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묘하게' 안 쓰는 건물만 파괴… 트럼프, 경제제재 밝히면서 “대화하자” 손짓
  • ▲ 8일 오전 11시(현지시간) 대국민 연설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안보 보좌진.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8일 오전 11시(현지시간) 대국민 연설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안보 보좌진.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군기지를 미사일 공격한 이란에 무력보복은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미군과 이라크군 사상자가 전혀 없다는 게 이유다. 그는 대신 이란에 대한 추가 경제제재를 즉각 시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미군과 이라크군 인명피해 0… 조기경보체계 잘 작동”


    트럼프 대통령은 8일 오전 11시(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대국민 성명을 발표했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가 이라크 주둔 미군기지 2곳을 탄도미사일로 공격한 것과 관련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내용이었다.

    폭스뉴스에 따르면, 그는 성명에서 “미군과 이라크군이 함께 사용하는 기지를 향한 미사일 공격 때 사상자는 전혀 생기지 않았다”면서 “이란은 지금 (더 이상 공격을 않고) 멈춘 것 같다. 이는 모든 관련자들에게 좋은 일”이라며 무력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어젯밤 이란 정권의 공격으로 미국인은 물론 이라크인도 인명피해가 없었다. 사전조치를 취해 군인들을 분산시킨 덕분이다. 조기경보체계가 아주 잘 작동했다”면서 “미국인들은 (인명피해가 없었다는 데) 감사하고 행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란을 향해서는 “평화를 추구하기 위해서라면, 미국은 누구와도 함께할 수 있다”며 새로운 핵합의를 위한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민간위성 사진 보니…숙소 등 부수적 시설만 파괴

    미국 폭스뉴스는 “이란이 쏜 미사일 가운데 10발이 아인 알-아사드 공군기지에 떨어졌고, 5발이 이르빌 기지를 향했지만 1발만 기지 안에 떨어졌다. 나머지 4발은 목표를 공격하지 못했다”는 미군 중부사령부의 성명을 소개했다.

    실제 미국 공영방송 NPR는 이란 혁명수비대가 쏜 미사일에 피격당한 미군기지의 위성사진을 공개했다. ‘플래닛 랩스’가 미들버리국제연구소에 제공한 사진에는 10발 이상의 탄도미사일 공격을 받은 아인 알-아사드 공군기지의 경우 격납고와 항공기 등의 피해는 보이지 않는 대신 장병들 숙소 몇 군데만 파괴된 모습이었다.

    미들버리국제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최소한 건물 5곳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보인다”면서 “미사일이 직격한 건물들은 가동을 않는 곳(Dead center)으로 추정된다”고 NPR에 설명했다. 이 연구원은 이란 탄도미사일이 공군기지 시설물을 정확히 타격한 점에 주목했다.
  • ▲ 민간위성업체 '플래닛 랩스'가 미들버리 국제연구소에 제공한, 이라크 주둔 미군기지 위성사진. 군데군데 미사일을 맞은 곳이 보인다. ⓒ미국 공영방송 NPR 관련보도 화면캡쳐.
    ▲ 민간위성업체 '플래닛 랩스'가 미들버리 국제연구소에 제공한, 이라크 주둔 미군기지 위성사진. 군데군데 미사일을 맞은 곳이 보인다. ⓒ미국 공영방송 NPR 관련보도 화면캡쳐.
    “이란, 어떻게든 미군 피해 줄이려 노력한 흔적 역력”

    미국과 유럽 정보기관 관계자들은 “이번 미사일 공격 결과를 보면, 이란이 미군 인명피해를 피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고 평가했다고 카타르의 국제위성방송 알 자지라 방송이 지난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방송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 정보기관들은 이번 사건에 대한 피해 분석을 하면서 비슷한 결론을 냈다.

    익명을 요구한 미국 정보기관 관계자는 “이번 공격에는 이란이 최근에 생긴 위기(시민들의 대규모 시위와 솔레이마니의 사망 등에 따른 국내 불만 여론)을 통제할 기회를 놓친 탓에, 미국에게 보복하겠다는 대내적 메시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미군이 피해를 입는 상황을 막으려 노력했다는 메시지도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알 자지라’는 또한 이란과 이라크 정부 소식통을 인용, “이란이 솔레이마니 장군의 복수를 위해 미사일로 미군 기지를 공격하기 전, 이라크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귀띔했다”고 보도했다.

    압둘 마흐디 이라크 총리는 이란 혁명수비대 측으로부터 “곧 보복을 시작한다”는 구두 경고를 받았다. 마흐디 총리는 즉각 이라크 보안군 수뇌부에 연락했고, 이는 다시 미군으로 전해졌다고 방송은 전했다. 마흐디 총리는 “나는 이란과의 통화에서 그들의 공격을 적극 만류했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혁명수비대가 이라크 총리에게 연락한 결정적 이유는 같은 시아파 정권이기 때문이다.

    사담 후세인은 이라크 인구 가운데 상대적으로 소수인 수니파를 권력층으로 만들었다. 수니파는 다수인 시아파를 폭압했다. 2003년 3월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후세인 정권이 사라진 뒤 시아파 세력이 정치 전면에 등장했다. 그리고 2005년 2월, 85년 만에 시아파 정권을 세웠다. 이후 이란과의 관계는 과거와 달리 우호적으로 변했다. 시아파 민병대가 바그다드 그린 존에 마음대로 들어가 미국대사관을 습격할 수 있었던 배경도 이런 시아파 정권 간의 유대감 덕분이라는 것이다.
  • ▲ 56명의 사망자를 낸 솔레이마니 장례식. 이런 군중의 분노를 달래려면 미국을 일단 때리는 수밖에 없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56명의 사망자를 낸 솔레이마니 장례식. 이런 군중의 분노를 달래려면 미국을 일단 때리는 수밖에 없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중국·러시아 ICBM도 막는다는 미군, 왜 이란 미사일 못 막았을까?

    미국 국방부 관계자는 “이번에 공격당한 기지의 특성상 미사일 요격이 불가능했다”고 털어놨다고 폭스뉴스는 전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두 기지는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활동하던 테러조직 ISIS 소탕을 위해 쿠르드족 민병대와 이라크 보안군을 교육하고 지원하는 곳이었다. 이 관계자는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는 이라크에서 ISIS 격퇴에만 집중했다”며 “게다가 요격 미사일이 필요한 곳은 많지만 미군이 보유한 수는 적다”고 설명했다.

    한때 ‘이슬람 국가(IS)’를 자처하며 3만 명이 넘는 병력을 보유했던 ISIS에는 세 가지 중요한 전력이 없었다. 군용 항공기와 조종사 및 정비인력, 탄도미사일과 운용 인력, 그리고 해군이었다. 때문에 미군 수뇌부는 이라크에 기지를 만들면서도 “필요 없다”며 패트리어트 미사일은 커녕 험비 탑재용 어벤저 단거리 대공미사일조차 배치하지 않았다고 한다.

    트럼프 “무력 사용 대신 추가 경제제재 시행” 이란 “보복, 아직 불충분”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연설에서 “이란 혁명수비대가 탄도미사일로 미군기지를 공격한 것을 그냥 넘기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에는 이란에 대해 즉각적인 경제제재를 취할 것”이라며 “이란의 태도(behavior)가 변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란의 공격에 대한 대응책도 계속 평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내가 미국 대통령으로 있는 동안 이란의 핵무기 보유는 결코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란은 핵보유 야망을 포기하고 테러리즘 지원을 끝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금 당장은 이란에 대한 무력 사용을 자제하지만 여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라고 폭스뉴스는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영국·독일·프랑스·러시아·중국은 (이란 핵 개발의) 현실을 인지해야 한다. 오바마 시절의 핵합의는 잊어야 한다”면서 “미국은 이란에 대응할 수단을 계속 평가하고 있으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비롯한 세계 주요 국가들은 이란 핵문제 논의에 더욱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편 이란은 “보복은 아직 불충분하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8일(현지시간) 대중연설에서 “어젯밤 우리는 미국의 뺨을 한 대 갈겼다”면서 “하지만 그 정도 보복으로는 충분치 않다”며 미국은 물론 그 동맹국들을 공격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 이날 혁명수비대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두바이, 이스라엘의 하이파가 다음 표적이 될 수 있다”는 협박성명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