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교대역 인근 빌딩 곳곳에 '임대' 현수막… "법조시장 '한파', 文 정부 경제 실정 따른 경기불황 탓"
  • ▲ 법조 인력이 모인 서초동 일대에 빈 사무실이 자리하고 있다. ⓒ김현지 기자
    ▲ 법조 인력이 모인 서초동 일대에 빈 사무실이 자리하고 있다. ⓒ김현지 기자
    "변호사 수는 늘어나고 수임료도 그리 크지 않아요. 경기도 안 좋은데 변호사 사무실 임대료는 당연히 부담이 되죠."(서울 서초동 A 변호사)

    "제 사무실이 있는 빌딩에는 빈 사무실이 올들어 늘었어요. 과거 경기불황 때도 이런 적은 없었는데..."(서울 서초동의 B 변호사)

    5일 오전 11시께 법원·검찰청은 물론, 대형 법무법인(로펌)·법률사무소 등이 몰려 있는 교대역 인근. 빌딩과 버스정류소 등에는 '임대 문의'라는 글귀가 심심치 않게 보였다. 교대역 8번 출구 인근 모 빌딩 안내판에는 두 층의 사무소 소개란이 비어 있었다. 이 빌딩에서 양재 방향으로 100m도 채 가기 전에 '임대' 글귀를 또 발견할 수 있었다. 빈 사무실을 알리는 이 문구는 다섯 건물을 지나기도 전에 다시 보였고, 버스정류장 등에도 '임대' 글귀가 붙어 있었다. 

    역세권이면서 '터 좋다'고 소문난 빌딩도 예외는 아니었다. 교대역 6번 출구 인근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나란히 있는 두 빌딩에 모두 '임대'라는 문구가 있었다. 여기서 법원 방면으로 100m도 가기 전, 또다시 '임대' 글귀를 볼 수 있었다. 건너편 11번 출구 인근에 위치한 두 빌딩 유리창에도 공실을 알리는 '임대 문의'가 있었다. 이들 건물 주변으로는 대형 로펌이 자리하고 있다.

    15층짜리 빌딩에 공실만 22곳… "1~2년 새 공실 증가"

    법률전문가들이 주로 모인 15층짜리 C빌딩은 상황이 더욱 좋지 않다. 이 빌딩의 빈 사무실은 무려 22곳. 한 층에서만 5개의 사무실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이날 본지와 만난 건물 관리인은 "7년 동안 건물관리를 해오고 있는데, 1~2년 사이 공실이 증가했다"며 "옛날 같으면 사무실도 꽉 차고 변호사를 찾는 손님도 많아 주차장이 꽉 찼는데 요즘에는 텅텅 비어있다"고 했다.

    이 건물에 입주해 있는 한 변호사도 건물 관리인과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그는 "이 건물은 지하철역과 바로 인접한 곳이 아니라서 상대적으로 (다른 건물보다) 임대료가 저렴한 편"이라며 "경기 불황 때도 사무실이 잘 나가는 편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최근 들어 빈 사무실이 늘어난 데다, 다시 새 사람이 들어오기까지 시간도 꽤 걸리는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 건물은 병원·연구원 등 일부 사무실을 제외하면 대부분 개인 법률사무소 등이 몰려 있는 곳이다.

    서초동과 교대역 일대 이른바 '법조타운'의 '한파' 분위기는 지역 부동산 업계를 통해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서초·교대 지역의 개인 사무실 매물이 과거보다 많이 나왔다는 의견이다.

    지역 한 중개업자는 "변호사 사무실이 모인 모 빌딩에 매물이 많이 나왔다"며 "저렴한 곳은 나갔지만 여전히 매물이 많다"고 했다. 또 다른 중개업자도 "교대·서초 지역에 법률사무소로 사용되던 사무실이 예전보다 많이 비어 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금융위기에도 '불황'이 없었던 법조타운 부동산 업계에 '한파'가 몰아닥친 이유는 뭘까. 일각에선 변호사 수가 증가하는 데 빈 사무실이 많다는 게 말이 되냐고 반문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법조계에선 10년 전과 똑같은 1인당 수임료, 비싼 임대료 등을 요인으로 꼽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경기 불황' 탓이라는 게 다수의 의견이다. 금융위기 때보다 현재의 '법조 경기'가 더욱 나쁘다는 이야기다.

    대한변호사협회(이하 대한변협)에 따르면, 올해 전체 변호사(회원) 수는 2만 7306명이다. 5년 전인 2014년(1만 8711명)보다 8595명 증가한 수준이다.

    변호사 수 늘고 임대료 올랐지만… 수임료는 10년 전 그대로

    하지만 변호사 수임료는 10~20년 전과 크게 차이가 없다고 한다. 사건과 변호사 개인의 능력에 따라 수임료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통상적으로 사건당 수임료는 300~500만원 정도다. 성공보수의 경우 민사사건은 승소액의 일정 비율을 받을 수 있다. 다만 대법원 판례에 따라 형사사건 성공보수는 공식적으로 받을 수 없다. 10년 차 이상 변호사의 수임료는 통상 500~600만원, 전관의 경우 1000만원 이상이다.
  • ▲ 교대역 인근 빌딩에 붙은 '임대' 문의 글귀. ⓒ김현지 기자
    ▲ 교대역 인근 빌딩에 붙은 '임대' 문의 글귀. ⓒ김현지 기자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전관이나 돼야 사건당 1000만원 이상을 받지만, 전체 변호사 중 전관 비율은 극히 미미하다"며 "변호사 수임료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고,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나오면서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오히려 수임료가 낮아지는 추세"라고 했다. 이어 "사건당 100~200만원에 수임하는 공격적 변호사들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변호사도 "장기간 진행되거나 준비할 서면이 많은 사건이 있고 이런 사건을 맡으면 다른 사건을 하기 힘들다"며 "이럴 때 우스갯소리로 (내가 받는 임금이) '서류 1장당 100원이나 될까' 싶을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수임료에 비해, 서초동 '법조타운' 인근 변호사 사무실 임대료는 천정부지로 올랐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이 지역 임대료는 실평수 30~40평 기준 월 500~600만원가량이다. 관리비·부가세는 별개다. 법원 인근 C 건물의 한 사무실(실평수 14평)의 경우, 보증금 3000만원 월 150만원이다. 관리비는 50만원, 부가세는 10%가 붙는다. 다른 건물의 임대료도 비슷한 수준이다. D 건물 사무실(실평수 12평)에 들어가려면 2000만원에 월 120만원, 관리비 50만원과 부가세 등을 내야 한다.

    변호사들이 '전관이 아닌 일반 변호사들은 수임료만으로 임대료를 포함한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한다', '대형 로펌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1~2명의 변호사들이 함께 사무실을 꾸려야 한다'는 등의 하소연을 하는 이유다.

    법조타운, '경기불황'에 직격탄… 휴업 변호사 수 최근 5년간 2232명 증가

    하지만 금융위기도 피했던 서초 법조타운이 '직격탄'을 맞은 것은 무엇보다 현재의 국내 경제상황 탓이 크다는 게 법조계 다수의 의견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현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지난 9월 기준 99.5였다. 이 수치가 100 미만이면 경기 추세에 비해 실제 경기가 불황이라고 해석된다. 민간 소비 경기를 볼 수 있는 소매판매도 지난 9월 기준 전월보다 2.2%p 감소하는 등 경기 상황은 녹록지 않다.

    실제 휴업한 변호사 수도 눈에 띄게 늘었다. 대한변협에 의하면, 지난 10월 31일 기준 올해 휴업한 변호사(준회원) 수는 4991명이었다. 2014년 2759명에서 2015년 3107명, 2016년 3469명, 2017년 3833명, 2018년 4265명 등 최근 5년간 휴업 변호사 수가 꾸준히 증가했다. 휴업 변호사 수에는 변호사 업무 자체를 중단하거나, 변호사가 공무원이 되는 경우 등이 포함된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법조 쪽 특수 직군이 모인 서초·교대 인근 공실이 계속 나오는 건 아무래도 경기불황, 특히 미래에 대한 불안한 심리가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또 다른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현 정부가 추진한 최저임금이나 주 52시간 같은 경제정책으로 경기가 악화된 것 아니냐"며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가 금융위기도 피해갔던 법조시장까지 얼어붙게 한 것 같다"고 했다.

    변호사 수 증가, 수임료와 임대료 문제 등은 최근 변호사 시장도 변하게 만들었다. 사무실을 다른 변호사들과 '공유'하는 추세가 확산되는가 하면, 사내 변호사 등 '안정적 직업'을 찾는 변호사들이 늘었다는 게 업계 의견이다.

    로스쿨 출신의 한 변호사는 "변호사 사무실을 (다른 변호사들과) 나눠 쓰거나 아예 위워크 같은 공유 오피스에서 작업을 하는 변호사들이 늘었다"며 "당연히 경기불황 요인이 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중형급 로펌 소속의 한 변호사도 "예전보다 적은 평수에 실용적으로 사무실을 활용한다"며 "변호사들이 한 방을 함께 쓰는 경우도 확실히 많아졌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