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때도 공소장 지적… '제주해군기지 방해' 좌파인사에 보석도
  • ▲ 송인권 부장판사. ⓒ법무부
    ▲ 송인권 부장판사. ⓒ법무부
    법원과 검찰이 11일 조국(54) 전 법무부장관의 부인 정경심(57) 씨 재판에서 이례적으로 충돌했다. 법원이 '공소사실의 동일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검찰의 공소장 변경 신청을 기각하자 검찰이 강하게 반발한 것이다. 법조계에선 "공소장 변경 신청을 기각한 것은 '정경심 봐주기'"라며 의아스런 눈길을 보낸다. 이 논란의 중심에는 송인권(51·사법연수원 25기) 부장판사가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 부장판사인 송 판사는 정씨 재판뿐만 아니라 '문재인 정권 비위 사건'인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과 큐브스 전 대표 사건 등도 담당한다. 송 판사는 이 두 재판에서도 검찰의 공소장을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 판사가 과거 북한을 찬양해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종북단체 간부에게 1심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한 경력도 눈길을 끈다. 북한 찬양 시를 만들어 유포한 시인의 신청을 받아들여 국가보안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적도 있다.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방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좌파 시민단체 사무처장의 보석을 허가하기도 했다.

    '文정권 비위' 환경부 블랙리스트, 큐브스 재판서도 공소장 지적

    송 판사는 11일 정씨의 3차 공판준비기일에서 검찰의 공소장 변경 신청을 기각했다. 사문서 위조로 기소된 기존 공소장과 추가 기소로 변경된 공소장의 '공소사실 동일성'을 인정하기 힘들다는 이유에서였다. 동일성 판단 기준에 논의의 소지가 있는 데다, 이번 판단이 "검찰의 무리한 기소"라는 비판여론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일었다.

    송 판사는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환경부 공무원 인사에 불이익을 준 혐의(직권남용 등)로 재판에 넘겨진 김은경 전 환경부장관과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 재판에서도 검찰의 공소장을 지적했다. 그는 9월30일 열린 이 재판의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검찰의 공소사실 자체가 장황하고 산만한 데다, 피고인에 대한 나쁜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방향으로 기재돼 있다"고 지적했다.

    조 전 장관과 '버닝썬 경찰총장' 윤모(49) 총경이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큐브스(현 녹원씨앤아이) 정모 전 대표 사건에서도 검찰에 대한 송 판사의 지적이 나왔다. 정 전 대표는 중국 업체와 거래 과정에서 60억원대의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를 받는다. 2016년 경찰 수사를 받게 되자 사건을 무마해주는 대가로 윤 총경에게 큐브스의 비상장 주식 수천만원어치를 제공한 혐의도 있다.

    하지만 송 판사는 지난 11월13일 정 전 대표 사건 두 번째 공판준비기일에서 검찰에 "내부정보를 이용했다면 '대박'을 쳐야 하는데, 공시 이후 주가가 하락해 손해를 봤다"며 "그런데 공소장에는 불상의 이득을 얻었다고 적혀 있다. 손해를 봤는데 부당이득 취득이라니, 제가 한글을 이해 못한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정 전 대표의 핵심 혐의가 뇌물공여·횡령 등인데, 공소장에 있는 '사소한 문제를 트집을 잡는다'는 비판이 법조계 일각에서 나왔다.

    종북단체 간부 풀어주고, 좌파단체 간부 보석 허가하고

    송 판사는 2013년 수원지법 형사항소부장으로 근무할 때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종북단체 간부에게 무죄를 선고한 경력도 있다. 당시 종북단체인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범청학련)' 남측 의장 윤기진 씨는 북한체제를 찬양하는 옥중서신을 작성해 인터넷을 통해 유포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받고 복역 중이었다. 하지만 2심 재판장이던 송 판사는 1심 판결을 뒤집고 윤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윤씨 부인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세종대왕에 비유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경력이 있는 황선 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이다.

    그해 수원지법 형사6부장으로 근무할 때는 피고인의 신청을 받아들여 국가보안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기도 했다. 당시 시인 권말선 씨는 북한을 찬양하는 내용의 '즐거운 소식'이라는 제목의 시를 지어 지인들에게 이메일로 보내고 인터넷 카페에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과업을 제시했다'는 등의 문건을 올린 혐의 등으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권씨는 항소하면서 국가보안법 제7조 5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했다. 이 조항은 반국가단체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할 목적으로 '문서·도화·기타의 표현물'을 제작하거나 수입, 소지 또는 취득하면 징역 1~7년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송 판사는 당시 권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문서·도화 기타의 표현물'은 내용에 아무런 제약을 두지 않아 조문을 적용하는 자의 의사에 따라 처벌 범위가 부당하게 확대될 여지가 있다"고 봤다.

    2011년 제주지법 제2형사부 재판장으로 재직할 때는 제주해군기지 건설공사를 방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좌파성향 단체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김종일 사무처장 등 4명에 대한 보석을 허가해주기도 했다. 이들은 제주해군기지 예정지 강정마을에서 경찰의 공무 집행을 저지하거나 해군기지 건설공사를 방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법조계에선 송 판사의 공소장 변경 기각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서초동 한 변호사는 "정씨 추가 기소 혐의가 기존 공소사실과 부합하는 입시비리인데, 재판부가 공소장 변경을 불허한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김명수 사법부의 전형적 내로남불, 적폐판사 아니겠느냐"고 비판했다.

    '영장전담' 판사 출신 이충상 교수 "무죄 선고하려고 작심했다"

    이충상(62·사법연수원 14기)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송 판사의 공소장 변경 기각은 중대하게 위법하다"며 "정씨에게 무죄를 선고하려고 작심하고 공소장 변경을 허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1988년 판사로 임용돼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거쳐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 등을 지냈다. 2006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하다 최근에는 경북대에서 민사소송법을 가르친다.

    이 교수는 "종전보다 내용을 구체적으로 특정했으므로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불리하기는커녕 오히려 유리하다"며 "위조 장소와 위조 방법이 변경돼도 기본적인 공소사실은 변경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하나의 표창장 위조를 놓고 두 개의 재판이 진행되는 ‘한 번도 가지 않은 상황’이 벌어져도 그 책임은 전적으로 송 판사에게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