뉴데일리 DB
    이와 관련, 서울시 관계자는 본지와 통화에서 "국감 (질의)에 대한 공식적 답변이 아니고 (황희 의원 측) 보좌관을 통해 질의서 하나가 왔었는데 그 이후 특별한 일들이 벌어진 건 없었다"며 "헌인마을 조합 관련해서 변경 인가 같은 것은 구청에 접수돼 처리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서초구청 관계자는 "A 원소유자(헌인마을 주민), B 시행사(우리강남PFV), C 제3자(신탁사)라고 하면, A에서 C로 넘어가게끔 신탁계약서 특약사항에 작성해 놓았기 때문에 (헌인마을과 관련해) 신탁거래(토지거래) 신청을 (구청 사업부서에서) 승인받았을 것"이라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등기를 하기 위해 허가를 받는 건데 소유권이 이렇게 넘어가도 문제가 없는지, 사업에 지장이 없는지를 비롯해 사업부서에서 조합원 등 여러 가지 이해관계를 살펴보고 이상이 없다면 토지 거래를 허가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서초구 "문제 없어 허가"… 주민들 "불법 명의신탁 취득한 조합원 자격 무효"

    하지만 헌인마을 주민들은 '서초구청의 답변은 비상식적'이라고 주장했다. 조합원 자격을 정상적 절차로 취득한 게 아니라 명의신탁 같은 불법적 방법으로 얻었다는 이유에서다.

    주민들은 "정상적인 계약이었다면 이의를 제기할 필요도 없는 일이지만 우리강남PFV가 토지를 매입해 잔금을 치르고 취득세·재산세까지 납부하고도 자신들의 명의로 소유권 이전등기를 하지 않고 제3자 명의로 이전한 것은 '명의신탁'이거나 '미등기 전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의결권이 없는 토지 소유자들끼리 개최한 임시총회에서 결의한 조합 임원들에 대해 도시개발법 시행령을 위반하면서까지 '조합설립변경인가'를 해준 것"이라고 반발했다.

    헌인마을 주민들의 법률대리인 이병록 변호사(법무법인 정곡)는 "토지를 매도하지 않은 실질적인 조합원들이 최대의 피해를 보고 있다"며 "지난 10여 년간 서초구청과 서울시에 잘못된 조합 설립 인가를 바로잡아 사업이 정상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민원을 수십 번 제기했으나, 서초구청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거나 또는 서울시 고유 업무라고 외면했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토지 소유자들이 반발하는 이유는 우리강남PFV가 사업을 진행할 수 없는데도 이런 식으로 조합을 장악해 진정한 토지 소유자들의 의사는 반영하지 않고 '지분 쪼개기'한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본지는 헌인마을 주민들의 주장과 관련해 사업 시행 대행사인 우리강남PFV의 견해를 듣기 위해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