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 “리수용은 김정일·김정은의 최측근"… 그가 나선 것은 김정은의 불안함 방증
  • ▲ 2016년 6월 중국을 찾아 시진핑 국가주석과 회담을 하는 리수용.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16년 6월 중국을 찾아 시진핑 국가주석과 회담을 하는 리수용.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북한이 미국을 향해 거듭 비난 담화를 내놓았다. 지난 9일 김영철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난하는 담화를 내놓은 지 5시간도 채 되지 않아 리수용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또 비난 담화를 냈다. 리수용의 권력서열을 감안하면 매우 이례적이다.

    리수용 “겁먹은 트럼프, 재앙적 후과 싫다면 숙고하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9일 리수용의 담화를 전했다. 리수용은 “최근 잇달아 내놓은 트럼프의 발언과 표현들은 얼핏 누구에 대한 위협처럼 들리지만 심리적으로 그가 겁을 먹었다는 뚜렷한 방증”이라며 “트럼프는 몹시 초조하겠지만 모든 것이 자업자득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며, 더 큰 재앙적 후과(後果)를 보기 싫거든 숙고하는 것이 좋다”고 위협했다.

    리수용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 매우 초초해한다고 주장하며 “연말에 내리게 될 우리의 최종 판단과 결심은 국무위원장이 하게 되며, 국무위원장은 아직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았고, 누구처럼 상대방을 야유하며 자극적인 표현도 쓰지 않고 있다”며 “국무위원장의 심기를 점점 불편하게 할 수도 있는 트럼프의 막말은 중단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담화 내용만 보면, 북한의 평범한 대미 비난과 다를 게 없다. 그러나 리수용이 북한 권력층 핵심임을 고려하면 다른 속내가 있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태영호 “리수용, 北 권력층 핵심 중의 핵심”

    지난해 5월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는 <3층 서기실의 비밀>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태 전 공사는 책에서 김정은의 최측근들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 중 한 사람이 리수용이었다.

    리수용은 2016년 외무상 자리를 리용호에게 물려준 뒤에도 김정은의 주변에 있다. 태 전 공사는 “김정은이 집권한 뒤 다른 부서들과 달리 외무성만 대규모 숙청을 피한 것은 리수용 덕분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리수용은 북한 권력층에서 핵심 중의 핵심이라고 전했다.
  • ▲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 일행을 영접하기 위해 도열한 북한 권력층들. 최룡해 옆이 리수용이다. ⓒ평양공동취재단-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 일행을 영접하기 위해 도열한 북한 권력층들. 최룡해 옆이 리수용이다. ⓒ평양공동취재단-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태 전 공사는 “리수용이 언제부터 언제까지 김정철·김정은 형제를 돌봤는지 잘 모른다”면서도 “다만 그가 1990년대 초반부터 김정일을 수시로 만나며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것은 안다”고 설명했다. 리수용이 스위스에서 학교를 다녔던 김정철과 김정은, 김여정을 돌봤기 때문이다. 이때 리수용은 스위스 은행에 있던 김정일 비밀계좌도 관리했다고 한다.

    태 전 공사에 따르면, 리수용은 김정일 시절 다른 사람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건의를 해 이를 허락받았다. 해외 주재 북한 간부와 그 가족들이 초상휘장(김씨 일가 초상화가 그려진 배지)을 상황에 따라 뗄 수 있도록 한다든지, 서유럽 주재 북한 외교관의 생활비를 인상한다든지 하는 일을 관철시켰다.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대북원조, 영국과 수교 등도 모두 리수용의 작품이라고 태 전 공사는 전했다.

    김정은 불안해하자 리수용, 직접 나선 것일 수도

    태 전 공사가 2016년 7월 귀순한 뒤는 물론 장성택 세력 제거로 피바람이 불 때도 리수용 숙청설이 제기됐다. 하지만 그는 건재했다. 태 전 공사는 “리수용이 김정일 때부터 김정은 남매들을 돌봐온 데다, 김정은이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대담한 전략을 펼 수 있도록 가르친 것이 그”라고 설명했다.

    리수용은 2016년 5월 외무상을 그만둔 뒤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당 정치국 위원,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당 중앙위원회 국제부장에 임명됐다. 최룡해 다음 가는 서열이다. 이후 그가 북한 매체를 통해 나온 모습을 분석해 봐도 권력서열 5위 안에 드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리수용이 직접 나서서 김정은의 심기를 운운하며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한 것은 역설적으로 현재 김정은의 심리가 대단히 불안하고 조급하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