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남측 의존 잘못" 지적에… 통일부 "낡은 건 사실" 현대아산 손해규모에도 침묵
  • ▲ 금강산 관광지구를 현지지도 하는 김정은.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금강산 관광지구를 현지지도 하는 김정은.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정은이 현대아산에서 건설한 금강산 관광시설을 모두 철거하고 북한 스타일로 재건축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북한 선전매체 노동신문은 23일 김정은의 금강산 현지 지도 소식을 전했다. 김정은은 금강산 관광지를 둘러본 뒤 “건물들의 건축양식이 민족성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잡탕”이라며 “건물들이 무슨 재해지역에 설치한 천막이나 격리병동처럼 생겨 남루하기 그지없다”고 혹평했다.

    김정은 “남루하기 그지없는 금강산 관광시설, 철거하라”

    김정은은 이어 “세계적인 명산 금강산에 가건물 같은 집 몇 채 지어놓고 관광을 하게 만든 것은 대단히 잘못됐다”며 “손쉽게 관광지나 내주고 앉아서 득 보려던 선임자들의 잘못된 정책 탓에 금강산이 10여 년 동안 방치됐다. 국력이 약할 때 남에게 의존하려 했던 선임자들의 대외의존 정책은 매우 잘못됐다”고 금강산 관광 사업을 강하게 비난했다.

    그는 이어 “금강산에 남녘 동포들이 오겠다면 언제든지 환영할 것이지만, 금강산 관광 사업에 남측을 내세워 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인식을 북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은은 “지금은 금강산이 마치 남북의 공유물처럼, 남북관계의 상징처럼 돼 있고, 남북관계가 발전하지 않으면 금강산 관광도 못 하는 것으로 돼 있는데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인식”이라며 “금강산은 피로써 쟁취한 우리 땅으로, 절벽 하나, 나무 한 그루에도 우리의 자주권과 존엄이 깃들어 있다”고 주장했다.

    신문에 따르면, 김정은은 이어 금강산 관광시설을 가리켜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들”이라면서 “남측의 관계부문과 합의해 싹 들어내고, 금강산의 자연경관에 어울리는, 우리 식의 현대적인 시설로 새로 건설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 ▲ 금강산 관광지구 일대의 모습. 김정은은 이 시설들을 모두 철거하라고 지시했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금강산 관광지구 일대의 모습. 김정은은 이 시설들을 모두 철거하라고 지시했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정은은 또 금강산 관광지구를 고성항 해안관광지구, 비로봉 등산관광지구, 해금강 해안공원지구, 체육문화지구로 나누어 개발하는 계획을 추진하면서, 각 지구마다 현대식 호텔과 골프장 등의 시설과 함께 비행장 및 연계 철도를 건설하라고 지시했다. 장기적으로는 금강산과 원산 갈마 해안관광지구, 마식령 스키장을 하나로 잇는 문화관광벨트를 만들라고 덧붙였다.

    김정은 수행원들 “금강산 시설, 정말 꼴불견”…정부 “진의 파악 먼저”

    김정은을 수행한 김여정, 현송월, 장금철, 최선희, 장성호, 마원춘 등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들도 금강산 관광시설을 보고 “공장이나 기업소에 있는 근로자 합숙소보다 못한 건물들이 세계적인 명승지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정말 꼴불견”이라고 거들었다.

    김정은의 지시는 현대아산이 소유주인 금강산 관광시설을 북한이 몰수·폐기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이에 대해 반발하지 않고 있다. “김정은이 남측과 합의해 금강산 관광 시설을 폐기한다고 말했는데 이를 통해 남북이 소통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느냐”는 질문에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부인하지 않겠다”고만 답했다.

    통일부는 “북한의 의도와 사실관계를 파악 중”이라고만 밝혔다. 이상민 통일부 대변인은 23일 정례 브리핑에서 “정부는 북측이 요청할 경우 우리 국민의 재산권 보호, 그리고 남북합의 정신을 바탕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며, 금강산 관광 재개와 활성화를 위한 일이라면 언제든지 협의해 나갈 계획”이라며 이 같이 밝혔다. 이상민 대변인은 그러나 민간 기업이 금강산에 투자한 금액이 어느 정도 규모이고, 북한이 이를 철거하면 입게 될 손해가 어느 정도인지를 묻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 ▲ 23일 더불어민주당 한반도 비핵화 대책특위 간담회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는 김연철 통일부 장관.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3일 더불어민주당 한반도 비핵화 대책특위 간담회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는 김연철 통일부 장관.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낡은 건 사실” 김정은 말 거든 통일부 장관

    통일부의 브리핑 답변과 달리 통일부 장관은 김정은의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한반도비핵화대책 특별위원회 간담회에 참석한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금강산 시설은 (사용 안 한 지) 이미 10년 정도 경과하는 과정에서 유지 관리가 안 돼 많이 낡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 장관은 또한 “이것(김정은의 금강산 관광시설 철거 지시가)이 꼭 제재 때문이라고만 말할 수 없는 것이 그간 금강산 관광의 사업 부진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조선일보 등에 따르면, 김연철 장관은 이외에도 “북한은 북한대로 우리 남쪽에 대한 실망과 불만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하고 있으며, 금강산도 그 일환”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전했다. 김 장관의 발언이 알려지자 야당 내에서는 “금강산 사업이 중단된 뒤 통째로 북한에 넘어가게 생긴 상황인데 통일부 장관이 북한 편드는 발언을 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