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 확대 지원사업을 정시 확대 수단으로 활용…“원칙없이 정책 ‘뒤집기’가 특기인가”
  • ▲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이기륭 기자
    ▲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이기륭 기자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이죠.”

    최근 만난 한 대학 관계자가 교육부의 정시 확대 방침에 대해 한 말이다. 교육부는 지난달 28일 서울 주요 16개 대학의 정시 대학수학능력시험 전형 비중을 40% 이상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깜깜이' 전형으로 불리던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을 개선하고 대입 제도 공정성을 강화한다는 명분이었다.

    "정시확대, 강제 아니다" 교육부에… 실소하는 대학들

    정시 40% 비율을 2022학년도 대입부터 적용한다면서도 강제나 의무는 아니라고 교육부는 강조했다. 그러나 대학 관계자들은 강제나 의무가 아니라는 교육부의 말을 '단순한 권유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교육부가 재정지원 사업을 통해 대학들을 압박할 거라는 게 자명하다는 이유에서다.

    교육부는 대학들의 정시 확대 비중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고교기여대학사업)'을 동원했다. 대상으로 지목된 16개 대학은 2023학년도까지 정시 비중 40%를 달성한다는 계획서를 교육부에 제출해야만 해당 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 즉 교육부가 재정지원을 무기로 사실상 대학들에게 정시 확대를 강제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교육부의 정책 모순이 또 한 번 드러났다. ‘고교기여대학사업’은 입학전형을 단순화하고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인 대학에 재정지원을 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의 전신은 2007년 도입된 ‘입학사정관제(현 학종) 지원사업’으로, 수시 비중을 늘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사업 도입 이후 대입부터 수시 모집 비율은 꾸준히 늘어나는 등 가시적 성과도 나왔다. 2007년 전국 4년제 대학의 수시모집 비율은 51.5%였지만, 이후 계속 높아지기 시작하면서 2020년 대입에선 77.3%가 됐다.

    결국 교육부는 10여 년 전 수시 학종을 확산하기 위해 도입한 재정지원 사업을 이제는 학종을 줄이고 정시 수능위주전형을 확대하기 위해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정권 '입맛'에 따라 사업 취지를 수시에서 정시 지원으로 '멋대로' 뒤집은 셈이다.

    올해 고교기여대학사업 예산은 총 559억원 규모다. 지원 대학은 68곳 내외로, 대학 한 곳당 평균 8억원가량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최근 많은 대학들이 재정난을 겪고 있는 만큼 대학들이 학생 선발권을 지키고 지원금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 대학 입장에선 원치 않아도 교육부의 정시 확대 정책을 울며 겨자 먹듯 따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교육철학 상실한 文 정부, 대학은 안중에도 없다"

    정시 확대 대상 대학의 한 관계자는 “대학 재정이 한계에 도달한 상황에서 교육부 방침을 그대로 따라야만 하는 수순으로 갈 것 같다”며 “교육 철학을 상실한 현 정부에게 대학은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그러다보니 교육정책 뒤집기가 특기가 된 듯하다”고 개탄했다.

    또 다른 대학의 한 관계자는 “조국 전 법무장관 딸 사태로 불거진 대입 불공정 문제가 애먼 대학들에게 불똥이 튄 격”이라며 “수시를 확대하기 위해 만든 사업도 다시 정시 확대에 이용하겠다고 하는 교육부를 보니 지속가능한 교육원칙 없이 이리저리 둘러대기에만 도가 튼 것 같다”고 비난했다.

    교육계 한 관계자 역시 "문재인 정권이 만들어낸 '올해의 명언(?)'이 '조국스럽다' 아니냐"며 "정말 조국스럽다"고 비꼬았다.

    이 같은 비판과 논란에도 교육부는 내년 2월께 정시 확대를 포함한 대입 공공성에 중점을 둔 내용의 고교기여대학사업 기본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대학과 정시 확대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해 대입 공공성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돈'으로 대학들에게 선택을 '강제'하는 교육부의 행태를 보니, 문재인 정부가 그토록 바로 잡고자 하는 자본주의의 '갑질'과 다를 게 없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