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C-135W, RQ-4, E-8C 등 정밀 정찰기 '출근도장'… B-52H 전략폭격기는 文정부 요청으로 못 와
  • ▲ 지난 11일 수도권 남부 지역 하늘을 날아다닌 RQ-4 글로벌 호크의 항적. ⓒ에어크래프트 스팟 트위터 캡쳐.
    ▲ 지난 11일 수도권 남부 지역 하늘을 날아다닌 RQ-4 글로벌 호크의 항적. ⓒ에어크래프트 스팟 트위터 캡쳐.
    미 군용기 항적을 추적하는 민간그룹 ‘에어크래프트 스팟’이 최근 한국사회의 관심 대상이 됐다. 지난 11월 하순부터 계속 한반도로 날아오는 미군 정찰기 때문이다. 이번 주 들어 한반도로 날아온 미군 정찰기는 모두 6대다. 지난 11일과 12일에는 2대씩이나 날아왔다. 하지만 전략폭격기는 아직 날아온 적이 없다. 지난 11일 괌 앤더슨공군기지에서 출격한 B-52H 폭격기는 한반도가 아니라 일본 동쪽 태평양 상공을 비행하고 복귀했다. 우리 정부 요청으로 한반도에는 못 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흘 동안 한반도로 날아온 정찰기 6대

    에어크래프트 스팟에 따르면, 지난 9일 RC-135W '조인트 리벳'이 서해상에서 수도권을 지나 동쪽으로, E-8C '조인스 스타즈'가 한반도 상공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10일에도 RC-135W가 수도권 상공을 비행했다. 11일에는 RQ-4 '글로벌 호크'가 과천·수원·군포 상공에 나타나 임무를 수행했다. 12일 새벽에는 E-8C '조인스 스타즈'가 한반도 상공을 훑었고, 같은 날 정오 무렵에는 RC-135W가 마찬가지로 한반도 상공을 비행했다.

    매일 날아오는 미군 정찰기들이 어떤 능력을 갖췄고, 어떤 임무를 수행하는지는 그동안 언론을 통해 잘 알려졌다. 지난 11일 새로 등장한 RQ-4 글로벌 호크도 반짝 관심을 끌었다. 일부 언론은 “고도 20km에서 각종 감시장비로 지상의 30cm 크기 물체까지 식별할 수 있는 첩보위성급 장비”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는 약간의 과장이 보태진 말이다. 미국 처지에서 어느 기종이 더 중요한지는 판매실적으로 알 수 있다. MQ-4 글로벌 호크는 한국도 구입했다. 반면 RC-135W를 보유한 나라는 미국 외에는 영국이 유일하다.

    12월 들어 ‘출근도장’을 찍는 RC-135W는 E-8C나 RQ-4에 비해 급이 높은 전략정찰기다. RC-135W는 네브래스카주 오풋공군기지에 있는 제55비행단 소속이다. 이 비행단에는 6개 비행대가 속했는데, 일본 오키나와 가데나공군기지에는 이 가운데 제82정찰비행대가 배치됐다.
  • ▲ RC-135W는 최신 정찰기는 아니지만 미군의 중요한 전략 자산이다. ⓒ美공군 팩트파일 공개사진.
    ▲ RC-135W는 최신 정찰기는 아니지만 미군의 중요한 전략 자산이다. ⓒ美공군 팩트파일 공개사진.
    미 공군에 따르면, RC-135W는 현재 17대를 운용한다. 보잉 여객기를 L3 커뮤니케이션에서 개조한 정찰기로, 단순히 신호정보만 수집하는 게 아니라 전자기파의 파장 변화까지 감지한다. 이 정찰기에는 조종사 3명, 항법사 2명, 장비운용요원 21~27명, 정보장교 14명이 탑승한다. 이처럼 많은 인원을 태우고 정찰이 가능한 것은 그 탐지범위가 대단히 넓은 덕분이다.

    RQ-4 글로벌 호크는 고고도 무인정찰기로 장거리 전자광학장비, 열영상 센서, 합성개구레이더(SAR)를 통해 첩보를 수집하고, 이를 위성으로 실시간 전송한다. 견인식 미끼(디코이) 등 대공미사일을 피하기 위한 장치도 있다. 글로벌 호크는 속도가 느리지만 36시간 이상 비행 가능하며, 순항고도도 19.5km에 달해 넓은 지역을 감시·정찰할 수 있다. 그러나 적의 대공화기에 격추될 가능성이 크다.

    B-52H 폭격기 한반도 아닌 일본 동쪽 비행한 이유

    국내 언론이 관심을 보이는 미군 정찰기의 항적은 이들 항공기가 위치를 공개하는 자동종속감시-방송(ADS-B) 장비 등을 켰기 때문에 에어크래프트 스팟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에어크래프트 스팟이 제공하는 정찰기 항적이 한반도 주변에서만 나타나고 끊어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 같은 미군 정찰기들의 한반도 상공 비행은 위력 과시에 가깝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지난 11일 한반도 인근으로 날아왔다던 B-52H 폭격기는 동해가 아니라 일본열도 동쪽을 비행했다. 한반도 동해안과 수천 km 떨어진 곳이다. 미군 전략폭격기가 이처럼 날아오지 않는 이유는 우리 정부의 요청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 11월27일 국방부는 “한미 정부 간 협의에 따라 전략폭격기의 한반도 비행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전에 나온 보도 때문에 누구도 국방부의 설명을 믿지 않았다.
  • ▲ 지난 11일 괌 앤더슨 공군기지에서 출격해 훈련을 한 B-52H 전략 폭격기의 항적. 국내 언론들 보도와 달리 한반도 인근이 아니었다. ⓒ에어크래프트 스팟 트위터 캡쳐.
    ▲ 지난 11일 괌 앤더슨 공군기지에서 출격해 훈련을 한 B-52H 전략 폭격기의 항적. 국내 언론들 보도와 달리 한반도 인근이 아니었다. ⓒ에어크래프트 스팟 트위터 캡쳐.
    전날인 11월26일(현지시간) 미국 태평양공군사령관 찰스 브라운 대장은 “비핵화를 위한 외교적 노력을 뒷받침하기 위해 한미 연합훈련 유예와 함께 한반도 상공에서의 폭격기 비행훈련을 중단했다”며 “이는 한국 정부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발언했다.

    그보다 몇 달 전인 2018년 5월16일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별보좌관은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의원, 동북아평화경제협회(이사장 이화영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공동 주최한 강연에 참석해 “송영무 국방장관이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을 만나 미군 B-52H 폭격기가 한반도에 못 날아오도록 조치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문 특보는 “오늘 북한이 남북 고위급회담을 연기하자 정부가 한미 연합공중훈련 ‘맥스선더’와 관련해 조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미군 폭격기는 한반도에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 정부가 나서서 “더이상 폭격기를 보내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이제는 북한이 웬만한 도발을 하더라도 미군 폭격기는 오지 않는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