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상고심서 일부 무죄 취지 파기환송 "직권남용 유죄"… "피고인 협박, '구체적 해악 고지' 아냐"
  • ▲ 13일 '화이트리스트'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의 상고심에서 대법원이 일부 무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정상윤 기자
    ▲ 13일 '화이트리스트'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의 상고심에서 대법원이 일부 무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정상윤 기자
    '화이트리스트'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의 상고심에서 대법원이 일부 무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김 전 비서실장 등은 박근혜 정부 시절, 특정 정치성향의 시민단체에 대해 자금을 지원하라고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에 강요한 혐의를 받는다.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은 13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강요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기춘 전 비서실장, 조윤선 전 장관 등의 상고심에서 "강요혐의는 무죄로 판단한다"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김 전 비서실장 등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는 유죄로 판단했다. 앞서 2심 재판부는 2019년 4월12일 김 전 비서실장, 조 전 장관 등의 직권남용·강요 혐의 등을 유죄로 인정해 각각 징역 1년6개월, 징역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김 전 비서실장 등은 2014년 전경련 부회장으로 하여금 총 21개 특정 보수단체에 약 23억8900만원을 지급하도록 강요한 혐의를 받는다. 조 전 장관은 2015년 총 31개 특정 보수단체에 대해 약 18억3400만원을 지급하도록 전경령 부회장에게 강요한 혐의가 적용됐다.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2016년 23개 단체에 총 10억7000만원을 지원하라고 전경련에 요구한 혐의다.

    보수단체에 대한 자금 지원 전경련에 강요 혐의  

    대법원은 김 전 비서실장, 조 전 장관, 현 전 수석 등의 직권남용 혐의는 유죄로 인정되지만, 강요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다. 

    우선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 대법원은 "전경련에 대한 이들의 자금 지원 요구는 '직권의 남용'에 해당하고, 이로 인한 전경련 부회장의 자금지원은 '의무 없는 일'에 해당한다"고 했다. 

    대법원은 "피고인들이 전경련에 특정 정치성향의 시민단체에 대한 자금지원을 요구한 행위는 대통령비서실장과 정무수석비서관실의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으로 직권을 남용한 경우에 해당한다"며 "전경련 부회장은 이들의 직권남용 행위로 인해 전경련의 해당 보수 시민단체에 대한 자금지원 결정이라는 의무 없는 일을 했다는 원심의 판단에 법리오해 등 잘못이 없다"고 전했다. 

    이어 직권남용에 대해 "어떤 직무가 공무원의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인지는 법령상 근거가 필요하고, 명문 규정이 없어도 법령과 제도를 종합적·실질적으로 살펴야 한다"라며 "'남용 여부'는 직권행사가 허용되는 법령상의 요건을 충족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상대방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는지와 관련해, '의무 없는 일'에 해당하는지는 직권 남용과는 별도로 상대방이 그 일을 할 법령상 의무가 있는지를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도 했다.

    김 전 비서실장 등의 강요죄에 대해서는 다른 판단이 나왔다. 형법상 강요죄가 성립하려면 '구체적인 해악의 고지가 있어야 한다'고 법원은 봤다. 강요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는 범죄다. 

    대법원은 "여기에서의 협박은 객관적으로 사람의 의사결정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의사실행의 자유를 방해할 정도로 겁을 먹게 할 만한 해악을 고지하는 것을 말한다"며 "이 같은 협박이 인정되려면 발생 가능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정도의 구체적인 해악의 고지가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강요죄 성립하려면 구체적인 해악의 고지가 있어야"

    그러면서 "원심은 피고인들이 전경련에 자금지원을 요청하면서 윗선을 언급하거나 자금집행을 독촉하고 보수 시민단체의 불만·민원사항을 전달하며 정기적으로 자금지원 현황을 확인하는 등의 사정을 들고 있지만, 이 같은 사정만으로는 해악의 고지가 있었다고 평가하기에 부족한다"며 "또 전경련 관계자들의 진술 내용은 주관적이거나 대통령비서실의 요구가 지원 대상 단체와 단체별 금액을 특정한 구체적인 요구라서 부담감과 압박감을 느꼈다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이에 "공무원인 행위자가 상대방에게 이익 제공을 요구한 경우 '해악의 고지'로 인정되지 않는다면 직권남용이나 뇌물 요구 등이 될 수는 있어도 협박을 요건으로 하는 강요죄가 성립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한편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는 1월 30일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의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 직권남용 혐의 일부에 대해 무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