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기 싫다" "전만 못해" "너무 힘들어"…청운·효자동 주민들 “文 잘한 게 뭐냐"
  • ▲ 지난 2017년 5월 10일 국회에서 열린 취임식 후 청와대로 이동하던 중 시민들에게 손을 흔드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뉴시스
    ▲ 지난 2017년 5월 10일 국회에서 열린 취임식 후 청와대로 이동하던 중 시민들에게 손을 흔드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뉴시스
    2017년 5월10일 오후 1시쯤. 청와대로 향하는 도로에는 ‘대통령님 내외를 환영합니다’라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이날 취임식을 마치고 청와대로 들어가는 문재인 대통령 내외를 환영하기 위해 청운효자동 주민들이 내건 현수막이었다.

    문 대통령 내외는 청와대로 향하던 중, 차량에서 내려 환영나온 100여 명의 청운효자동 주민들과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 당시 청운효자동 주민 대표가 꽃다발을 건네자, 문 대통령은 껄껄 웃으며 “어찌 주민들이 이렇게 많이 오셨느냐”고 치사를 했다. 주민들은 “공정하고 정의롭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약속을 잊지 말아달라”고 주문했다.

    文 취임 842일 만에 찾은 ‘청운효자동’ 주민들  “정말 힘들다”

    문 대통령이 취임한 지 842일이 지난 2019년 8월29일. 꽃다발까지 선물하며 뜨겁게 문 대통령을 환영했던 청운효자동 주민들은 현재의 문 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할까. 이 날은 마침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사건에 대한 대법원 선고가 있는 날이기도 했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이날 정오쯤 본지가 찾은 청운효자동은 ‘썰렁한’ 분위기였다. 점심시간임에도 청운효자동 번화가의 유동인구는 손으로 셀 정도였다. 인근 상가 주인들은 문 대통령을 향해 한목소리로 “기대를 접었다”고 말했다.

    오후 1시쯤 효자동에서 문 대통령의 청와대 ‘입성’ 환영식에 참석했던 부동산 대표 A씨를 만났다. 그는 “그날을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손사래를 쳤다. 이어 그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얘기를 자꾸 왜 꺼내”라며 “경기도 지랄 같은데, 장사가 잘되는 곳을 찾아 보고 거기서 물어 보라”고 퉁명스럽게 말하고는 자리를 떴다. 효자동에서 일명 ‘보안관’으로 불리는 그는 문 대통령을 향해 실망감을 넘어 ‘분노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A씨와 부동산 공동 대표를 맡은 한모 씨는 A씨의 태도가 민망했던지 “말해봤자 싫은 소리만 늘어놓아야 하는데 하고 싶겠느냐”며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 ▲ 청와대인근 집회·시위중단을 촉구하는 주민들의 플랜카드. ⓒ오승영 기자
    ▲ 청와대인근 집회·시위중단을 촉구하는 주민들의 플랜카드. ⓒ오승영 기자
    효자동 인근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B씨도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정권이 바뀌고 긍정적 변화가 있느냐’는 물음에 “취임할 때는 뭐가 대단하게 바뀌는 줄 알고 기대했는데, 나아지기는커녕 예전만도 못하다”며 “만나는 동네사람들 모두 그렇게 얘기한다”고 동네 분위기를 전했다.

    청운효자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심모(60) 씨는 ‘문 대통령 집권 후 살림이 나아졌느냐’는 질문에 한숨부터 내쉬었다. 심씨는 “이 동네에서 장사한 지 벌써 10년이 훌쩍 넘는데 요즘처럼 힘든 적은 없었다”며 “여기도 직원들이 셋이나 있는데 임금 올리고 비정규직 하지 말라고만 하니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이어 “대통령이 잘한 게 뭐가 있느냐”고 반문하며 “평소처럼 살고 싶은데 이제는 시위까지 너무 심해져 단골손님들도 발길을 끊었다”고 하소연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얘기 자꾸 왜 꺼내? 경기도 지랄 맞은데”

    특히 청와대 인근 주민들은 집회와 시위로 생계는 물론 사생활까지 침해받는다고 울상이었다. ‘국민에 의해 탄생한 촛불정권’이라며 집회나 시위의 자유를 보장한 문재인 정부의 정책이 오히려 주민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상황을 불러왔다는 말이었다.

    실제로 이날 청와대 인근에서는 한국노총 집회, 이석기 석방을 외치는 집회, 스텔라데이지호 선원 수색을 촉구하는 집회 등 다양한 집회·시위와 이를 통제하는 경찰 병력이 어우러져 아수라장이었다.

    경찰 등에 따르면 청와대 앞 근접집회나 시위 허가는 문재인 정부 들어 대폭 완화됐다.

    경찰은 당초 경호 차원에서 청와대 앞 1km 인근까지 집회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하지만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격화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당시 법원이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취지로 800m, 400m, 200m까지 점진적으로 허용하더니, 결국 그 해 12월 청와대 100m 앞에서도 집회와 시위를 허가했다.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차모 씨는 “조용하던 동네가 시끄러워지더니 식당을 찾던 관광객들은 물론이고 동네사람들도 잘 안 나온다”며 “내가 이 동네에서 20년 동안 장사를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효자동에서 40년째 산다는 백모(65.여) 씨는 “그동안 여러 대통령이 왔다 갔지만 이렇게 동네가 난잡해지고 칙칙해진 적은 없었다”며 “이곳은 정말 조용한 동네였는데 이번 대통령 들어서는 매일 같이 동네가 시끄럽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 시위대와 경찰로 뒤섞인 효자동 거리. ⓒ오승영 기자
    ▲ 시위대와 경찰로 뒤섞인 효자동 거리. ⓒ오승영 기자
    시위·음주·노상방뇨... 거리에 지린내 진동

    이어 “집회 참가자들은 술을 마시러 왔는지 집회 하러 왔는지 모를 정도다. 노상방뇨 등으로 거리에 지린내가 진동한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부동산소개소를 운영하는 C씨는 집회 탓에 부동산 경기도 최악이라고 한탄했다. 그는 “조용하던 동네가 2년 만에 쑥대밭이 됐다”며 “지난해 (부동산시세가) 최저점을 찍은 줄 알았는데 올해는 더 떨어졌다. 시끄러워 못 살겠다고 집을 내놓는 사람은 많은데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청운효자동 일대를 3시간가량 돌아본 후 다시 C씨를 찾아 ‘손님이 있었느냐’고 묻자 “없었다”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한편 ‘청운효자동·사직동·부암동·평창동 집회 및 시위 금지 주민대책위원회’는 지난 28일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집회·시위로 인한 소음피해에 항의하는 ‘침묵시위’를 진행했다. 2017년 8월 이후 2년 만에 같은 이유로 다시 열린 집회였다.