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행정처 前 심의관들 증인신문서 검찰 '압박수사' 증언… "피의자 신분 전환 위협 느꼈다"
-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스탠스 잘 잡으라고 했습니다."(10월30일 40회 공판 증인 최우진 전 사법정책실 심의관)'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양승태(70·사법연수원 2기) 전 대법원장 재판에서 검찰의 수사 방식이 도마에 올랐다. 검찰이 양 전 대법원장의 범죄사실 입증을 위해 무리한 수사를 했다는 지적이다.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61·12기)·고영한(64·11기) 전 대법관 등은 지난 2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문제는 검찰의 압박수사 여부다. 최우진·임효량 전 심의관, 최누림 전 사법정책심의관 등의 증인신문 과정에서 이같은 사실이 드러났다. 10월30일 40회 공판에 나온 최우진 전 심의관은 이를 박 전 대법관 측 반대신문 과정에서 토로했다.'피의자 신분 전환 우려', '진술조서 정확성' 도마에최 전 심의관은 "검찰이 (조사 과정에서) '스탠스 잘 잡아라' 취지의 말도 하고 청와대 얘기를 하더라"며 "(이번 재판 관련해서는) 거기서 처음 들었던 이야기니까 어떤 일에 (내가) 중간에 껴서 전혀 감 안 되는 상황이었고, 그런 면에서 위축되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박 전 대법관 측의 "'스탠스 잘 잡아라'는 취지는 '네가 언제든지 피의자로 전환될 수 있다'는 취지였는가"라는 질문에 "당시에는 그랬다"고 인정했다. 법조계가 '명백한 압박수사'라고 말하는 대목이다.최근 법정에 선 전직 심의관도 비슷한 취지로 말했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11월13일 44회 공판에서 임효량 전 심의관에게 "최누림 전 심의관은 검찰의 진술거부권 고지가 생소하다고 말하면서 참고인 조사를 명확하게 해달라고 한 적이 있는데, (증인은) 참고인 조사 때 진술거부권을 고지받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가"라고 물었다. 임 전 심의관은 "참고인 지위와 맞는지 의문스럽기는 했다"고 말했다. "당시 조사 상황에 따라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우려를 했는가"라는 질문에도 "그렇다"고 인정했다.진술조서 문제를 지적한 증인도 있다. 검찰 조사 과정에서, 참고인의 '답변'과 검찰 측의 '질문'이 교묘하게 섞여 있다는 증언이다. 진술조서 내용 일부가 '자신의 의사와 다르게' 기재됐다는 의미다.최우진 전 심의관의 말이다. "그 멘트는 검사가 했던 멘트고, 제가 하진 않았다. 부담스럽다고 혹시 이야기했더라도 지시가 부담스럽다는 게 아니라 그 상황 자체가 부담스럽다는 거였다. (조서에 기재된 저의) 의견은 검사 질문이 제 의견인 것처럼 된 부분도 있다." 검찰 측이 '통합진보당 사건과 관련해 윤모 사법정책실장 등 상관의 보고서 작성 지시가 부담스럽다고 느꼈는가'라고 묻자 내놓은 발언이었다. 최 전 심의관은 재판 말미에 "(조서에 담긴) 저의 의견은 검사 질문이 제 의견인 것처럼 된 부분도 있다"고 다시 말했다."'스탠스 발언' 분명한 압박"'뉘앙스'를 거론하며 진술조서를 지적한 이는 또 있다. 10월25일 39회 공판에 증인으로 나온 최누림 전 사법정책심의관이다. 박 전 대법관 측은 이날 최 전 심의관에게 "검찰 진술조서에 진술과 다른 내용이 적힌 게 있는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최 전 심의관은 "조서에 압축적으로 적히다 보니, 뉘앙스가 다르게 적힐 수도 있다"며 "국정안정이란 워딩을 청와대 관련해 들었느냐는 게 (검찰 측) 질문이었고, 저는 누구라도 쓸 수 있는 말이라서 잘 기억이 안 난다는 취지로 답변했다"고 말했다.서울 서초동의 A변호사는 "나중에 피의자로 전환될 수 있다면 참고인 조사 때도 진술거부권을 한다"며 "법을 잘 아는 판사들을 참고인으로 불러놓고 진술거부권을 고지했다면, 당연히 판사들은 자신들이 피의자로 전환될 수 있음을 알게 돼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스탠스를 잘 잡아라'라고 검찰 측이 했다는 말이 사실이면 그것은 분명한 압박수사로, 문제가 커질 수 있다"고도 말했다.검찰은 피고인들이 '상고법원 추진' 등 법원의 이익을 위해 재판에 개입한 것으로 본다. 국제인권법연구회 등 특정 성향 판사들에 대한 탄압 등의 내용도 공소사실에 포함됐다. 현재까지 재판에서 다뤄진 주요 내용은 △일제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2012년)을 뒤집으려 했는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개입 △통합진보당(통진당) 해산 관련 등이다. 헌법재판소 내부 동향 파악, 대한변호사협회(대한변협) 압박 방안 등도 주요 쟁점이다.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 등 '윗선'이 상고법원과 같이 법원 이익을 위해 재판에 개입하고 △법관 등 비판세력을 탄압했다고 본다. 이 과정에서 법원행정처 심의관, 재판연구관 등이 관련 문건을 검토·작성했고, 이러한 사실들은 '윗선'들의 지시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는 취지다.형법 123조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