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행정처 前 심의관들 증인신문서 검찰 '압박수사' 증언… "피의자 신분 전환 위협 느꼈다"
  • ▲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양승태(70·사법연수원2기) 전 대법원장 재판이 13일 51회 공판까지 진행됐다. ⓒ정상윤 기자
    ▲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양승태(70·사법연수원2기) 전 대법원장 재판이 13일 51회 공판까지 진행됐다. ⓒ정상윤 기자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스탠스 잘 잡으라고 했습니다."(10월30일 40회 공판 증인 최우진 전 사법정책실 심의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양승태(70·사법연수원 2기) 전 대법원장 재판에서 검찰의 수사 방식이 도마에 올랐다. 검찰이 양 전 대법원장의 범죄사실 입증을 위해 무리한 수사를 했다는 지적이다.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61·12기)·고영한(64·11기) 전 대법관 등은 지난 2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문제는 검찰의 압박수사 여부다. 최우진·임효량 전 심의관, 최누림 전 사법정책심의관 등의 증인신문 과정에서 이같은 사실이 드러났다. 10월30일 40회 공판에 나온 최우진 전 심의관은 이를 박 전 대법관 측 반대신문 과정에서 토로했다.

    '피의자 신분 전환 우려', '진술조서 정확성' 도마에

    최 전 심의관은 "검찰이 (조사 과정에서) '스탠스 잘 잡아라' 취지의 말도 하고 청와대 얘기를 하더라"며 "(이번 재판 관련해서는) 거기서 처음 들었던 이야기니까 어떤 일에 (내가) 중간에 껴서 전혀 감 안 되는 상황이었고, 그런 면에서 위축되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박 전 대법관 측의 "'스탠스 잘 잡아라'는 취지는 '네가 언제든지 피의자로 전환될 수 있다'는 취지였는가"라는 질문에 "당시에는 그랬다"고 인정했다. 법조계가 '명백한 압박수사'라고 말하는 대목이다.

    최근 법정에 선 전직 심의관도 비슷한 취지로 말했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11월13일 44회 공판에서 임효량 전 심의관에게 "최누림 전 심의관은 검찰의 진술거부권 고지가 생소하다고 말하면서 참고인 조사를 명확하게 해달라고 한 적이 있는데, (증인은) 참고인 조사 때 진술거부권을 고지받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가"라고 물었다. 임 전 심의관은 "참고인 지위와 맞는지 의문스럽기는 했다"고 말했다. "당시 조사 상황에 따라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우려를 했는가"라는 질문에도 "그렇다"고 인정했다.

    진술조서 문제를 지적한 증인도 있다. 검찰 조사 과정에서, 참고인의 '답변'과 검찰 측의 '질문'이 교묘하게 섞여 있다는 증언이다. 진술조서 내용 일부가 '자신의 의사와 다르게' 기재됐다는 의미다.

    최우진 전 심의관의 말이다. "그 멘트는 검사가 했던 멘트고, 제가 하진 않았다. 부담스럽다고 혹시 이야기했더라도 지시가 부담스럽다는 게 아니라 그 상황 자체가 부담스럽다는 거였다. (조서에 기재된 저의) 의견은 검사 질문이 제 의견인 것처럼 된 부분도 있다." 검찰 측이 '통합진보당 사건과 관련해 윤모 사법정책실장 등 상관의 보고서 작성 지시가 부담스럽다고 느꼈는가'라고 묻자 내놓은 발언이었다. 최 전 심의관은 재판 말미에 "(조서에 담긴) 저의 의견은 검사 질문이 제 의견인 것처럼 된 부분도 있다"고 다시 말했다.

    "'스탠스 발언' 분명한 압박"

    '뉘앙스'를 거론하며 진술조서를 지적한 이는 또 있다. 10월25일 39회 공판에 증인으로 나온 최누림 전 사법정책심의관이다. 박 전 대법관 측은 이날 최 전 심의관에게 "검찰 진술조서에 진술과 다른 내용이 적힌 게 있는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최 전 심의관은 "조서에 압축적으로 적히다 보니, 뉘앙스가 다르게 적힐 수도 있다"며 "국정안정이란 워딩을 청와대 관련해 들었느냐는 게 (검찰 측) 질문이었고, 저는 누구라도 쓸 수 있는 말이라서 잘 기억이 안 난다는 취지로 답변했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동의 A변호사는 "나중에 피의자로 전환될 수 있다면 참고인 조사 때도 진술거부권을 한다"며 "법을 잘 아는 판사들을 참고인으로 불러놓고 진술거부권을 고지했다면, 당연히 판사들은 자신들이 피의자로 전환될 수 있음을 알게 돼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스탠스를 잘 잡아라'라고 검찰 측이 했다는 말이 사실이면 그것은 분명한 압박수사로, 문제가 커질 수 있다"고도 말했다.

    검찰은 피고인들이 '상고법원 추진' 등 법원의 이익을 위해 재판에 개입한 것으로 본다. 국제인권법연구회 등 특정 성향 판사들에 대한 탄압 등의 내용도 공소사실에 포함됐다. 현재까지 재판에서 다뤄진 주요 내용은 △일제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2012년)을 뒤집으려 했는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개입 △통합진보당(통진당) 해산 관련 등이다. 헌법재판소 내부 동향 파악, 대한변호사협회(대한변협) 압박 방안 등도 주요 쟁점이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 등 '윗선'이 상고법원과 같이 법원 이익을 위해 재판에 개입하고 △법관 등 비판세력을 탄압했다고 본다. 이 과정에서 법원행정처 심의관, 재판연구관 등이 관련 문건을 검토·작성했고, 이러한 사실들은 '윗선'들의 지시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는 취지다. 

    형법 123조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