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병기·퇴직공무원 김씨, 2개 이름으로 진술서… 경찰 “판례상 문제 없다”
  • ▲ 청와대 하명 수사와 관련해 울산 경찰의 조작 수사·끼워 맞추기식 수사 정황이 드러났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울산 경찰이 김기현 전 울산시장에 대해 ‘억지 수사’를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사진은 김 전 시장 관련 수사의 참고인으로 출석한 송병기 울산 경제 부시장. ⓒ뉴시스
    ▲ 청와대 하명 수사와 관련해 울산 경찰의 조작 수사·끼워 맞추기식 수사 정황이 드러났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울산 경찰이 김기현 전 울산시장에 대해 ‘억지 수사’를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사진은 김 전 시장 관련 수사의 참고인으로 출석한 송병기 울산 경제 부시장. ⓒ뉴시스
    청와대 하명수사와 관련해 울산경찰의 조작 수사, 끼워 맞추기식 수사 정황이 드러났다. 울산경찰이 김기현 전 울산시장에 대해 ‘억지 수사’를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11일 중앙일보에 따르면, 울산지방경찰청은 김 전 시장 관련 수사의 참고인으로 송병기 울산시 경제부시장을 조사하면서 작성한 진술서를 ‘퇴직공무원 김모 씨’라는 가명과 송병기 본인의 이름으로 분리작성했다.

    송병기 한 명 진술이 2인분으로 늘어나…부족한 진술 부풀리기?

    송 부시장 1인의 진술조서가 송 부시장 실명과 퇴직공무원 김씨라는 가상의 인물 이름으로 분리돼 꾸려진 사실이 알려지자 "공무원 범죄와 관련한 참고인 조서를 가명으로 작성하는 것은 대단히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경찰은 2017~18년 2년간 김 전 시장의 비서실장이었던 박기성 씨가 특정 레미콘업체에 특혜를 줬다는 의혹을 수사하며 울산시 공무원들을 참고인으로 불렀다. 이들은 경찰 조사 과정에서 “울산시 아파트 공사에서의 업체 선정은 지역 업체의 참여를 권장하는 조례에 따라 결정된 일”이라며 특혜가 아니라고 동일하게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문에 따르면, 이들과 반대되는 주장은 익명의 퇴직공무원 김씨로부터 나왔다. 송 부시장이 가명으로 박 전 비서실장에게 불리한 진술을 내놓은 것이다. 검찰은 이 때문에 김 전 시장 측근 비리와 관련해 혐의를 입증할 만한 진술이 부족했던 경찰이 송 부시장을 더 조사한 뒤 실명 조서를 추가했다고 의심한다.

    경찰은 “대법원 판례상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현행법과 판례에 따르면 조사 대상의 신분이 드러날 경우 보복범죄 등의 위험이 있다면 가명으로 조서를 작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조사에서 드러난 경찰의 ‘끼워 맞추기’

    조사 과정에서는 경찰의 끼워 맞추기식 수사도 드러났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경찰은 박 전 비서실장의 레미콘 특혜의혹을 수사하며 참고인으로 부른 울산시 공무원의 진술을 끼워 맞추는 억지 수사 행태를 보였다. 

    경찰은 당시 한 울산시 공무원에게 "(울산시가) 아파트 건설 현장소장을 부른 회의에서 지역 레미콘업체를 쓰라고 하면 현장소장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고 물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이 직원은 "레미콘업체 선정은 내 담당이 아니라 잘 모르는 내용"이라고 답변했다. 경찰이 같은 질문을 반복하자, 이 직원은 "현장소장이 부담스러울 수는 있을 것 같다"고 답했다.

    이후 진술서를 확인한 이 직원은 해당 진술을 삭제하거나 수정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담당 경찰은 "고칠 수 없다"며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경찰 등 수사기관은 진술자가 자기 진술서의 수정을 요구하면 승낙해야 한다.

    변호사 “진술서 부풀리고 싶었던 것”…경찰 “수사 진척 없어 무리수”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경찰이 보복범죄 가능성을 염려해 송 부시장의 진술을 가명으로 처리했다는데, 이 사안이 과연 보복범죄를 두려워해야 할 만한 사안인가”라며 “경찰이 가명으로 진술서를 작성한 것은 부족한 내용을 부풀리고 싶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울산지방경찰청의 억지 수사에 경찰 내에서도 반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부산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은 본지와 통화에서 “(참고인이) 진술서 수정을 요청했는데 묵살한 것은 분명한 담당 경찰의 잘못”이라면서 “수사에 진척이 없자 무리수를 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경찰은 이어 “시간이 지날수록 여러 가지 의혹이 드러나고 있는 만큼 경찰의 명예를 지킬 수 있는 현명한 대처가 요구된다”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당사자들도 알고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송 부시장의 가명 진술서는 경찰이 지난해 3월 김 전 시장 비서실 등을 압수수색할 때도 사용됐다. 김 전 시장 측은 “당시 송 부시장의 가명 진술이 압수수색영장의 근거였다”고 말했다. 검찰은 김 전 시장 측근 비리와 관련해 혐의를 입증할 만한 진술이 부족했던 울산경찰이 송 부시장을 더 조사한 뒤 실명 조서를 추가한 것으로 의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