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체·공무원·자격시험 줄줄이 연기-취소… 우한코로나 악영향, 채용규모 더 줄 듯
  • ▲ 지난 2월 29일 진행 예정이었던 국가공무원 5급·외교관후보자 선발 제1차 시험은 4월 이후로 잠정 연기됐다. ⓒ권창회 기자
    ▲ 지난 2월 29일 진행 예정이었던 국가공무원 5급·외교관후보자 선발 제1차 시험은 4월 이후로 잠정 연기됐다. ⓒ권창회 기자
    "가뜩이나 힘든 취업준비기를 보내는데, 시험 일정이 불확실해 속이 까맣게 타요."

    서울지역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2년째 구직활동을 하는 김진아(26·여·가명) 씨는 우한코로나(코로나-19) 사태 이후 사원모집 공고조차 거의 나오지 않는다며 이같이 하소연했다. 김씨는 "매년 이즈음에는 20~30 회사에 취업지원서를 냈다"며 "하지만 올해 우한코로나 사태 이후에는 사원모집 공고를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서류전형에 합격한 회사도 면접 등 일정을 무기한 연기한다는 연락이 왔다"고 말했다.

    김씨는 그나마 다른 구직자보다 사정이 나은 편이다. 아르바이트(알바) 자리라도 구했기 때문이다. "알바를 구하기 위해 30여 곳에 이력서를 낸 것 같다"는 김씨는 "겨우 콜센터 알바 자리지만, 주위에는 알바도 못 구하고 '방콕'하는 친구들이 허다하다"고 전했다.

    우한코로나 사태가 취업시장까지 위축시키면서 취업준비생들의 한숨이 깊어졌다. 각종 시험과 상반기 신입사원 채용 일정이 미뤄져 불안감이 커진 탓이다. 취준생의 취업준비를 돕는 채용설명회도 자취를 감췄다. 아르바이트(알바)를 구하기도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워졌다.

    5대 기업 공채, 공무원시험, 토익 ... 모두 연기

    삼성전자·SK·LG 등 국내 5대 기업은 상반기 공개채용 일정을 잠정 연기했다. 삼성전자는 취준생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소프트웨어 역량 테스트 일정을 무기한 연기했고, SK그룹은 매년 3월 초 진행하던 공채 일정을 이달 말로 미뤘다. 현대자동차와 GS그룹도 신입 채용 관련 면접전형 일정을 연기했다.

    공무원시험은 물론, 토익(TOEIC) 등 어학시험을 포함한 각종 자격시험도 줄줄이 연기되거나 취소됐다. 2월29일 치를 예정이던 국가공무원 5급시험과 외교관후보자 선발 제1차 시험은 4월 이후로 잠정연기됐다. 오는 28일 시행될 국가공무원 9급 공채 필기시험과 소방공무원시험은 5월 이후로 미뤄졌다.

    지난달 29일과 오는 15일로 예정됐던 토익 정기 시험과 7일로 예정된 텝스 정기 시험은 아예 취소됐다. 이달 초부터 치러질 예정이던 대한상공회의소 한자시험과 컴퓨터활용능력시험 등도 취소됐다. 이 같은 자격시험의 경우 ‘스펙 쌓기’용이나 서류전형 응시자격으로 활용되는데, 시험을 볼 기회조차 사리지면서 취준생들의 손발이 묶이게 됐다.

    중국어를 전공한 양모(25) 씨는 "항상 도서관에서 공부했는데, 지금은 전부 휴관이라 공부할 곳이 마땅치 않다"며 "학교에서 진행하던 취업지원 프로그램도 다 취소돼 정보를 구하기도 어려워졌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양씨는 "취업은커녕 한 달째 알바를 구하지 못한 친구들이 수두룩하다"고 덧붙였다.

    취준생들은 특히 우한코로나 여파로 경제가 더 위축돼 취업난이 가중될 것을 우려했다. 일정 연기에 이어 전체적으로 채용규모가 줄어들지 않을까 불안해하는 것이다.

    경영학과를 졸업한 취준생 최모(28) 씨는 “우한코로나 사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시험 일정이 확실하지 않아 계획을 세울 수가 없다”며 “이러다 채용 인원까지 줄어드는 게 아닐까 걱정된다. 일정만이라도 빨리 공지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취준생, 우한코로나 탓에 채용규모 줄까 전전긍긍

    업계에서는 기업들이 신규 채용규모를 줄이거나 취소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우한코로나 사태로 급격한 경기 둔화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은행은 지난해 11월 2.3%로 제시한 올해 국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달 27일 2.1%로 하향조정했다. 우한코로나 사태로 국내 경기 성장동력이 떨어지면서 경제성장률이 둔화할 것이라고 분석한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역시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2.9%에서 2.4%로 떨어뜨렸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현재 한국경제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전반적으로 위축되고 있다"며 "특히 2월에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수출이 부진했고, 내수도 경제심리 악화로 위축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최대한 예년 수준의 채용인원을 유지하도록 노력하겠지만, 전체적으로 채용규모가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남재현 국민대 경제학과 교수도 “코로나 사태로 고용 절차에서 어려움이 생긴 만큼 기업들이 무리하게 인원을 채용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 중소기업 인사담당 임원은 “코로나 악재가 뒤덮여 대기업에서도 구조조정을 고려 중인데, 중소기업의 상황은 더 나쁠 수밖에 없다”며 “많은 중소기업이 인원을 감축하고 있다. 구직자로서는 올해 취업문이 더 좁게 느껴질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